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 멋을 소유하느냐, 멋있게 존재하느냐
내가 대학생 시절 통틀어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역시 "소유냐 존재냐"를 읽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이름은 잊었지만 그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이거다!'
하고 메모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빌렸을 때의 기쁨이란!
그 책은 얇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좋았다. 한 잔의 차를 마시듯 그 책을 천천히 읽어나갈 때 비로소 모든 독서 예찬론자들의 말들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자취생의 최대 고민은 수납이다. 나 역시 그랬다. 당시 나는 다른 또래에 비해 옷이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는 작은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양의 책과 옷이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더 이상의 소비를 막고 갖고 있는 것 안에서 만족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었다. 그러나 옷은 줄이더라도 좋은 책을 보면 사고 보는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옷은 입었을 때, 책은 읽었을 때 비로소 빛이 나는 것인데 왜 나는 옷장과 책장에 놓아두는 것으로 갈음해 버리고 있는가.
그러다가 그 책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 역시 존재가 아니라 소유로 삶의 경험 방식을 바꿔가고 있다는 것 말이다.
존재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학생은 수업을 듣더라도 필기를 하느라 교수의 말을 못 듣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소유 방식으로 삶을 경험하는 학생은 교수의 모든 말을 필기하고 그 공책을 소유함으로써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저자가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소유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한다는 점이다.
그 대목은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뱉어내게 했다.
쭌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이 책을 혹시 읽었을지 궁금했다.
"너는 존재와 소유 중 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글쎄, 아직 소유한 것이 많지 않을 때는 소유가 중요하겠지만 어느 정도 소유했다면 그때부터는 존재가 화두가 되지 않을까?"
역시 쭌은 대화가 된다. 내가 쭌을 좋아하는 이유는 쭌과는 어떤 주제로든 즐겁게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미소가 새어나오는 걸 꾹 참고 다시 물었었다.
"하지만 그 어느 정도는 너무 주관적이잖아. 그것 역시 소유와 존재 중 뭘 우선적으로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을 것 같은데. 네가 생각하는 어느 정도라는 건 동산 차원인 거야?"
"아니, 일 잘하는 프로로 존재하고 싶더라도 직업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 또 그 직업을 갖기 위해 갖춰야 하는 자격도 어느 정도의 소유가 필요한 거고. 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소유는 필요 조건인 거고, 존재는 충분 조건인 거라고 말야."
'...!'
나는 그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 남자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쭌은 내가 속으로 생각하면서 부르고 있는 노래를 흥얼거려서 나를 놀라게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우리는 취향이 비슷한 걸까, 생각이 비슷한 걸까? 가만, 둘 다인가? 혹시 우리가 서로 닮아가고 있는 건가? 사랑하면 닮는다던데. 에이, 설마.
그런 꿈을 꾼 적은 있었다. 쭌과 친구들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는 꿈. 나는 친구 커플과 같이 길을 가다가 쭌을 발견하고 내심 반가웠지만 쭌이 좀 멀리 있어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어쩐지 꿈에서 나는 쭌과 친구가 아니라 모르는 사이였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만 아는 정도? 그런 상황에서 쭌이 나와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하는데 쭌이 팔짱을 끼는 게 아닌가. 싫지는 않았지만 조금 당황해서 "어, 저기 반갑기는 한데...."라며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과 친구들이 있지 않냐는 눈치로 쭌을 보는데 이제는 아예 손을 잡고 깍지를 끼는 게 아닌가. 마치 내 감정을 확신하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 당당함에 헐 어케 알았지 하고 멍 하니 쭌의 얼굴을 봤다. 그러다가 잠이 깼는데 왠지 쭌의 사진을 찾아보게 됐다.
이 녀석이 다 알고 있는 건가. 아니 그럼 꿈에서 이러지 말고 좀 현실에서 용기를 내 보시지. 가만 그럴 틈이 없었던가?
모르겠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