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다윤 / 포토그래퍼 영랑
* 솔지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이 공간은 솔지님이 직접 꾸미신 건가요?
네, 여기가 원래 포토 스튜디오였다고 해요. 기본적인 타일 인테리어는 되어 있었고,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빈티지하고 동화 같은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어요. 조명부터 가구, 페인팅까지 하나하나 직접 손봤어요. 처음에는 ‘이게 될까?’ 싶었는데, 채워 가다 보니 점점 제 색깔이 묻어나는 공간이 됐어요.
공간에 애정이 많으시겠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이 가는 요소가 있나요?
샹들리에요. 조명이 공간에 주는 힘이 크다고 생각해서 가격이나 디자인 면에서 타협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 살짝 촌스럽고 동화 같은 느낌을 원했는데, 몇 달을 찾아도 마음에 드는 게 없더라고요. 그러다 오픈 2주 전에 당근에서 이걸 발견했어요. 벤티 사이즈 택시에 고이고이 모셔 왔죠. 리본도 제가 원하는 색으로 다시 칠했고요. 제 손길이 많이 닿은 만큼 애착이 커요.
하트 테이블도 제가 만들었어요. 문득 '테이블이 하트 모양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무 재단소 사장님께 직접 그린 도안을 맡겼어요. 테이블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아빠랑 저랑 기사님, 셋이서 좁은 계단 사이로 끙끙거리면서 테이블을 올렸거든요. 아빠가 경첩을 달아 주시면서 “그냥 평범한 테이블 두면 되지, 왜 하트 테이블을 만들겠다고 이러니?”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솔지님이 좋아하는 무드를 소개해 주세요.
요즘 제품들은 상업화되면서 디테일이 많이 사라졌어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도 유럽 빈티지인데, 이런 핀턱 디테일은 공장에 가서 돈을 더 드려도 잘 안 해주세요. 빈티지만 가지고 있는 디테일, 그런 희소성이 좋아요. 그리고 판타지스러운 무드가 주는 환상적이고 몽글몽글한 느낌도 좋아해요.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고 동심이 있듯이,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잖아요. 이 공간에서 그런 순수한 즐거움이 전해지면 좋겠어요.
‘윔지컬팜’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예전에 ‘허깅 고트’라는 온라인 주얼리 브랜드를 운영한 적이 있어요. 볼 빨간 몽골 아기가 염소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고, ‘염소를 안는 느낌이 참 좋겠다, 보드랍지 않을까?’ 싶어서 지은 이름이었어요. ‘윔지컬팜’은 그 염소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동화 같은 농장을 상상하며 만든 이름이에요. 다양한 브랜드와 함께하는 공간이니 여러 동물이 어울리는 농장이 떠올랐어요.
그 느낌을 직접 담고 싶어서 실제로 염소를 보러 간 적도 있어요. 사진만큼 귀엽진 않더라고요. 냄새도 나고 털도 생각보다 부드럽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성격도 있고요. 그래도 그 사진이 주는 따뜻한 이미지가 좋았던 거니까요.
솔지님이 이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상했던 것들이 하나씩 실현되는 과정이 즐거워요. 주얼리 브랜드를 할 때는 원하는 무드가 있어도 직접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가진 브랜드들과 함께하면서 훨씬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요. 옷이나 소품까지 상품군도 넓어지다 보니 표현의 한계가 사라졌다는 걸 실감해요.
그리고 저만의 공간이 생겼잖아요. 월세 같은 현실적인 부담도 있지만, 이 공간이 가진 가능성에서 오는 행복감이 더 커요. 저는 하고 싶은 게 진짜 많거든요. 해외 브랜드들 초청해서 팝업도 열고, 스냅 촬영도 해보고 싶어요. 그걸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요. 최근에는 여기서 친구 웨딩 사진도 찍어줬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공간이 있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 이런 생각도 들고요.
앞으로 이 공간을 어떻게 꾸려가고 싶으세요?
손님들이 잠깐 들렀다가 가는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주기적으로 모임이나 원데이 클래스를 열어서 취향이 맞는 분끼리 느슨한 연대감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창의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이벤트도 구상하고 있어요. 저 액자 앞에서 밴드 멤버 서너 분이 서서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다면, 그림이 참 예쁠 것 같지 않나요?
요즘에는 어떤 생각을 자주 하세요?
예전에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도 벌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자영업을 시작하고 보니 현실적인 타협도 필요하고, 내 컨트롤 밖이라고 느껴지는 일들이 많더라고요. 내가 삶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끌려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요즘에는 자기 전까지도 ‘내가 바라는 삶은 어떤 모습이었지?’ 생각해요. 자칫하면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삶이 그냥 흘러가 버릴 것 같아요. 지금 잠시 재정비가 필요한 시기라고 느껴요.
그럴 땐 어떻게 마음을 다잡으세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요. 휴무일이랑 오전 시간에 멍하니 있거나 글로 생각을 풀어내요. 그래야 지치지 않고 이 공간도 오래 지켜나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오늘 아침에는 혼자 스펙스 커피 바에 다녀왔어요. 커피 한 잔 들고 벤치에 가만히 앉아서 우선순위를 적었어요. 단순히 할 일을 체크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나한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써 내려가는 거예요.
공책에는 주로 어떤 걸 적으세요?
혼자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을 적거나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이건 제가 예전에 그린 그림이에요. 그날 여기 앉아 있으면서 조금 우울했나 봐요. 그런데 손님이 들어오시면서 좋은 에너지를 받은 거예요. “창문 안에서 우울하게 있다가 창문을 열었더니 거대한 한라봉 향이 밀려왔다. 너무 향기롭다. 앞으로는 창문을 자주 열어야겠다.” 이런 이야기예요.
내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손님들로부터 큰 에너지를 얻으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제가 사람들과 교류할 때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잠깐 머물다 가는 게 아니라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도 생겼고요. 1~2년 사이에 제가 원하는 게 이렇게 달라졌다는 게 신기해요. 마음이 맞는 분들과 교류하는 건 정말 즐겁더라고요.
솔지님은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세요?
저와 손님들의 에너지가 맞아떨어질 때요. 가볍게 들렀다가 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정말 행복한 얼굴로 나가세요. 이 공간이 본인의 취향과 잘 맞아서 기쁨이 얼굴에 딱 드러난 거예요. 그러면 손님이 가신 뒤에도 여운이 있어요. 예전에 오셨던 분이 친구랑 다시 찾아오시거나, “저 이거 잘 쓰고 있어요!” 하면서 키링을 보여주실 때도 있어요. 그럴 때 제 진심이 전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인터뷰어 다윤 / 포토그래퍼 영랑
2025. 08. 28. 솔지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