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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Jul 12. 2023

아는 만큼 보인다

인터뷰어 여월 / 포토그래퍼 윤슬



* 성균관대학교 노란 교수과의 인터뷰입니다.






프랑스에 잠시 계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계속 떠오르는 기억이 있나요?


    프랑스에서는 마트 계산대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현금으로, 동전을 일일이 세어 가며 값을 치릅니다. 요즘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기꺼이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되게 답답했는데 그게 좋은 것 같아요. 나도 언젠간 늙을 거고, 그렇게 느려질 텐데, 언제까지 내가 계속 생각도, 몸짓도 빠를 수가 없잖아요. 그런 연장자들이 가지는 여유가 부럽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경제적 여유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의 여유도 같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프랑스는 연금제도가 워낙 잘 돼 있다 보니까 은퇴하면 오히려 더 여유가 생기는 거죠. 경제적 여유가 있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 훨씬 더 하고 싶은 거 많이 하고 살고. 정말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거죠. 

    

    우리나라와 전혀 다르죠. 우리는 제2의 인생이 아니라 그냥 제2의 직업을 찾으려고 하잖아요. 

그런 게 전체적으로 프랑스의 여유인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여유를 찾으시나요?


    저도 사실 여유롭게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은퇴하기 전까지는 당연히 여유를 찾기 힘들죠. (저로 포함해서, 젊은이들의) 마음가짐이 여유로웠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지금 당장 내가 20대 초반에, 20대 중반에, 30살이 되기 전에 뭔가를 이루어야겠다는 조급한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20대들은 졸업하기 전까지는 전부 다 병아리 같아요. 그때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누리지 못하고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니까. 서른이 된다고 죽는 게 아니거든요. 서른이 돼도 똑같이 철없고 마흔이 돼도 똑같이 철없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스스로에 대한 마음의 여유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와닿지 않겠지만 ‘서른 되기 전에 안 하면 어때.’, ‘못하면 어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고전명저북클럽” 과목에서 ‘그로테스크’를 중심으로 강의하시는데,
어떤 면에서 그 개념이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것일까요?


    “고전명저북클럽” 수업 시간에 제가 발표 주제로 주는 게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그로테스크 이미지를 소개하는 거잖아요. 그게 영화가 됐든, 드라마가 됐든, 음악, 만화, 애니메이션이 됐든, 미술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대중문화라고 하는 데에도 그로테스크가 엄청나게 많이 작용하고 있고, 그게 실제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거죠.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게 나오기가 힘든 상황이잖아요. 너무 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특히 이제 1인 미디어 시대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로테스크라는 게 말하자면 우리한테 생경한 느낌을 주는 거잖아요. 새롭지 않은 거라도 새롭게 다가올 수가 있다는 거죠. 


    사실은 (오징어게임이) 평범한 주제잖아요. ‘어린 시절 때 했던 놀이로 사람을 죽인다.’라는 콘셉트 자체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거거든요. 그런데 어떤 이미지를 사용해서, 또는 어떤 음악을 사용해서, 어떤 연출을 사용했는지에 따라서 굉장히 새롭게 느껴지니까요. 그게 그로테스크라는 16세기 작가의 작품에서 사용된 개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인 거죠.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프랑스어 강의시간에 매번 얘기하는 게 있어요. 정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게 (프랑스어를 배우면) 몰랐던 단어들, 간판들이 보여요. 언어가 되게 좋은 게 굉장히 즉각적으로 (성과가) 나와요. 내가 배웠던 거를 바로바로 확인이 가능한 거예요. 간판도 그렇고, 광고도 그렇고, 물건 이름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쉽게 보이더라고요.

 

    그게 언어가 가진 매력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배웠을 때 바로 확인이 되는 것. 그전까지는 보지만, 나한테는 안 보이는 거죠. 근데 그게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잖아요. 조금씩 내가 보는 세상이 넓어지는 거죠. 그러면서 다 연결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도 보이고 세상이 더 넓어지는 거죠.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이 넓어지는 거고, 그러면 내 마음이 같이 넓어질 수 있겠죠.






교수로서 인문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인문학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성찰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쟤는 왜 저럴까.’가 아니라,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사실은 “왜”의 문제인 거죠. ‘왜 나는 이렇게밖에 못 살아.’, ‘왜 나는 이렇게 돈을 못 벌어.’ 이런 문제가 아니라 내가 뭘 좋아하고, 왜 좋아하는가, 어떤 면이 나한테 제일 좋은가,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해보라고 가르치고 싶은 거죠. 그런 방법을 사실은 생각해 보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은 거죠. 강요하면 하기 싫으니까. (웃음)






    (기초프랑스어를) 가르치면서 제가 배우는 것도 되게 많아요.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거를 저도 수업을 하면서 배워요. 처음에는 당연하게 생각했으니까 되게 빨리빨리 진도가 나갔어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정말로 하나하나 다 풀어서 토시 하나 다 풀어서 설명을 해줘야 하는 거예요. 알고 보면 (학생들은) 아예 모르니까. 그러면서 이제 배운 거죠. 나도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졌나 보다. 당연히 처음 배우는 언어고, 영어 아닌 다른 발음을 해보는 건데 ‘이게 왜 안 돼.’ 할 수 없으니까. 말하자면 역지사지의 입장을 배우는 거죠.


    그리고 매번 달라요. 어떤 친구들은 발음이 안 되고, 어떤 친구들은 문법이 어렵고, 그 발음 중에서도 어떤 친구들은 이 발음이 되는데 저 발음이 안 되고, 또 다른 친구들은 반대로 이 발음은 안 되고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정말로 다 다르다는 생각을 해요.






스스로를 위해서 해주는 것이 있나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스스로에게 별로 불만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았나 봐요. 근데 몰라. (내 몸) 얘는 욕할 수도 있지. (웃음)






인터뷰어 여월 / 포토그래퍼 윤슬

2023.06.22 노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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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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