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당 있는 집에 살면

강화도 599일째

by 빅피쉬

강화도 집 마당에 수도가 있다. 수돗가는 주변보다 움푹 파인 사각 모양이고 물이 내려갈 수 있는 하수구가 있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외양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좀 문제가 있다. 도로에서 십여 미터 옆으로 난 길로 들어오면 우리 집인데 지대가 도로보다 낮다. 비가 많이 내리면 조그만 자갈과 흙모래가 집 마당 쪽으로 쓸려 내려온다. 수돗가 맞은편에 있는 밭으로 물이 빠지면 되는데 마당 경사로의 단면이 완만한 부채 모양 곡선이다 보니 일부가 수돗가로 모인다. 이게 왜 문제냐고?

왼쪽에 수돗가, 오른쪽은 밭 그리고 내 차.


물이 수돗가로 모이는 건 상관없지만 토사가 들어오면 하수 구멍이 막힌다. 비가 내리면 수일 동안 수돗가에 물이 고여 있다. 내가 우산을 들고 가서-우산 꼭지를 꼬챙이처럼 이용한다- 하수구 거름망에 쌓인 흙을 빼내면 물이 내려간다. 이 작업이 어려운 건 아닌데 은근히 귀찮다. 외지에 거주하는 주인아저씨가 마당 하수구가 막히면 집 전체 물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어서 나는 비가 내리는 게 매우 신경 쓰였다. 모래주머니를 구해서 둑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기다란 포대만 팔고 모래는 내가 알아서 구해야 함.) 주인아저씨가 시멘트로 턱을 만들어주면 간단히 해결될 것 같은데 해주실 리가.
그러다 내가 방법을 찾았다.




짜잔! 가지고 있는 사각 화분과 돌멩이를 주워다가 둑을 만들었다. 수돗가 주변을 다 두를 필요는 없었다. 모서리 한쪽만 막으면 됐다. 이 허술한 둑이 소용이 있냐고? 당근 이게 다가 아니지. 더 중요한 처방은 둑 바깥쪽에 흙을 모아두는 거다. 수돗가 안쪽에 이미 모여있는 흙을 퍼내서 옮긴다. 비가 오면 다시 안 쪽으로 쓸려갈 텐데? 그렇다. 조금은 들어간다. 자자, 인내심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 모래투성이 흙무덤에 손님이 찾아올 때까지.



마침내...





깨진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풀이 자라니까. 흙만 모아두면 초록 생명이 찾아올 거라고 믿었다. 풀뿌리가 흙을 잡아줄 거라고. 숲이 산사태를 막듯이. 너무 거창한가. 하지만 효과가 있다!




그 후로도 빗물이 고였지만 유입되는 토사의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예전 같으면 휩쓸려 들어왔을 흙모래는 이미 쌓여있는 흙더미 앞에서 멈춘다. 아무리 거친 땅에도 뿌리를 내리고 마는 작은 생명들 발 밑에 엎드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