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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Dec 26. 2016

두평짜리 소설

16호-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 Close to you (sung by Olivia Ong)


나는 질투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쭌이 같은 과 후배에게 팔을 내어주기 전에는 말이다.

그때는 벚꽃이 피어나는 봄이었다. 새내기들은 벚꽃처럼 귀엽고, 귀여웠다. "선배"로 불리는 쭌은 유독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후배 중 한 명이 쭌과 똑.같.은 안경을 쓰고 온 날이 있었다. 나는 그날 사람이 아니라 안경에도 질투를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 달인가 시간이 지나서 나는 쭌에게 말했었다. 그 안경은 얼굴형이랑 안 어울리는 것 같다고. 쭌은 머리를 긁는 시늉을 하면서 쩝 입맛을 다시며 잠깐 생각을 하더니 말했었다.

"그럼 바꿔야겠다!"

"정말? 진짜진짜?"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다, 표정도 감추지 못하고.

사실 쭌은 그 안경이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냥 장시간 써도 불편하지 않도록 가벼운 알과 안경테를 골랐다고 하는데 샤프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얼핏 보면 같다고 할 만큼 비슷한 안경을 장만한 후배의 마음을 쭌이 자연스럽게 외면하게 하기 위해 "안경 교체 유도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어서 쭌은 철벽남이 되었던 것이다.

요즘 내가 쓰고 있는 것이 그 당시 그것처럼 샤프한 안경이다. 쭌을 만나게 됐을 때 그 안경 뭐냐고 짐짓 물어보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1. 아니, 이게 유행이어서...

2. 왜, 나는 뭐 너 따라 하면 안 되냐?

3. 너도 이런 걸로 바꿔~ 우리 커플 안경 쓰자!

4. 그때 너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서....

답은 없다. 말이라는 것은 때로 복잡다단한 감정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말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전달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시 만난 우리가 이 안경을 보게 된다면? 난 감추지 않을 것이고, 쭌은 그저 '어라?'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을 하겠지. 그때 나는 말없이 그 안경을 쓴 채로 빙긋 웃을 것 같다. 그럼 알게 되지 않을까. 쭌이 그런 날 보며 느끼는 감정, 바로 그 감정을 느꼈던 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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