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1

소설 연습하기

by 상담군

날씨가 제법 더워진 것 같았다. 햇빛이 조금만 비춰도 열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지어질 때는 백색이었을 벽은,이미 시간따라 감가상각되어 누런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불로 둘러싼 우리처럼, 벽은 공간을 단열하고 습기를 가두며 잔잔한 불쾌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짜증이 엄습해서 마치 허벅지를 꽉 쥐는 느낌이었다. 오늘 따라 더더욱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바보같았다. 하지만 떠날 시간이었다. 바깥 바람을 맞아야 했다. 그는 이 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충 머리의 물기를 털고 현관을 나섰다. 마치 이국에 던져진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빛바랜 '희망 고시원' 팻말이 시야에 닿았다. 본인의 신세를 보는 것 같아 긴급히 고개를 돌렸다. 거리의 냄새는 항상 방 안에서 상상해온 것과 달랐다. 사람들이 나들이 날씨라고 부르는 정도의 온도였다. 갑자기 빼앗긴 것들에 대한 한이 스쳤다. 하지만 김군은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고 다시 선언했다. 이미 대한민국은 우중(愚衆)들의 세계였다. 그들은 가족이나 소풍같은 억지 미소를 연출했다. 그것은 마치 공익 광고의 한 장면이었다. 맑은 하늘 아래서 어린 아이와 젊은 부모가 아무 이유 없이 즐거워하는 그림.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이들을 김군은 증오했다.


'빨리 끝내고 돌아와야지.'


그는 간판의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가까운 지하철역을 네이버 지도로 찾았다. 충분히 쓰지 못한 다리가 무거웠다. 마치 하나의 인격이 더 있어서, 자신을 반대 방향으로 떠미는 것 같았다. 어떤 방향으로든 달아나고 싶었고, 그곳이 자신의 유일한 애착대상인 그 독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야만 했다. 더 이상 객기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는 김군이 제일 싫어하는 기분이었다.


김군은 공식적으로 '서부지법 난동사태'라고 일컬어 지는 한 사건에 가담하였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피의자'였다. 그는 '난동'이라는 말도, '사태'라는 말도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살면서 한 번도 '난동'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행동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심신미약의 어떤 사람들이 - 아마도 가치관이 삐둘어졌거나 신경학적 손상이 있는 - 저지르는 무작위적인 소란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김군은 심신미약의 반대편에 있었다. 누구보다 더 많이 연구했고 항상 신중했다. 그는 스스로를 지적인 사람이라고 여겼다.


3년전 김군은 자신에게 투표권이 있는 첫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그가 현대사로 배우거나 부모님에게 구두로 전해들었던 그 어떤 선거에서보다 의미있는 한 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해에 김군은 스물 세 살이 되었고, 이 세상에 거국적으로 바람직한 영향을 줄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는 거대한 포퓰리즘의 시대였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지갑에서 나온 돈을 마치 자신의 실적인 척 살포하고 있었다. 김군이 보기에 이 세상은 기가 막힌 부조리였다. 분명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 주저앉아 울거나 떼쓰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곳이었다. 지도자들은 도둑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복지라는 허울로 포장했다. 대중들은 이런 의적질을 응원했다. 간파하기 쉬운 속임수에 모두가 놀아나고 있었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앞다투어 규칙과 질서를 허물고 있었다. 자신을 남자라고 주장하는 여자, 여자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선언하기만 하면 자신의 염색체를 비틀어 바꿀 수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마치 뷔페에서 음식을 고르듯 정체성도 고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존재에 한 톨도 보탬이 되지 않았던 이주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그들은 우리가 수십년간 피와 땀으로 쌓아온 부를 함께 누리게 해달라고 어리광을 부렸다.


무엇보다 김군이 가장 참을 수 없었던 집단은 여자, 여자였다. 이들은 앞서 열거한 모든 부조리의 집합체였다. 그녀들은 우리에게서 좋은 걸 다 빼앗아야 하고, 본인들은 다 누려야 한다고 부끄러움도 없이 우기고 있었다. 그 근거는 자신들이 약자라는 데 있었다. 전제도, 논리 구성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여튼 그랬다. 이 지점에서 그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어차피 승리는 눈 앞에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심리학 교수님께 바치는 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