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교수님께 바치는 송사

지도교수님의 퇴임식에 낭독했던 송사

by 상담군


안녕하세요. 생물심리전공 상담군입니다. 저에게 전공학생 대표 송사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본인 상의도 없이 결정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먼저 더 이상 교수님의 명강의를 들을 수 없는 00대학교 학생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제 자유인이 된 교수님께 축하의 말씀도 전합니다. 저도 하루빨리 퇴임하고 싶지만 먼 미래라 더더욱 부럽습니다.


15년쯤 전인 2009년 가을 저는 ‘학습심리학 및 실습’이라는 수업을 수강하였습니다. 수업 첫 시간에 교수님께서는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무엇으로 인간과 나머지 동물을 구분할 수 있냐’라고 물으셨습니다. 학생들은 냉철한 지성, 언어의 존재, 도구의 사용 등 여러 근거를 대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비슷한 덕목을 동물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려 주셨습니다. 결국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질적 구분을 실패하였습니다. 물론 몇몇 학생들은 이런 문답이 심리학 시간에 필요한 것인가 하는 표정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철학인지 심리학인지 모를 이야기가 진짜 이 지성의 상아탑다운 문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제게는 학습심리학이 인생 최고의 강의로 남아 있습니다.

대학생다운 철없음과 이상주의로 저는 꿈꾸었습니다. 이분과 함께 공부한다면 나는 나중에 분명 리차드 도킨스, 칼 세이건, 스티븐 핑커와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과학 저술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비록 교수님께서는 과대망상이라 하셨으나 저는 이 순수함으로 대학원에 들어왔고 장장 삼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입학 전에 ‘영어 문법을 끝내라’라는 밑도끝도 없는 숙제앞에서 좌절했습니다. 석사논문 주제로 심리검사를 만들기로 했다가 한 학기만에 엎어졌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형 사람팔이 생물실 탁자에 있길래 물었더니 ‘러버핸드 일루션(rubber hand illusion)’이라는 주제를 다루기로 하셨답니다. 역시 이 물건도 몇 번 만져보다 정들기도 전에 떠나보냈습니다. 적당한 연구거리를 찾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심장박동과 피부전도반응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걸 할려고 실험실을 아예 새로 하나 만들다 시피하여 가까스로 석사학위를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물심리학 석사 논문과 학위로 밥벌이를 하지는 않지만, 벽 한쪽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 무얼 배웠나 생각해 봅니다. 비록 석사학위를 이용해서 먹고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보드게임의 영어 규칙서 정도는 아무런 도움 없이 볼 수 있게 되었고 종종 영어책과 영어논문을 번역 없이 보면서 상담교사답지 않은 문헌탐색 능력을 자랑하곤 합니다. 근거를 아무렇게나 확대해석하지 않는 과학적 사고로 덕분에 옳고 그름을 잘 가리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수님을 떠나보내며 많은 생각을 합니다. 실용주의가 득세하는 세상입니다. 가만히 머물러 사유하는 것을 공공연히 사치로 여기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세상입니다. 생물심리학, 그러니까 인간인 우리는 무슨 원리로 작동되며 생각과 움직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탐구하는 학문은 그 자체로 실용 너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뇌과학이니 AI니 융합이니 하면서 생물심리학도 돈이 될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겠으나 저는 이런 연구활동을 통해 본질에 관해 질문하는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교수님께서 강단에서 내려오시더라도 우리학교 후배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탐구하는 태도를 견지했으면 합니다.


교수님의 퇴임은 서운하고 아쉽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부담을 내려놓고 쉴 수 있다는 면에서 즐거워하시리라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간 탐구는 후배들에게 맡기고, 같이 건강히 오래 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보드게임도 하고 정치 토론도 하면서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상담교사는 홈스쿨러의 꿈을 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