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리 Sep 14. 2016

두평짜리 소설

13호- 당신은 천사와 수박 주스를 마셔 봤습니까

가끔 예상과 다른 음식이 있다. 나는 토마토 주스에 편견을 가진 적이 있다. 그걸 사약을 들듯(?) 마시기 전에는 케첩에 물을 부은 맛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심지어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사실 깜짝 놀라게 하는 음식들은 많다. 과일만 봐도 그렇다. 파인애플을 통조림으로만 만났을 때는 그렇게 과격한(?) 껍질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복숭아는 어떤가. 그 달콤한 것이 털이 있다니! 그 뺨처럼 붉은색과 안 어울리는 듯 묘하게 어울리는 보송보송한 털은 귀여운 편이다. 그런가 하면 정체성을 의심하게 하는 식재료도 있다. 목이버섯은 마치 미역 같은 느낌이다.  본래 사물은 사실 경계가 없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그것을 나누기 이전에는 말이다.

경계 혹은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음식들이 최근에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짬짜면이 대명사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나는 직장인의 최대 고민이자 사치는 저녁 메뉴라고 생각했다. 메뉴를 고민하다 만약 짜장면에 생각이 미쳤다면 이내 시작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질문이 있다. 짜장면과 짬뽕 중 무엇을 먹을 것인가. 둘 다 먹으면 되겠지만 예산이 한정되어 있지 않은가.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을 이때만큼 절실히 깨닫게 될 때가 없다.

나는 수박 주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맛있다는 얘기를 쓰는 것보다 그냥 한번 마셔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마셔 보면 알 것이다. 왜 수박 주스가 존재하는지.

음식만 그런가. 사람도 그렇다. 겪어 보면 예상과 다른 사람이 믾다. 예상이라 쓰고 편견이라 읽는 게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물론 선입견과 얼추 맞아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첫인상이 괜히 중요한 게 아니고 평소 인상이 괜히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나 실제 사기꾼은 호감을 주는 외모가 많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선입견의 편리함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혈액형에 따른 분류부터 별자리에 따른 성격 그 둘의 조합에 따른 성격까지. 이런 것은 안 믿더라도 MBTI는 꽤나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통계라는 것은 평균으로 선입견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모집단의 평균 키가 165라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실제로 딱 165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그런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는 모두 예상과 다를 수 있고 그래서 규정하기(또는 예측하기)가 힘든 게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다른 게 사실 정상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결국 결론은 예상과 다른 게 정상이라는 식으로 거칠게 비약되어 버린 것 같다. 철학적 바탕이 부족해서 좀 더 그럴 듯하게, 매끄럽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인생이라는 것이나 계획이라는 것도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확장해 보려고 한다. 계획과 다른 결과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상대로, 기대대로 되는 삶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좀 더 시간적으로 긴 관점,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말이다.

가족도 전 생애에 걸쳐서야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만약 누군가와 조금 일찍 헤어지게 되더라도, 학교나 직장의 인간관계나 업무로 힘들더라도 그건 모두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삶을 오해하지 않는다는 건, 흔히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조리 피하려 하거나 "왜 이런 불행을 주시나요? 왜 하필 저에게!"와 같은 자세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한 인간으로서 약한 부분을 단련할 수 있도록, 신이 주는 기회일 수도 있다.

삶이야말로 예상과 다른 음식 같은 것이니, 마지막 한입까지 씹어 삼켜 보면서 겪어본 뒤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뜻밖에 쭌을 아주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쭌은 내 기대대로 나를 좋아해 주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러 이유로 예상보다 조금 일찍 멀리 있게 되었다. 아니  쭌이 없어도 될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좀 이르게 얻게 되었다. 그건 언제가 되든 항상 좀 이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 점이 감사한 부분이다. 좀 이르다고 느낄 만큼 나는 쭌이 참 좋았다.

작가의 이전글 두평짜리 소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