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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 Mar 06. 2024

힐링 - 생존을 위해서는 꼭 필요할지 몰라요.

 취준생 시절, 모 방송사 PD에 응시해 시험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시사상식을 묻는 단답식과 주제를 두고 적는 작문 시험이었다. 시사 문제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자신만만했는데 결과를 확인해 보니 가차 없는 탈락이었다.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 복기해 봤다. 무조건 틀렸을 것이라 확신한 것은 두 문제였는데, 그 첫째는 네 개의 아이돌 그룹 이름을 멤버 수가 많은 순으로 나열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80-90년대 록 음악이 취향이라 당당하게 말하던 나는 대표적인 노래도 모르던 그룹의 이름 네 개를 무작위로 적으며 요행을 바랐었다.


 두 번째는 설명하는 단어를 적는 문항이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에서 편안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뜻하는 단어로, 소박한 삶의 여유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일컫는 말을 적어야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정답은 ‘휘게 Hygge’였다. 2016년 영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된 단어라고 하는데, 내게는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시험을 치면서도 당연히 틀릴 거라 확신하며 내가 답안지에 적었던 단어는, 심지어 북유럽 말도 아닌 영어, ‘힐링 Healing’이었다.




 대학을 다니던 2010년대에 유행하던 말이 있다. 인생은 오직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이라는 말을 줄인 ‘욜로 YOLO’다. 욜로는 마케팅이나 미디어에서 자주 사용되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기대감에 의존하며 노력하지 말고,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게 즐기며 살자는 라이프스타일로 해석됐다. 많은 사람들이 욜로를 외치며 저축 대신 해외여행을 선택했고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비싼 취미를 시작했다. 어느 조사에서는 욜로적인 삶을 지향한다고 밝힌 20대의 비율이 75%가 넘기도 했다.


 욜로만큼이나, 아니 욜로보다 더 유행했던 말도 있다. ‘힐링 Healing’이다. 본래는 상처를 치료한다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체적 상처보다는 정서적 아픔이나 스트레스를 치유한다는 의미로 쓰이며 유행을 일으켰다. 힐링을 제목에 적은 TV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고, 자기 개발서나 심리서적 등 응원과 위로가 담긴 힐링 에세이 열풍이 불기도 했다. 단순한 기분 전환을 힐링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이 늘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여행을 떠나는 것도 힐링을 위한, 힐링 그 자체인 행위가 됐다.


 사실 나는 욜로나 힐링을 비난하던 편이었다. 욜로 외치다가 골로 가고, 힐링하려다 킬링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에 허덕였기에 즐기는 삶이나 여유에 관하여 생각할 여력이 없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열등감이나 자격지심 내지 부러움이 컸을 것이다. 방학만 되면 가족들과 같이 해외여행을 다니던 후배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내색은 못하고 #힐링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그의 SNS에 올라온 이집트 카이로의 피라미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사진을 보며 혼잣말로 욕설을 뱉으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내가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돈과 시간이 많아 충분히 누리는 이들을 질투했다.




 독서라던가 영화관람 같은,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취미를 갖게 된 것은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였다. 워낙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던 터라 누군가에게는 흔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이 내겐 귀한 경험이 됐다.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살며 비교적 자유롭던 학생 때와 달리 치이거나 스트레스받을 일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일이라면 콘서트를 다니거나 여행을 다니고 통기타 같은 악기를 배워보는 것까지 모두 좋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전에는 1년에 두어 번 일본여행 가는 것을 즐겼다. 5~6개월 정도 매달 조금씩 쪼개어 돈을 모으면 저가항공을 타고 가까운 후쿠오카나 벳푸 등을 갈 수 있었다. 같은 값이면 갈 수 있을 동남아 국가들이나 중국이 아닌 일본을 선택했던 것은, 따돌림을 당하던 학창 시절 나를 아껴주던 일본어 선생님 덕에 조금 익힌 일본어 때문이었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면 D-데이를 세면서 하루하루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퇴근 후에는 서점에서 여행 가이드북을 읽거나 TV에서 여행프로그램을 보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동력을 얻었다.


 유난히 일본 여행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곳의 분위기나 사람들이 우리나라와 무척 흡사하다는 점이다. 평일에 여행을 가면 우리나라 사람들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은 채 분주히 걸어 다니며 사회인으로서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철저한 이방인으로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을 수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아무거나 먹을 것을 하나 골라 입에 물고, 편의점 직원에게 물어 추천받은 가까운 술집을 찾고, 술집에서 재떨이를 받아 담배를 물고 하이볼을 한 잔 마시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한참 여행을 다닐 땐, 여행의 즐거움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여행을 갔을 때 생기는 평온함과 안도감은 일상과 멀어진 덕에 생긴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돈을 쉽게 쓰고, 자취방이 아닌 좋은 숙소에서 잠을 자며, 맛있는 음식을 편하게 먹어서 그런 줄 알았다. 세계적 전염병의 위협을 겪으며 한동안 여행을 다니지 못할 때, 퇴근하고 카셰어링으로 빌린 차를 몰고 훌쩍 어느 바닷가에 갔다가 문득 깨달았다. 단순히 해외로 여행을 나가서 평소와 다른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생긴 안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해주었을 때 느끼는 위로가 중요했다. 내가 일본행을 좋아했던 건, 내게 자유로움을 안겨주고자 했던 나의 마음, 스스로를 챙겨주고자 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얼마나 즐기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 앞의 어느 세대보다 경제적인 걱정을 덜 하던 우리는 “다른 건 다 해줄 테니 걱정 말고 공부나 잘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는 데에 익숙해졌다. 학비나 교복 값을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됐고, 오직 대학 입시만이 사명처럼 부여받은 지상명제인양 달리며,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하며 다독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런 우리들이 성인이 되어 크고 작은 자유를 얻었으니 힐링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위로를 얻고, 이렇게 하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던 것은 그전까지 겪어온 10대의 시간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 가끔 슬퍼하고 힘들어해도 괜찮다는 말, 아플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다는 말을 해주는 어른은 별로 없었다. 그저, 책임질 수도 없이 공부만 잘하면 뭐든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부추김에 달리기만 했을 뿐, 우리가 우리를 위로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청춘이기에 아픈 것이 당연하다는 위로는 타인이 건네는 것이다. 누구나 아픈 건 싫기 마련인데, 청춘이라고 당연히 아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라클 모닝을 통해 부지런한 삶을 살려 노력한들 내 체질에 맞지 않으면 그건 그저 남이 보기 좋을 혹사일 뿐이다. 일시의 위안은 될 수 있을지언정 길게 보았을 때 삶의 평온함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순간의 위안은 임시방편일 뿐, 멀리 보아야 하는 우리의 인생에는 찰나의 것에 불과하다.


 힐링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무엇을 위해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남들이 다 하기 때문에 따라 하는 것보다 마음이 가는 대로, 때로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힐링이 없다면 살아가기 어렵다.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동안에는 열심히 해야 한다거나, 가족과 가정을 위해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우리 자신을 소모시킬 뿐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나를 위한, 나를 위로하는 힐링이 필수적인 것일 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캠핑을 다닌다. 비싼 장비나 거창한 음식이 없이도 그냥 차를 몰고 교외로 훌쩍 떠난다. 고생스럽기도 하다. 쉬는 날 그냥 늘어져있으면 잠을 자며 체력을 충전하겠지만 밖에서 자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은 피곤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캠핑을 다닌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거나,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를 듣는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더 내가 나 자신을 아껴줄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생존을 위해, 기왕이면 행복하게 생존하기 위해 힐링거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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