한평짜리 소설

12호-할로윈데이에 뭐 하세요?(부제: 기승전민)

by 벼리

오늘, 퇴근하면서 자리를 정리하다가 무심코 달력의 31이란 숫자에 눈이 갔다.

시월의 마지막 날, 핼러윈데이(할로윈데이)다.


작년 이맘 때에는 동료들과 함께 라운지 바에 놀러갔던 것 같다. 밍숭맹숭한 직딩의 삶에 사진 몇 장으로 남은 사생활, 그 소박한 행복....


문득 이름이 검색되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행복한 걸까 생각해 본다.

조금의 사생활도 허용되지 않지만 주목받는 화려한 삶, 가족과 친구들에게만 기억되는 소박한 삶. 나는 다음 생에도 둘 중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전자의 삶은 동경할 때 더 아름다우리라.


이런 생각에 작년 할로윈데이 때도 분장을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 존재만으로 주목받는 슈퍼마리오나 바니걸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날은 퍽 재미있었다. 그래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바라는 민의 모습은 (솔직히) 바니걸처럼 귀엽고 섹시한 분장이다. 하지만 그런 민을 남들이 본다면? 싫을 것 같다. 분장 의상을 입은 모습을 내게 보여주더라도 밖에서는 보고 싶지 않다.


언젠가 민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왔을 때 나도 모르게 흘깃흘깃 다리를 보게 됐다. 다른 녀석들만큼 대놓고 감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마 민도 내 시선을 조금은 느꼈을 거다.

민은 늘 바지를 입었는데, 그날은 왜 치마를, 그것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왔는지 정말 궁금했다.

"(흘깃) 치마네?"

내가 남자친구도 아닌데 자세히 묻는 것도 그래서 던진 한마디였다.

민이 뭔가 변명하듯 말했다.

"아, 이거. 그...빨래를 깜박해서 옷이 없길래. 요새 안 입던 건데 오랜만에 입어봤어."

"아... 그래?"

"응...."

말을 마친 민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풀리지도 않은 컨버스화 끈을 매만지며 묶는 시늉을 했다. 손도 참 예쁘다고 생각하다가 하마터면 못 들을 뻔한 민의 목소리.

"있잖아, 나... 오늘 어때?"

이런 걸 묻는 건 민답지 않다. 나 역시 무슨 말을 해야 나다운 건지 모르겠다.

1. 그냥 예쁘다고 할까.

2. 솔직하게 다른 남자애들이 봐서 신경 쓰인다고 할까.

3. 남자친구도 아닌데 나한테 왜 묻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볼까.

4. 아묻따 사랑해

5. ...(로딩 중)

모범답안의 부재에 심각한 갈등을 겪는데 민이 다시 말했다.

"역시 이상하지? 나도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어."

그 뒤로 학과 졸업사진을 찍기 전까지 민이 치마를 입은 걸 못 봤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촌스럽게 얼굴이 붉어지든 말든, 내일 민을 어찌 볼지 고민하며 이불에 하이킥을 날리든 말든 이렇게 말하고 싶다.

1. "예뻐. 그런데 내 앞에서만 입으면 좋겠어."

2. "잘 어울려. 마치 우리 둘처럼...."

최소한 1의 용기만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우리가 좀 더 오래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끼익.

외투를 벗다 말고 옷장을 열어본다.

혹시 쓸 일이 있을지 몰라 남겨뒀던 마법사 모자가 눈에 들어온다.

하. 정말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내게 어떠냐고 물으며 뺨이 물들던 민에게 날아가고 싶은 10월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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