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위주의 편향
어린 왕자가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거기서 뭘 해요?” 아저씨는 대답했죠. “술을 마신단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되물었죠. “술은 왜 마셔요?” 아저씨는 “잊기 위해 마신단다.”라고 말했어요. 궁금했던 어린왕자는 “무얼 잊어버리려고 하는데요?” 그러자 아저씨는 “부끄러운 걸 잊어버리기 위해서야.” 라고 대답했죠. 의아했던 어린왕자는 “뭐가 부끄러운데요?” 라고 물었고 아저씨는 “술을 마신다는게 부끄럽지.”라고 답했습니다. 생택쥐베리의 『어린왕자』라는 동화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죠.
행동의 결과가 원인이 되고, 그 원인이 다시 결과로 이어지고... 제 3자가 보면 답답하고 어리석어 보이죠. “그냥 그만하면 되잖아!” 라고 소리쳐 주고 싶잖아요. 이런 일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숱하게 많이 일어납니다.
상담실에 엄마와 아이가 왔습니다. 엄마가 한탄해요. “우리 아이가 컴퓨터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걱정입니다.” 그러자 아이가 말하죠 “엄마가 자꾸 잔소리하니까 스트레스 받아서 게임이라도 해서 풀 수밖에 없어요!” 상담자가 묻습니다. “엄마가 뭐라고 잔소리 하는데?” 아이는 말합니다 “컴퓨터 게임 좀 적당히 하라고 잔소리해요.” 보세요. 어린왕자 이야기랑 똑같죠? 엄마는 문제의 원인이 아이에게 있다고 말하고, 아이는 엄마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어때요? 여러분도 늘상 겪는 일들 아닌가요?
이게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의 특징입니다. 각자가 문제의 근원을 상대에게 돌리기 때문에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제 3자가 이 꼴을 보면 속터지듯 본인들도 그렇습니다. 상대의 잘못이 명백하고, 조금만 마음만 고쳐먹으면 되는데 별것도 아닌 일을 질질 끌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이 상태가 교착되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갈등이 지속됩니다.
제가 이전에 ‘인간에게는 자기 위주의 편향이 있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죠.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인 입장을 고려하기보다 자기 입장은 먼저 내세우죠.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또 자기 과제는 무겁게 느껴지는 반면, 다른 사람이 당면한 난관은 사소해 보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끙끙거리면 지나가던 어른들이 “좀 참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될 걸 엄살이다”라고 하는 거죠. 사례에서 엄마와 아이도 마찬가지라서 엄마에겐 잔소리하는 습관이 고치기가 힘듭니다. 아이 입장에선 컴퓨터 게임 즐기기를 포기하는 게 더 어렵죠.
앞으로도 몇 번 더 언급하겠지만 ‘타인은 바꿀 수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나 뿐이다.’라는 인간관계 격언의 기본을 항상 의식해 보세요. 다른 사람을 대하는 내 태도만이 오직 고치고 손볼 수 있는 유일한 영역입니다. 잔소리를 하고, 어르고, 달리고, 혼내고, 심지어는 때려도 남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는 건 잘 안 됩니다. 각자의 입장이니까요. 위의 사례에서 만일 엄마가 홀로 상담실에 온다면 잔소리를 그만하고 다른 방법을 쓰기로, 아이가 홀로 온다면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만 게임을 하기로 상담목표를 정할 겁니다. 둘이 같이 온다면 컴퓨터 게임을 얼마나 허용할건지 합의하도록 하겠죠. 그러면 이 순환 관계가 끊어질 겁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뜯어 고치는 것 보다야 자기 습관 고치는 게 낫지만, 그것도 단시간에 되는 일은 아닙니다. 다만 자기 자신의 변화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갈등이 해결의 방향으로 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임’을 지게 됩니다. 각자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자기 몫의 책임을 가져가야 꼬였던 이 문제가 풀리게 됩니다.
‘내 문제는 내 책임이다’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 따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고통 뒤에는 달콤함이 있습니다. 원만한 인간관계라는 열매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