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기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이는 천주교의 기도문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입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제가 살면서 가졌던 바램을 명쾌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어 참 좋아하는 기도문입니다. 제가 가진 종교와 상관없이 말이죠.
인간관계야말로 ‘제가 할 수 없는 것을 체념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통제를 벗어난 완전히 개별적인 타인과 맺는 관계니까요.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아와 개성, 주관이 있죠. 그리고 자기 의지로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성향은 생각보다 강해서, 사람과 사람 간의 간섭은 특별한 권력관계가 매개하지 않는다면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내 의지로 바꾼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체념할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지요.
심리학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연하고 단단한 경계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만일 친구의 고민을 너무 많이 짊어져서 피곤하거나, 상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탁을 많이 한다면 경계가 너무 약한 것이죠. 반대로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에 관한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전혀 하지 않고 전혀 교감이 없다면 가족 간 경계선이 경직된 것입니다. 결국 서로 마음을 적당히 주고받는 것이 건강한 관계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선택과 책임은 절대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구요.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충조평판’을 하지 않기 권합니다. 충조평판은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합친 줄임말이죠. 전에 충고와 조언이 왜 도움이 안 되는지 설명 드렸지요? 충고와 조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우월하고 그 문제에 더 잘 알고 있다는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화자가 방법을 몰라서 고민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죠.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났다, 못났다, 똑똑하다, 예쁘다, 추하다 등.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평가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무례한 행위입니다. 판단은 그 타인의 됨됨이나 조건에 대해서 함부로 결론을 내리는 말이죠.
충조평판의 문제는 이것이 인간관계의 경계선을 침범한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생각, 정서, 행동, 말에는 그 주체의 역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건 궁극적으로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행위하고 책임을 질 권리가 있지요. 누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이 선을 넘는다면 상대는 불쾌해하죠.
여기서 더 나아가 타인을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바꾸려고 ‘충격요법’을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상처를 주는 비난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는 것이죠. 그러면 상대에게서 심한 감정과 행동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일단 기존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으므로 공격적인 행동을 한 사람은 자신이 답답한 상황을 타개했다는 착각을 할 수 있죠. 그러나 더한 반발이 나타나거나, 힘겨루기에 못 이겨 굴복한다면 원한을 품게 되겠죠.
다른 사람이 간섭한다면 나도 저항할 것을 뻔히 알면서 왜 비난, 손찌검, 충조평판등을 하는 걸까요? 저는 그런 행동 역시 ‘자기 위주의 편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만 상대에게는 그럴 근거가 없고, 있다 하더라도 내 몫보단 가볍다고 생각하는 거죠. 내 문제는 너무나 어렵고 골치아픈 반면, 상대의 고민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사소하다고 믿습니다. 이런 사람들끼리 모이면 싸움이 멈출 날이 없죠.
타인의 경계선을 침해하지 말아야 하는 만큼 내 경계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친구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정서적 고통을 과도하게 떠안으면 이는 내 인생에 장애물이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상대는 스스로 책임지기를 포기하면서 정신적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되지요. 결국 내 삶과 타인의 삶의 주체성을 모두 지키자는 것이죠.
앞에서 보여주었던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가 이제 좀 더 와닿으시나요? 저 기도 내용을 인간관계의 원리에 적용하면 ‘내가 다루어야 할 내 삶의 문제에는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시고 타인의 문제에는 대신 해결해주려는 충동을 포기할 수 있는 인내심을 주시고, 내 문제와 타인의 문제 사이에 있는 경계선을 항상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정도로 바꿀 수 있겠네요. 어때요?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