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달라졌다. 전날 본 만화영화로 시작된 대화는 온라인 게임에서 얻은 아이템의 자랑으로 바뀌었고, 응원하는 야구팀의 순위나 영화 속 장면에 대한 수다를 거쳐, 각자의 삶과 사랑과 고민에 관한 이야기로 진화했다. 입시에 대한 고민, 짝사랑의 아련함, 군대에 대한 걱정을 지나 취업과 정치 이야기가 술 마시며 나누는 대화의 주를 이룰 무렵엔 어린 시절과 달라진 모습을 실감하며 ‘우리가 정말 어른이 되기는 했구나’ 생각했다.
각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조금 빠른 친구들은 가정을 이루는 서른 즈음이 됐다. 이제는 이전처럼 자주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다. 모두가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을 조율하지 못해 한두 명씩 빠진 채 모임을 갖는 일도 부지기수다.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도 이미 SNS를 통해 서로의 근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공유할만한 삶의 모습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저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기에 누군가 청첩장을 꺼내지 않는 이상 대화는 늘 비슷하고 또 평범하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이 오가다 보면, 의욕과는 달리 금세 피로가 몰려든다. 10년 전에는 아무리 잔뜩 취해도 막차가 끊길 때까지 술집에 앉아 잔을 비웠는데, 이제는 자정이 채 되지 않은 시각에도 입이 찢어져라 나오는 하품을 누르며 집으로 가는 택시를 부른다. 못다 한 이야기에 아쉬움이 남지는 않는다. 언제든 단톡으로 여럿이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아직은 젊고 어리기에 나중을 얼마든 기약할 수 있다.
대학 시절, 뉴스를 보며 정치와 사회에 대한 대화를 치열하게 나누던 때도 있었다. 어렵고 진지한 이야기가 몇 시간이고 이어져도 지치지 않았다. 강의실에서 시작한 대화가 식당과 술집으로 이어져 하루 반나절을 같은 주제로 떠들어댄 적도 있다.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누기에는 견해가 달라 감정이 상할까 우려돼 조심스럽기도 하거니와, 핏대 높여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
평범한 대화는 대체로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주제로 이뤄진다. 가장 보편적인 평범한 대화는 업무 이야기나 점심 메뉴 이야기다. 사회생활을 몇 년 하며 실감한 것은, 어디에서 밥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 다음으로 자주 오르내리는 대화 주제가 부동산과 가상화폐를 비롯한 ‘돈’ 이야기라는 것이다. 밥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하며 하는 이야기가, 요즘 어떤 주식이 몇 퍼센트 올랐고, 코인을 산 누군가가 몇 천 만 원대의 수익을 올렸다더라 하는 것이다. 누구도 인상을 찡그리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대화를 나누지만, 서로의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눈치를 보고, 조금이라도 돈 되는 정보가 있을까 싶어 귀를 쫑긋거린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이유도 짐작은 간다. 가상화폐라는 새로운 기술로 일확천금을 벌어 인생역전을 이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주변의 실 사례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보는 사례들은 타인의 성공담을 예전보다 수백 배는 더 많이 듣게 만들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오른 집값 탓에 삶을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주거공간을 언젠가 마련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도 사라졌다. 떼돈을 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빠듯한 자신의 지갑사정에 박탈감을 느끼고,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도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 조급함을 갖게 한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들에 별로 관심이 없다. 투자를 할 만큼의 여윳돈도 없거니와, 겁이 많아서 주식이나 코인 시장에 돈을 넣을 배짱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당장 얼마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계산하고 눈치 보는 것보다는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며, 지식은 깊다.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두 눈은 더 멀리 보고, 내 주변 이들과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숨이 헐떡일 정도로 고달프고 가난한 삶이 아니라면, 당장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들이 많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
나는 정말 슬픈 일은 꿈조차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당장의 절망에 빠져 더 이상 몸부림치고 발버둥 칠 힘이 없는 경우에도 그럴 수 있고, 다른 세속적이고 지엽적인 것들에 시선을 뺏겨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싶지만, 발목에 묶인 모래주머니가 너무 무거워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앞으로 나아갈 생각은 전혀 없이 발목의 모래주머니를 어떻게 하면 가볍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경마장의 경주마들은 좌우의 것들을 신경 쓰지 않도록 눈가리개 가면을 착용한다. 당연히 스스로의 의지로 쓰는 것은 아니다. 겁 많은 말들이 누군가에게 이득을 주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도록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분위기와 타인의 내몲으로 시야가 좁아진다면 행하는 행위가 곧 목적이 되어버린다. 스스로가 부여하는 동기는 사라진다.
동기가 없다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일하고 밥을 먹으며 살아갈 까. 수단이 목적이 된다면 잊힌 동기를 뒤로 한 채 어떻게 앞으로 갈 걸음을 재촉할까. 당장 우리 앞의 고비를 헤치고 나아가야겠다는 강한 신념이 아니라 험한 길을 앞에 두고 품게 되는 ‘욕망’이 중심이 된다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 욕망은 제어할 수 없게 된다. 동기는 삶의 앞에 놓아둔 나침반이다. 어디로 나아갈지 정확하게 보지 않고 무작정 걷기만 한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 분명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더 크게 길을 잃고, 더 많이 엇나갈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낭만적이고 말랑말랑한 것들을 이야기하기보다 돈과 재산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들이 다 한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 동경하던 것들을 신나서 이야기하던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낭만이 잊히고 꿈을 꾸지 않는 세상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말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사람의 사고방식을 좌우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데 영향을 준다. 말이 모이면 대화가 된다. 대화의 힘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한다. 나는 아직 돈보다는 꿈이 좋다. 더 많은 돈보다 더 아름다운 꿈을 좇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기에 우리의 대화가 돈보다는 각자의 삶과 꿈에 대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며 갖게 되는 고민을 나누고,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해 주며, 공감과 응원으로 격려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