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경험의 의미
지그문드 프로이트(Sigmund Freud)라는 이름을 아시나요? 심리학에 관해 잘 모르는 분들도 한 번쯤 스쳐 들었을 듯한 분입니다. 인간의 정신병리의 원인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찾았기에 사실상 심리치료의 창시자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분의 이름을 못 들어봤다 하더라도 긴 소파인 카우치(Couch)에 누워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검열 없이 이야기하는 상담 장면이나 과거의 일을 회상하다가 자신이 사랑받은 혹은 학대받은 일이 있었음을 깨달으며 눈물 흘리고 착한 사람으로 변하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았을 겁니다. 그런 장면들이 프로이트 이론의 영향을 받은 거에요.
이를 정신분석이라고 합니다. 정신분석 이론은 어린 시절에 느꼈던 강렬한 정서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엄청나게 슬펐거나, 공포스러웠던 경험이요. 아빠랑 싸우고 돌아오지 않은 엄마의 마지막 뒷모습, 물에 빠져서 죽을줄만 알았는데 극적으로 구해졌던 경험 같은 거요. 이런 체험들은 떠오를 때마다 너무너무 무섭죠. 그래서 인간은 강렬한 부정적 정서를 느꼈던 경험을 잊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과거 기억들의 이미지, 내용들은 잊혀지지만 정서만 고스란히 남아서 버림받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물에 관한 알 수 없는 공포를 가진 채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게 계속 영향을 미치면 일종의 성격이 되는 거겠죠.
프로이트의 이론을 후대의 심리학자들이 계승 발전시켜 ‘대상관계 이론’이라는 학설을 만들었습니다. 이 이론의 핵심 내용은 아기 때 아빠, 엄마와 어떤 사이였는지에 따라 나중에 접하는 사람들을 지각하는 방식이 정해진다는 거에요. 충분한 애정과 보살핌을 받았다면 인간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요. 일단 타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고 나면 그 관념과 일치하는 증거들만 눈에 보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냉정한 양육을 거쳤다면 ‘사람들은 냉정해’라고 생각하고, 이후에 누군가가 따뜻하고 포근하게 대해줬어도 무시하고 금방 잊게 된다는 것이죠.
생각해 보면 자기 자신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면도 있어요. 만일 여러분이 ‘인간은 틈만 나면 비난하고 공격하는 존재야’라는 생각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타인을 대할 때 자꾸 눈치를 보게 될 겁니다. 그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에요. 아니면 아예 마음에 벽을 치고 먼저 거칠게 대할 수도 있겠죠. 그러면 상대방도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래서 친밀해질 기회를 놓치게 되고, 여러분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주변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은 더 강해지게 되겠죠.
이 절에서 저는 독자들이 ‘아 내가 색안경을 끼고 있구나’라는 걸 알아차렸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매정해’라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실제로 그런 면만 보입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사람은 드물고 대부분은 평범합니다. 약간 착하지만 뜯어 보면 단점도 있는 보통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어린 시절 부모님과 맺었던 관계 방식이 만들어 놓은 색안경에 비친 상을 여러분은 보고 있는 거에요.
이 사실만 이해해도 대인관계가 한층 편해집니다. 하루에도 수 십번씩 남들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나를 상처받게 했던 말이 알고 보면 별 메시지 없는 말이었고, 나를 들뜨게 했던 말도 그 사람이 늘상 다른 친구에게도 하던 말이라는 걸 알게 되죠. 내 마음이 안정되면 특별한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인간관계가 자연스러워집니다.
잘 훈련된 상담자는 내담자를 잘 이끌어 어린 시절을 만나게 해 주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만들어졌던 그때의 경험을 다시 체험하게 해 주죠. 엄마, 아빠라는 내 마음의 요람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알아차리고 나면 투명해 보였던 내 안경의 색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태도가 이전과 달리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내 태도도 더 부드럽게 변하게 됩니다. 인간이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행복, 느끼고 나면 고통스러웠던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