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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Apr 20. 2016

두평짜리 소설

7호-달의 모공

배경 음악: '안녕바다'의 노래, '별빛이 내린다'


나와 쭌은 학과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별자리 동아리 회원이었다.

쭌의 별자리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튼 쭌은 남자치고는 별자리를 잘 알고 있었다. 쭌은 신화를 좋아해서 별자리와 관련된 것도 많이 읽었고 그러다 보니 별자리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어느 날 동아리 모임 일정을 짜다가 천문대에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내가 천문대에 가는 것은 별로라고 했더니, 쭌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별자리에 관심이 많고 밤하늘을 보는 것도 좋아했으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겁이 많아서 혼자서는 절대 밤하늘을 보는 법이 없다. 나는 그때 왜 때문에라고 묻는 듯한 쭌의 얼굴을 흘깃 보면서 천문대에 가는 것보다는 한적한 공원에서 다 같이 밤하늘 바라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었다.

그게 무슨 시시한 소리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애써 말한 논거는 밤하늘의 별은 밤 11시 30분에 가장 빛나는데, 정말 별이 반짝거리며 말을 거는 듯한 그 순간을 함께하는 추억을 갖자는 거였다. 이 얘기를 듣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우리는 천문대에 갔고, 나는 막상 갔으니 망원경을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 까만 밤하늘에 별사탕처럼 송송 박힌 별들이 반짝이는 풍경이었다.

밤하늘의 달은 아름답지만 망원경으로 바라본 달의 표면은 조금 안타깝다. 그렇게 많은 상처가 있을 줄은 몰랐다.

내게 망원경이란,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현미경으로 그의 모공을 들여다보는 일처럼 느껴진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현미경으로 홍채를 들여다보고, 입술 주름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해 보라.

나는 밤하늘을 사랑하는 것과 밤하늘에 존재하는 것을 낱낱이 알아내는 것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쭌에게 말했었다. 정원의 꽃이 아름답다고 해도 그걸 꺾어서 꽃병에 꽂았을 때는 꽃잎의 색이 바래진 듯한 느낌을 받은 경험이 있는가. 모든 존재는 그것을 둘러싼 배경과 함께하기에, 밤하늘에서 뚝 떼어낸 별의 표면이나 달의 표면을 보는 것은 개구리를 해부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라 관찰자니까.

맨눈으로 측정해도 시력 1.2인 나는 때때로 어떤 풍경은 일부러 눈을 반쯤 감고 바라볼 때가 있다. 눈부신 풍경, 혹은 눈부시지 않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왠지 흐릿하게 기억하고 싶은 건 내가 이상해서인 걸까.

어떤 음악은 눈을 감고 듣고 싶은 것처럼, 어떤 순간에는 나의 감각 여럿 중 단 하나만을 열어두고 오롯이 집중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밤하늘을 사랑하는 것은 별들이 아름다워서라기보다 어쩌면 그 풍경을 바라보는 작은 사람들-연인들, 가족들, 작은 동물들이 아름답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밤하늘을 보고 예쁘다고 느끼는 나의 오늘이 반짝이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쭌이 나를 사랑해서 나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더라도, 밝은 조명 아래에서는 아니었으면 좋겠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미소에 조금 가늘어진 눈으로, 조금 흐릿한 조명 아래에서, 조금은 졸려 몽롱한 기분일 때에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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