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조제 / 포토그래퍼 모아이, 영랑
* 지원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지원에게 휴학은 어떤 시간이었어?
나에 대해 더 집중하고, 새로운 날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 지난 2년 동안 대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만나다 보니까 나는 내가 사람들이랑 있는 걸 더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실제로 그동안 혼자 있을 때가 거의 없어서 더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 그런데 휴학을 하고 혼자 지내보니까 오히려 혼자 있을 때가 더 편하고 안정적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 혼자 할 수 있는 것, 혼자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빠르게 가있더라고. 일본 교환학생 준비하면서 내가 원하는 언어 공부를 내 돈 내고 학원을 다니며 해보기도 했고, 혼자 여행도 자주 다녀보며 지친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기도 했어. 그렇게 하루하루를 나 자신으로 채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시간이었던 거 같아.
언어를 배우는 건 어떤 의미야?
일본 교환학생 준비를 위해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한 것도 있지만, 원래 언어를 좋아했어. 아마 어렸을 적에 프랑스에서 산 경험이 영향을 준 거 같아. 어릴 때는 언어가 입에 빨리 익숙해지잖아. 여러 언어를 입에서 굴리다 보니 언어를 배우는 것에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꼈어. 그리고 언어를 배우게 되면서 알게 되는 언어 간의 미묘한 차이도 재밌고, 그 차이를 알게 되면 내가 표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넓어지게 되는 기분이었어. 실제로 여행지에서 그 차이를 의식하고 언어를 사용하면 그곳의 일상과 문화에 더 잘 스며들게 되더라고.
어떤 점에서 그런 차이를 느꼈어?
한국에서는 "~해야 된다."라고 말하는 걸 일본어로 바꾸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로 바뀌어. 좀 더 간접적인 화법을 쓰는 거지. 그리고 겸양어, 존경어가 엄청 많아. 이런 차이를 알게 되니 일본은 공경을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됐어. 프랑스어에는 한국어에 비해 감탄사가 엄청 많고, 말에 높낮이가 부각돼. 그런 걸 보면 더 직접적이고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겠다는 걸 느껴.
혼자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은 언제야?
역시 몸과 마음이 지칠 때인 거 같아. 특히 고민거리가 많고 그로 인해 자책하고 자기 비하를 할 때 떠나고 싶은 거 같아. 그럴 때는 집에서 혼자 쉬더라도 그 생각들에 지배당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나는 공간을 완전히 바꾸려고 해. 아예 다른 환경에 나를 놓으면 그 환경에 적응하느라 평소의 생각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거 같아. 그렇게 분리하고 돌아오면 힘듦이 사라져있을 때도 있고, 그 크기가 작아 보일 때도 많아.
여행에서의 나와 평소의 나는 어떤 점에서 다른 거 같아?
여행 가면 항상 평소의 나와 분리하려고 하다 보니 평소의 나에선 볼 수 없는 모습들이 나와. 망설임이 줄어드는 게 가장 커. 평소라면 복잡하게 고민할 것들도 여행에서는 바로바로 행동할 수 있게 돼. 아예 다른 환경을 접하다 보니 평소에 의식하던 것들이 사라져서 그런가 봐. 쉽게 생각하자면 어차피 안 볼 사이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덜 고려해도 되는 거니까 나의 가장 편한 모습이 나오게 되는 거 같아.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 더 잘 나오게 돼. 내가 말도 열심히 걸어보려고 하는 것도 있고, 또 현지인들이 관광객에게 호의적으로 대해 주시다 보니 서로 웃고 친해지는 경우가 많았어. 그럼 그런 환경 속에 있는 내가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져. 자연스럽게 자책하고 자기 비하했던 나에게서 벗어나게 돼.
어떤 여행을 추구해?
관광지나 명소를 가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드는 여행을 추구해. 여행 가는 순간만큼은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어. 그래서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본다든가, 로컬 식당을 일부러 찾아간다든가 하면서 현지인의 일상적인 공간을 찾아가서 몸소 체험해. 평소에는 내 일상을 살아가느라 다른 일상을 생각해 볼 여유가 없는데 여행에서는 그런 여유가 생기는 거 같아.
