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쭌쭈루쭌쭌 쭌, 쭌!
쭌은 특이했다. 가끔 쭌은 나더러 이상하다고 했다. -물론 쭌은 내게 특별하다고 표현하기는 했다.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너도 그렇다고 반박(반사?)하고 싶은데 '특별'이라는 말에 내 마음을 들킬까 봐 그냥 잠자코 있었을 뿐, 쭌에게도 다소 독특한 점이 있었다.
쭌은 버스든 음식이든 입장이든 기다리는 것도 즐겁다고 했다. 기다리면서 같이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이 풍경 속에 존재하는 게,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의 근황을 알 수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손님이 기다림의 대가로 물건을 받는 건가 착각하게 만드는 장인 정신의 방망이 깎는 노인이 좋아할 스타일인 쭌. 쭌은 장인이 가구나 악기 만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영혼까지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가게에서 기다리면 어머니 나이뻘 되는 반찬 가게, 닭가게, 포장마차 가게의 아주머니들이 값을 깎아주거나 닭다리 하나를 맛보라고 주거나 어묵꼬치 하나를 더 주거나 하는데, 그게 그렇게 고맙고 마치 어머니를 만나는 듯해서 반갑다는 쭌. 쭌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면 어머니 같은 그 사람들의 공간에 타당한 이유로 더 있을 수 있어서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겁이 많은 나와 달리, 쭌은 밤늦게 산책을 종종 한다길래 무섭지 않냐고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이 많아서 괜찮아."
또 어느 날은 밤늦게 운동을 한다길래 겁도 없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반대로 대답했다.
"사람이 없어서 괜찮아."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은 건지, 쭌이 한 말은 모두 장기기억장치에 저장해서 그런 건지 정반대의 대답이 의아했지만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나 역시 어떨 때는 사람이 제일 무섭기도 하니까.
"그래도, 귀신 나올 것 같아서 무서울 텐데."
"흠. 귀신이 무서워?...그거 알아? 귀신도 사람이었어. 처음부터 귀신인 건 아니야. 왜 사람이었던 귀신이 왜 자꾸 사람 곁에 있을까? ...그건 아마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일 거야. 그런데 그 사람을 찾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습을 들켰을 때, 생전과는 다른 반응에 황급히 몸을 숨겨야 했을 때 얼마나 외로울지 생각해 봐. 아마 귀신도 놀랐을 수도 있어. 어떤 영역이나 순간에 들어섰을 때 귀신이 존재하는 차원과 사람이 사는 차원의 교집합 같은, 모호로비치치면 같은 것이 있고 귀신은 그걸 알고 있다면 계속 기다릴지도 모르지. 자신이 보고 싶은 사람이 그 영역에 들어서는 걸 말야. 하지만 과연 반겨줄지 확신은 없을 거야. 또 반겨준다고 해도 차원이 다른데 계속 함께할 수도 없을 텐데.... 좀 안되지 않았냐?"
쭌과 같은 생각을 한다면 이 땅의 모든 퇴마사들이 로맨틱한 상담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봤던 무서운 책과 영화들을 순식간에 짠내 나는 귀신 버전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바꿔 버린 쭌. 그날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게 된 이후로는 나 역시 귀신이 무섭지는 않다. 그러나 보고 싶은 이유 중에는 로맨틱하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쭌이 만나고 싶은 귀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 당시에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만약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그러다가 내가 먼저 귀신이 된다면 망설이지 않고 쭌에게 귀신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쭌이 기다릴 테니까 서둘러 고참 귀신들에게 사람 만나는 방법을 묻고 준비를 끝내고 쭌을 기다리겠지. 쭌이 반겨줄 거라는 확신을 지닌 채 말이다.
쭌을 만나면 웃으면서 말해 주고 싶다.
우리 정말 잘 지냈고, 예쁜 기억들이 많아서 좋았어.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이제 더는 그런 순간들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추억할 것들이 많으니까 그 행복을 생각하자. 기다림은 없겠지만 그리움이 있다는 건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이야. 그게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야.
배경 음악: A Winter Story - (러브레터 OST): http://youtu.be/4YlWxDD3-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