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와 성격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성격에 말투가 들어가는지, 말투에 성격이 들어가는지, 닭과 달걀의 순서를 잘 모르듯 그 선후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둘 사이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확실하다. 성격에 따라 예의 바르고 공손한 말투를 가진 사람도 있고, 타인의 기분을 저도 모르게 상하게 만드는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애써 포장하고 연기하며 성격과 다른 말투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말투는 자연스레 그 사람의 성격을 보여준다. 누군가가 살아온 세월이나 경험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투는 그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 습득한 말투를 평생 가지고 살아간다. 내가 그러하였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에게서 말을 배운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의 모습을 닮아가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어쩜 갈수록 너희 어머니(또는 아버지)를 닮아 가냐”는 어른들의 말을 적지 않게 들으며 자랐다. 한때 진지하게 부모와 자식이 닮아가는 이유는 부모에게 말을 배우고, 그 말투를 따라 하게 되면서, 말투에 담긴 성격까지 닮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내가 그런 것은 아닐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소통에 그리 익숙한 사람은 아니다. 그건 형제 많은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나, 관심과 시선의 밖에서 거칠게 살아왔던 아버지 개인의 삶에서 기인한 것일지 모른다. 성격과 맞지 않는 직장생활과 사업을 하면서 적절한 사회성을 습득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내 아버지는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 것에 서툴다. 당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지 않으며, 이따금 맥락과 상관없이 호통부터 쳐서 가족들을 당황케 하기도 한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와 30년 넘게 살았다. 서툰 아버지 탓에 많이 위축된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주로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러니까 나와 내 동생에게 엄마가 아버지 흉을 볼 때면 도대체 이제껏 어떻게 같이 사셨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부창부수라는 옛 말이 틀리지 않았는지, 아니면 엄마의 기질도 원래 그러하였는지,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호통 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엄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자주 큰 소리를 치고는 했다.
지금은 나도 조금은 자라서 그런 두 분과 대화를 원활하게 나누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됐다. 사회생활을 하며 상대에 맞는 화법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 덕이다. 그러나 어릴 때는 항상 화가 나 있는 것 같은 우리 가족이 불편했다. 두 분은 늘 무서웠고, 나는 기가 죽은 채로 자랐다. 혼이 나고 눈물을 쏟은 적도 많았다. 정말 슬펐던 것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이따금씩 내가 짜증 섞인 호통을 내지르곤 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나 엄마의 그것과 아주 비슷한 말투로 성질을 부리고는, 불과 5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얼마나 큰 회의감을 느꼈던지.
조금 커서, 소위 말하는 ‘머리가 굵었다’는 나이가 될 무렵부터 항상 스스로의 입을 경계하며 살아왔다. 의도치 않게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험한 말투가 상대에게 좋지 않게 비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 기질이 되어버린 까칠한 성질머리는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랐고, 툭 튀어나오는 말은 상대의 나이나 그 순간의 상황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덕분에 날카로운 눈총도 받았고, 일종의 ‘적’처럼 되어버린 사람도 생겼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긴장하며 살게 됐다.
질풍노도의 까칠 대마왕 사춘기 시기에는 어디 가서 지지 않겠다는 무의식 탓에 항상 험한 말을 입에 달고 산적도 있다. 욕을 자주, 많이 썼고 말투도 투박했다. 집에서 위축되고,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며 말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어디선가 사람의 말투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공감이 갔던지,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가 살았던 인생이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아 불쌍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좋지 않은 말투는 부정적인 환경을 만들고, 상황으로 인해 더 예민해지는 성격 탓에 말투도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교복을 입던 내내 악순환의 고리는 끊기지 않았다.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을 때마다 잘못된 태도를 고치려 시도했지만, 그간의 모습과 이미 타인의 시선에 생긴 선입견과 인상은 내 노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다른 이들의 배척이 지속되게 했다. 노력이 실패하고 한두 번의 좌절을 겪을 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반감은 또 다른 까칠한 행동과 말투로 이어졌다.
말투를 바꾸려는 노력이 비로소 효과를 거둔 것은 그전까지 나의 모습을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을 만난 대학시절부터였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며, 막연한 거부감이 담긴 눈빛이 아닌 모두에게 어떤 관계든 열려있다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을 대할 때의 불안과 걱정도 덜 했다. 말투가 바뀌니 성격과 태도도 바뀌었다. 나는 냉기를 풀풀 풍기던 아웃사이더에서 살갑고 오지랖 넓은 수다쟁이가 되었다. 난 그게 더 좋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이 언제였을까. 세상을 피해 도서관에 숨어 온갖 책을 읽으며 문장을 곱씹다 느낀 따뜻함 덕분에 나는 예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꿈도 함께 꾸게 되었다. 어린 나는 예쁜 글을 통해 참 많은 위로를 얻었고, 그 덕에 어렵고 힘든 시기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글로 남길 정도로 극복하고 넘을 수 있었다.
예쁜 글을 쓰고 싶은 것만큼이나 예쁜 말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조금은 더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게 됐다. 내 인생과 태도는 내가 바라는 대로 만들고 싶어졌다. 앞으로의 내 삶은 부모에게서 배웠던, 사람을 대할 줄 몰라 호통을 치는 삶이 아니라, 위축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기죽지 않겠다며 욕설을 내뱉는 삶이 아니라, 예쁜 말과 말투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모습이길 간절히 바랐다.
이따금 예전의 말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그 말투가 얼마나 낯선지, 그리고 내 아버지의 말투와 너무나도 닮아서 소름이 끼치는지 다른 이들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거다. 그럴 때면 60년이 넘는 삶을 살아오며 그런 말투를 갖게 된 아버지의 삶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거칠고 험한 시기를 보냈으면 누구보다 사랑할 가족들 앞에서도 그런 말투를 쓰게 되었을까. 그의 투박한 사교성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사람이 몇 명만 있었다면, 그는 더 밝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이어진다.
그럴 때면 아버지께 더 살갑게 대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나 자신을 잘 돌봐주겠다는 마음이 커진다. 나는 아주 약하고 여린 존재라서, 잘 다독여주지 않으면 쉽게 상처받고 움츠러든다. 가장 절망적이고 외로운 순간에도, 내가 내 곁에 있으면 결코 버려지지 않고 외롭지도 않을 수 있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아주 약간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비뚤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라는 당부가 있다면 나는 예쁜 말과 말투로 다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할 수 있다.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타인을 대하는 마음만큼, 스스로를 사랑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언제나 여유 있고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위축되고 불안한 내 마음도 언젠가는 예쁜 말만큼 예쁜 모습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