현지인처럼 여행하는 팁이 있어?
일본을 많이 가봐서 일본 여행에 대해 말하자면, 동네 마트에 가보기! 편의점보다 더 싸면서도 다양한 음식들이 많아서 현지 음식을 체험하기 좋아. 그리고 식당을 찾아볼 때도 한국인 후기에 의존하기보다 골목골목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찾아보기! 아니면 일본인 손님이 들어가는 걸 보고 따라 들어가도 좋아. 그런 곳을 가보면 사장님이나 직원분들이 오히려 더 신기해하시면서 말을 많이 걸어주시기도 해. 그리고 보통 단골손님이 앉아계실 거야. 그분들은 본인이 많이 와봤다 보니 추천 메뉴에 자부심이 있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옆에서 조금씩 구경하시다가 하나씩 추천해 주시는 경우가 많이 생기더라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도 나누게 되는 거지. 그리고 만약에 말을 안 걸어주신다면 이렇게 말해봐. "おすすめのメニューはありますか?" 발음은 "오스스메노 메뉴와 아리마스까?"인데 "추천 메뉴 있나요?"란 뜻이야. 그렇게 추천 메뉴를 주문하고, 맛있다는 리액션도 해주고 하다 보면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나누지 못하더라도 현지에서 많이 먹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좋아.
다음 달에 도쿄를 가는데, 맛있는 거 추천해줄 수 있어?
하라주쿠에 가면 크레페 거리가 있어. 골목에 가게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데, 거의 다 진짜 맛있어. 특히 누텔라랑 딸기 들어있는 게 엄청 맛있거든. 디저트 좋아하면 꼭 가봐.
여행에서 현지인들과 대화를 자주 나누는 편이야?
일단 언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직접 부딪혀 봐야 언어가 늘 거라는 생각에 대화를 많이 시도해보는 거 같아. 그리고 관광객이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현지인이 안 좋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 같고, 반대로 생각했을 때 우리도 외국인이 어눌하게라도 한국어를 해주면 잘한다 잘한다 해주잖아. 그래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해보려고 해. 그리고 보통 여행지에서는 또래 친구들보다는 다양한 연령대와 직종의 사람들을 접하게 되는 거 같아. 일본에서는 식당에서 사장님과 혹은 손님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많이 생긴 거 같아.
기억나는 대화가 있어?
일본 로컬 식당에 아빠뻘 정도 되는 단골손님이 있었는데, 내가 메뉴를 고민하니까 막 추천해 주시면서 대화를 거셨어. 원래 한국이라면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분과는 대화를 잘 못했을 텐데, 거기서는 한국 드라마 얘기하면서 이 연예인 너무 잘생겼다는 사소한 얘기도 하고, 사장님의 따님이 내 또래라 가족 얘기도 하면서 친해지게 됐어. 평소에 접하지 못할 다양한 연령대와 환경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으면 배우고 깨닫는 게 많은 거 같아.
어떤 점을 배우고 깨달았어?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들 크고 작은 자기만의 힘듦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의 고민도 남에게는 큰 고민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힘들만 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위로도 되고, 이겨낼 수도 있게 되는 거 같아. 그리고 나에 대한 고민거리를 직접 얘기하진 않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묻어나는 그들의 삶의 모습이나 본인만의 생각하는 방식을 보면 내가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이 어쩔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 사소하게 나누는 대화에서 평소에 했던 고민들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하고, 해결되지 않더라도 관점과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거 같아.
그동안의 여행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야?
올해 초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어.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있을 때 날씨가 계속 흐렸어. 근데 기대도 안한 밀라노에서만 날씨가 엄청 좋은 거야. 걷기만 해도 좋아서 마냥 걷고 있다가 대성당 앞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길래 발걸음을 멈췄어. 우리나라와 다르게 구경하는 관객도 즉흥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더라고. 에드 시런의 퍼펙트라는 곡에 맞춰서 노부부께서 같이 춤을 추시는데 너무 낭만 있고 아름다워 보여서 눈물이 흘렀어. 이렇게 여행지만의 일상에 스며들 때 감동이 밀려와.
인터뷰어 조제 / 포토그래퍼 모아이, 영랑
2025. 09. 13. 지원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