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늬들이 계란말이를 알아?
나는 가끔 사물들의 이름이 당혹스럽게 다가올 때가 있다. 가령 버섯은 왜 버섯인가. 이름이 너무 야하지 않은가. 뜨거운 버섯 전골을 먹으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모두 입밖에 내는 순간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기에 말하지 않고 묵묵히 버섯 전골을 먹었는데 배탈이 나버렸다.
20년을 살면서도 몰랐는데 버섯 알레르기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푹 익힌 버섯은 괜찮은데 안 그러면 배탈이 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밀가루 알레르기도 있다. 이건 확실히 최근에 생긴 것 같다. 밀가루는 익힌 정도에 관계없이 일정량 이상을 먹으면 몸이 가렵다.
여튼 오늘은 계란말이를 먹으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계란말이는 사실 계란보다 같이 들어가는 아이들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 가령 '계란말이 featuring 부추'와 "계란말이 with 파', '계란말이 together 당근'의 맛이 어찌 같다고 할 수 있는가. 심지어 대부분의 계란말이는 '계란말이 featuring 부추 또는 파 때로는 당근...'이다. 비유하자면 정기고 노래에 소녀시대가 한 명씩 피처링하는 셈이다.
요즘 신 스틸러라는 말을 하던데 계란말이야말로 요리 재료계의 신 스틸러의 무대다.
날치알과 치즈가 들어간 계란말이를 생각해 보라. 누구도 계란의 부드러움이나 고소함 따위를 말하지 않는다. 톡톡 터지는 날치알의 식감과 색 혹은 치즈 특유의 맛에 빠져들어서 자신이 먹는 것이 계란말이인지 날치알과 치즈인지 모른다. 차라리 계란과 아이들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계란말이는 함께 들어간 것들이 몰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계란과 다른 재료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물리적이든 화학적이든 그 결합이 일어나려면 필요한 것은 불이다.
계란말이는 겉부터 속까지 모두 익어야 한다. 그러려면 가스레인지 앞을 떠나지 않고 프라이팬 안의 계란이 익어가는 모습을 바라봐야 한다. 이처럼 계란말이는 인내의 시간 끝에 완성되는 것이다. 마치 퇴적층처럼 균일하고 고운 계란말이의 단면은 한 겹만큼만 익힌 뒤 반으로 접고 나머지 부분에 또 계란 재료를 조금 붓고 기다려서 익힌 후 말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혹시 안쪽에 있을지도 모를 날것들을 모두 익히기 위해 전자레인지에서 약 30초에서 1분 정도 열을 가해야 한다.
맛의 세계는 엄격하다. 요리야말로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오감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맛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요리는 조금 외로운 작업이다. 이 외로움을 덜기 위해 나는 창작물들을 가끔 도시락을 만들어 들고 간다. 이것을 좀 보고 평가해 달라고. 피천득 수필에서 은전 한 닢을 감정받는 사람의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가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음식 고문을 하게 되기도 한다. 미식가인 경우에 요리 초보인 나의 음식은 남기지 않고 다 먹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도시락에 소량을 싸들고 가서 맛만 보여준다.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은 늘 양이 적은 것은 단순히 재료값이 비싸서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쭌에게도 도시락 음식을 먹인(?) 적이 있다. 항상 고마운 누군가에게 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나온 '1000원의 만찬'처럼 싸 갔는데 쭌은 어쩌다가 같이 먹게 된 경우다. 그래서 쭌의 음식 알레르기나 선호하는 요리 종류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날 알게 된 것인데 쭌은 원래 유부초밥을 싫어한다. 그런데 내가 만들 걸 먹고 나더니 "맛있네?"라고 했었다.
도시락을 먹이고 나서 많은 사람에게 맛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유독 쭌의 그 놀람과 의외라는 어투의 그 한마디는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나는 요리를 잘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근자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쭌은 빈말은 안 하니까.
요즘 나는 할 수 있는 음식이 더욱 많다. 요리를 할 때면 문득 쭌이 생각난다. 이것도 좋아할까? 싫어하더라도 왠지 내가 만들어서 주면 맛있다고 해줄 것 같은 쭌.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배경음악: Dream sung by 수지&백현
http://youtu.be/WfYgbFBFe1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