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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Jan 28. 2016

두 평짜리 소설

1호-Mean? It's me!

쭌을 처음 본 건 계양역에서이다. 나는 그 역을 좋아했다. 천장이 높고, 해가 많이 들어오고 무엇보다 창이 넓은데 창밖 풍경도 탁 트여 있어서 좋았다. 한강공원 다음으로 사랑하는 공간이 계양역이었다.

쭌은 여행하는 사람의 눈빛으로 맞은편 선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옆모습이 만화책에서나 나올 것 같았던 그 사람을 대학교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심지어 같은 학과에서 말이다. 

나중에 그날을 혹시 기억하는지 쭌에게 물어봤다. 나는 그날 내가 입었던 옷과 스타일을 똑같이 하고 갔다. 기억해내길 바라며 말이다. 쭌은 나를 본 공간은 기억했지만 시간은 잊어버린 듯했다.

쭌을 만난 건 쭌의 왜곡된(?) 기억처럼 가을이 아니었다. 분명 여름이었다. 나는 그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고,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 봉지를 버리면서 쓰레기통 저편의 쭌을 봤다. 왜 이렇게 쓸데없이 자세히 기억하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쭌은 잠깐 놀라는 표정만 할 뿐 캐묻지 않았다.

-분명 그때 나는 계양역을 좋아했기 때문에 열차 몇 대를 그냥 보내고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쭌을 보고 나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 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 그날 쭌의 긴 속눈썹처럼 연약하게, 그러나 명확하게 살랑거리는 내 마음의 의미는 뭐였을까.

다시 만나 그의 이름을 알게 됐을 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부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싶었다. 그 의미는, 나는 너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인식한다는 뜻이었다. 쭌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을까? 그저 불특정 다수 중의 하나일 뿐이었던 타인인 나를 만난 장소를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아주 조금'은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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