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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생각보다 너그러운 곳입니다

분노조절 방법 이해

by 상담군


요새 줄임말을 많이 쓰죠. 이걸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로 젊은지 아닌지 평가하더라구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줄임말 퀴즈를 내면 갑자기 조마조마하면서 내가 아는 말인지 아닌지 속으로 시험을 치르곤 해요. 그래서 잘 모르겠는 말이 나오면 기분이 상하기도 하죠. 세상에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구요.


최근에 상담실에서 ’분조장‘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분조장이 있어서 고민이라는 거였어요. 무슨 말인가 한참 생각했는데 내담학생이 분노조절장애를 뜻하는 말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더라구요. 어때요? 줄임말 치고는 좀 쉽죠? 한편으로는 분노조절이 잘 안 돼서 고생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기에 이걸 줄임말로까지 만들었나 안타깝기도 했어요.


아까 제가 대표적인 부정적 정서 중 우울, 불안, 분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설명할 거라고 했지요. 이 세 가지 느낌은 우리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하지만 분노는 앞의 두 감정과 달라요. 우울과 불안은 자기 자신만 아프지만,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화는 발발하는 그 순간에 대상을 말이나 행동으로 공격하려는 충동을 일으키거든요.


분노는 범죄와 밀접하게 연결된 정서입니다. 작게는 친구들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수준에서 크게는 상해, 살인까지도요. 그 동기가 분노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발적, 충동적으로 행동했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죠. 화가 나서 누군가를 공격했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불타는 것 같은 기분은 금방 꺼지지만, 행동의 결과는 너무 많은 후유증을 남기거든요.


과거 인류에게 이 정서는 어떤 적응적 효과가 있을까요? 이 감정을 잘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해를 끼치면 보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었지요.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죠. 지금도 여러분이 화가 치밀 때면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대부분 무시당했다고 여겼기 때문일 거에요.


더지(Dodge)라는 심리학자는 분노조절 문제로 공격행동을 하는 사람이 가진 생각의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총 다섯 단계인데요, 첫째, 적대적 단서에 예민합니다. 예를 들어 지나가다 누구랑 부딪쳤다면, 이 사건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둘째, 상대의 의도를 나쁜 쪽으로 해석합니다.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셋째, 그 상황에서 공격적인 방안들을 주로 떠올립니다. 의도를 묻기, 대화로 해결하기 등등을 잘 떠올리지 못하고 욕을 하거나 반격을 하는 행동들만 생각납니다. 넷째, 각각의 대안들 중 폭력적 반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자신이 때리면 상대가 굴복하고 사과하여 속 시원하게 상황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실제 부딪친 사람을 공격하는 단계죠.


더 요약하면 분조장이 고민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는 두 가지가 고민입니다. 하나는 화가 나는 거고, 둘은 행동 실수를 하는 거죠. 아무리 화가 치밀어도 그걸 참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마음고생을 할지언정 상담실에서 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신 부당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너무 많은 분노를 참으면 홧병이 생기게 되죠 (이 병은 정신질환 사전에도 등재된 한국형 질병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화가 나는 과정을 가만히 보면 결국 해석의 문제가 있지요? 세상을 실제보다 척박하게 지각하기 때문에 분노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실수로 부딪쳤는데 때렸다고 생각하고, 악의 없이 던진 말에 자신을 무시했다고 여기면 다른 친구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화가 나게 됩니다. 이때 대화로 갈등을 다루어 본 경험이 없다면 욕설을 하거나 때리는 것 말고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말로 하면 만만하게 보고 상대가 무시할 거라고 판단하죠. 이런 생각들은 찰나의 시간에 뇌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분노조절의 문제가 있는 친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먹이 먼저 나갔다고 하죠.


분노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는 세상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라는 말 들어보셨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조직폭력배가 자주 등장하고, 미디어를 보면 이 사회가 온갖 강력범죄가 넘쳐나는 무시무시한 곳으로 보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 말이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자극적인 이미지들을 지우고 범죄율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충분히 안전한 곳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타인을 위협적으로 대하면서 대하는 것이 유리해 보이지만, 욕설, 폭행의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면 정상적인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사는 게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경험상, 이 세계에는 기본적인 윤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착한 사람의 수가 상습적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의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화가 치밀 때 최고의 대응 방법은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도저히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다면 일단 도망가세요. 양해를 구하고 화가 일어났던 장소에서 나가세요. 분노는 불 같아서, 연료를 주지 않으면 금방 꺼집니다. 욕 한 마디 하면, 주먹 한번 휘두르면 속 시원해질 것 같다는 유혹이 아무리 여러분을 뒤흔들어도 속아 넘어가지 마세요. 다시 말하지만 세상은 너그러운 곳입니다. 폭력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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