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호-오징어와 너
"나 어제 오징어 구워 먹었다!"
"...?"
스시 뷔페에 다녀온 것 같은 이 뿌듯함이 가득한, 그러나 뜬금없는 이 한마디에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동백꽃의 점순이가 "느 집엔 이거 없지?"라는 말을 하며 감자를 건넸을 때 주인공의 표정도 그랬을까. 쭌은 내게 오징어를 건네지는 않았기에 무엇인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같다는 추리 끝에 물어보았다.
"오징어? 너 오징어 좋아했어? 몰랐네."
쭌의 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들은 것을 옮겨 보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쭌은 어릴 때 오징어를 자주 먹었대.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안 먹었대.... 엄마가 쭌도 모르는 쭌의 식성을 알고 오징어를 한 마리씩 사주곤 했는데 그럼 어린 쭌이 아무도 안 주고 혼자서 아주 천천히 야무지게 다 먹었던 거야.
그러면서도 오징어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못 했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왜 자기가 턱뼈가 시큰할 때까지 열심히 먹어댔는지 몰랐대. 그러다가 쭌이 강아지에게 물을 갈아주고는 깨달았대. 딱히 목이 말라보이지 않았는데 굳이 물을 열심히 마시는 강아지를 보고 말야. 물을 갈아준 쭌을 좋아하기 때문에 쭌이 준 물은 다른 물과 다른 의미로 맛있었던 거지.
만약 어머니께서 쭌에게 유부초밥을 줬다 해도 그걸 엄청 먹어댔을 거야. 쭌은 초밥을 좋아하지만 유일하게 안 먹는 것이 유부초밥이거든.
그러니까 쭌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오징어를 보면 슬픈 생각이 들었을 거고, 자연히 더 안 먹게 됐던 거지. 물론 남들에게는 오징어 특유의 냄새가 싫다는 핑계를 댔겠지만....
그러다가 어제 마트에서 오징어를 보고 문득 먹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대. 쭌은 이렇게 말했어. "그때서야 슬픔을 씹어삼킬 용기가 생긴 것 같아."라고.
-마치 첫사랑의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가 결혼 후, 청소를 하면서 우연히 그 사진을 다시 보게 됐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넣고 청소를 계속하는 장면과 비슷한 맥락인 걸까? 짐작하기가 어렵다.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타인의 감정일 뿐인데, 그 사람이 쭌이라서 그 슬픔을 비슷하게나마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