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학 개론
학교상담실에서 종종 ‘대인관계 기술 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을 열 때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을 배우는 거죠. 지나치게 소심해서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거나, 자주 주변 사람들과 다투거나, 친구들을 만들어 보려고 애써도 방법이 서툴러 뜻대로 되지 않는 학생들에게 소개합니다. 물론 인간관계를 맺는데 특별한 어려움이 없더라도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참가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대인관계’에 ‘기술’이라는 단어를 붙인 건 좀 어색합니다.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솜씨, 배관을 설치하고 보일러를 고치는 요령 등을 기술이라고 하잖아요. 친구를 새롭게 사귀고 친밀한 상태로 이어나가는 건 너무나도 인간적인 거잖아요.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피아노나 자전거처럼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익히다니, 진짜 정 없어 보이죠.
하지만 가만히 사람을 잘 대하는 방법을 분석해 보면 기술이라고 할 만 해요. 대인관계 기술은 크게 첫째, 언어적 의사소통 기술. 둘째, 비언어적 의사소통 기술, 셋째, 감정지능.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언어적 의사소통 기술이 있다는 건 다른 사람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거기에 맞게 반응할 줄 안다는 거에요. 비언어적 의사소통 기술은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손짓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적절한 대응(언어 이외에)을 하는 능력이에요. 감정지능은 여러 상황에서 자기 감정을 알아차리는 재능이에요.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감정도 읽을 줄 알아야겠죠. 감정 이야기는 행복을 다루면서 이전에 많이 했으니 여기서 따로 설명하지 않을게요.
더 요약하면 다른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능력이 인간관계 기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거죠. 심리학자들은 잘 듣는 걸 강조하고 있어요. 상담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럴만도 한 게, 누구나 경청 잘 하는 사람을 원하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그 사람이 말할 때 “응”, “그랬어?”, “진짜?”, “그랬구나” 같은 추임새를 넣으라고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있죠. 그동안 주변인이랑 대화할 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이런 정도의 교육도 큰 효과가 있겠죠. 그런데 계속 추임새만 하면 장난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여기에 당했던 많은 학생들이 상담선생님을 ‘구나’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사실 경청은 깊이가 중요해요. 화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바는 욕구와 감정이에요. 느끼는 것과 바라는 것. 그들이 열띤 목소리로 쏟아내는 장황하고 긴 말 속에 꼭꼭 숨겨져 있는 것들이죠. 예를 들어 냉정한 엄마에 대한 불평에는 서운함이라는 감정과 더 부드럽게 대해주길 바라는 욕구가 있겠죠. 이건 화자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에요.
아까 비언어적 의사소통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썼죠. 쉽게 바꾸면 의사소통할 때 사용하는 수단 중 언어 빼고 다에요. 우리는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해요. 찌푸리면서 ‘나 괜찮아’ 그러면 안 괜찮다는 뜻 인거 알죠? 손짓도 쓰죠. 모형이나 구조를 설명할 때는 열심히 손으로 그림을 그리잖아요. 화가 나면 주먹을 꽉 쥐기도 하구요. 말을 안해도 표정과 손짓만 가지고 우린 되게 많은 정보를 얻어요. 그래서 비언어적 의사소통 기술이 뛰어난 사람은 외국어를 잘 못해도 해외여행을 잘만 다니죠. 신기하게도 이런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전달 내용 중 70%를 차지한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 잘 끄덕이고, 슬픈 얘긴지 기쁜 얘긴지에 따라 말투의 텐션도 조절하구요. 슬픈 이야기에 웃거나, 과도한 몸짓을 보이면 안 되겠죠. 눈을 적당히 맞추는 대신 너무 뚫어지게 바라보면 부담스러우니까 가끔씩 시선을 쉬기도 해 주면 좋아요. 내용과 그 안에 있는 욕구와 감정을 이해해서 ‘OO하다는 말이지?’라고 재질문도 해서 잘 들으려고 노력한다는 걸 보여주구요. 당연히 아까 말한 추임새도 적절히 넣구요. 이렇게 하면 경청이 되고 확실히 대화가 누적되면서 얘기했던 사람과 사이도 좋아지게 되어 있어요.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평판도 생길 거구요.
다만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대신 해결하려고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기가 막힌 방법이 생겨났어도 충고나 조언은 피하는 게 바람직해요. 그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기도 하니까요. 설령 그걸 따라해서 도움이 됬다면 의존을 하게 될 위험도 있어요. 자기 고민은 스스로 해결하고 의사소통을 할 때는 주로 감정과 욕구를 이해주고 알아주는 의사소통을 하는 거죠.
자 이제 ‘대인관계는 기술이다’라는 말이 이해가 가시나요? 이렇게 대인관계 기술을 훈련시켜 주는 영상이나 책이 많이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다른 자료들을 참조하시면 될 거에요.
그런데요. 제 견해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데 인간관계 기술은 절반 정도의 역할만 한다는 거에요. 나머지 반은 ‘잘 지내고 싶은 마음’ 그 자체에요. 이걸 전문용어로 대인 동기라고 해요.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앞에서 말해준 기술들이 소용이 없다는 거죠.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 주변에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 말을 들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결국 대인관계 기술을 익히고 사용하는데 노력이 들어가는데 그럴만한 가치를 느끼나요? 이 질문에 답하는 게 잘 지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요.
세상에는 내 마음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너무 미우면 싸우면서 지내는 게 그 사람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서 관계를 개선하는 것 보다 더 낫겠다 싶죠. 타인과의 교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혼자 있기를 선호하면 그냥 편한 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이대로 살고 싶기도 하죠. 그리고 솔직히 경청 하려고 해도 상대의 말이 터무니없어서 말을 자르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잖아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도 결국 유년기의 인간관계, 인생 초기에 만났던 친구들의 영향이 강력하죠.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성격 요소는 일부 타고나구요. 이런 것들이 타인과 교제하고자 하는 욕구인 대인동기를 결정해요. 그래서 또 우리는 이렇게 심리적인 문제로 돌아왔어요. 대인기술은 훈련이 가능하지만 그건 대인 동기라는 연료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이 연료의 공급량은 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서 결정되는 거에요. 그니까 여러분, 이 절에서는 대인관계 기술은 잘 모르겠어도 사람들과 잘 살아보고 싶다라는 마음만은 가져가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