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지나간 자리에서 또 다른 소망을

인터뷰어 희주 / 포토그래퍼 영랑

by 휴스꾸


* 명쭈3 사장님과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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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쭈3’은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되셨나요?


집사람이 먼저 저 위(성균관 컨벤션 웨딩홀 오른편)에서 ‘명륜 쭈꾸미’를 하고 있었어요. 사실 장사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었죠.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2001년에 위암 수술을 받으면서 위를 다 잘라냈어요. 회복하는 과정에서 다른 일 하기가 그래서 쉬고 있었는데 집사람이 가게를 하나 더 내게 됐어요. 어차피 처남들 있고 자기 있으니까 와서 조금만 도와줄 수 있겠냐 해서 저도 함께하게 됐죠. 그렇게 ‘명륜 쭈꾸미’ 옆에 ‘명륜 삼겹살’을 만들어서 운영하다가 내가 ‘명쭈3’으로 합쳐 가지고 2017년에 소나무길로 내려갔어요.


거기 규모가 여기보다 훨씬 컸죠. 테이블이 한 20개 됐고, 한 70~80명 앉는 데 있고···. 그러다 딸내미들한테 엄마, 아빠는 먹고 살려고 한 거, 너희가 비즈니스적으로 한번 키워 보라고 했어요. 동기를 좀 바꿨지. 사업하는데 같이 있으면 서로 별로 안 좋으니까 가게는 애들한테 넘겨주고 나는 배달만 갖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몇 군데를 더 만들었어. 그러다가 애들이 결혼해서 아기도 생기고 하니까 가게 운영이 힘들어져서 재작년에 내가 이 위치로 다시 들어왔지. 그렇게 해서 이제 ‘명쭈3’이 여기 있고 ‘명륜 쭈꾸미’가 저기 건너편에 있는 거야.


이곳 ‘명쭈3’으로 돌아오실 때 마음은 어떠셨어요?


정해진 공간에 있다가 밖으로 돌아다니니까 불편할 수밖에 없었어요. 몇 년 동안 집사람이 해준 밥 먹다가 혼밥 해야 되고···. 들어올 때 딱 그 느낌이, 일단은 편안해. 먹는 것도 편하게 먹을 수 있고 나는 내가 할 일만 하면 되니까. 나 혼자 모든 걸 다 처리하다가 뒤에 마누라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잖아. 들어오라고 할 때 잽싸게 들어왔지.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이 가야지’ 하면서···. 명분이 없었는데 명분을 준 거잖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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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위에 있었을 때는 정말 낭만이 있었어. 내가 2010년도부터 장사를 시작했으니까 그때만 해도 법대 애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술도 마시고 그랬지. 그때가 로스쿨이 막 생기던 때야. 애들이 한 번, 두 번 떨어지고 방황 아닌 방황을 할 때, 대여섯 명씩 밤새 술 먹으면서 걔들 고민거리를 들어줬어요. 저녁 늦은 시간에 자기들끼리 와서 신세 한탄하다가 나한테 "사장님, 소주 한잔하실래요?" 그래. 내가 소주 한 병 들고 가면 그때부터 사장님이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 서로 말 트고 어울렸지. 한창 젊은 애들이랑 비교해서 몸도 아팠던 놈이 술을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요. 술 취하면 나를 끌고 가서 우리 집에다 넣어 놓고. 걔네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다 알고 있었어. 다음 날이면 집사람한테 뒈지게 혼나고. (웃음)


걔들 얘기 듣다 보면 답답해. 그래서 나중에는 "녀석들아, 그만해라. 지금이 너희 인생에서 제일 한창일 때인데···. 너희들 열정은 있지만 봐라, 안 되는 게 벌써 몇 년이냐? 나야 술 팔아서 좋긴 한데 이건 아니야." 진짜 이렇게 얘기를 해 버려. 그렇게 해서 쫓아낸 애들이 진짜 많아. (웃음) 나중에 걔들이 취직해서 월급 타면 배 사 들고 사과 사 들고 오고 그랬어. 나름대로 가게 하면서 느끼는 보람이랄까? 그런 게 있었지.


걔들이 결혼할 때 꼭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 내가 가게에 매여 있다 보니까 직접 가지는 못할 때가 많아. 그러면 다른 친구한테 축의금 좀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우리 자식들 결혼할 때는 부산에서도 올라오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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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에 있을 때는 가게가 엄청나게 활성화됐었죠. 가게가 넓어서 개파, 종파 이런 게 한참 많았어. 전화가 너무 많이 들어오니까 내가 그쪽에 예약 문화를 만들었지. 미리 받으니까 애들도 편하게 먹으러 오고 우리도 수요 파악할 수 있고, 내 MBTI가 ESTJ라 그런지 체계가 딱 잡히니까 좋더라고.


MBTI를 아세요?


알지. 아니, 왜냐하면 학생들이 밥 먹다 보면 얘기를 해. 너는 T니, F니 막 이래. 쟤네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싶어서 제미나이한테 가서 물어봤어. 그러니까 MBTI가 뭔지 알려주는 거야. 그래서 앱 깔아서 검사해 봤지.


2월 초부터 과별로, 동아리별로 예약이 들어오면 3월은 내내 정신이 없었어. 요즘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코스가 거의 정해져 있었거든. 1차는 명쭈&명삼, 2차는 마돌, 싸코스, 그리고 지하에 있었는데 엘비스인가?


그때는 과일주를 많이들 먹었어. 맛있으니까 새내기들이 술을 얼마나 먹는지, 자기도 몇 병을 먹는지를 모르는 거야. 과일주가 마실 때는 좋은데 나중에 진짜 훅 가거든. 바닥에 토하고 그러면···. 아니, 내가 술을 자제시킨다니까? 하루는 2차 집에서 올라와서 나한테 "사장님, 적당히 좀 먹여서 보내시라고." 이러는 거야. 그래서 "왜?" 하니까 우리 가게에서 먹고 오면 일단 들르는 데가 화장실이래. 화장실 한 번 가면 정신이 든다고는 하지만 또 먹어 봐야 얼마나 먹겠어. 그러니까 나도 "알았어, 그러면 좀 덜 먹일게." 이런 식으로 맞췄지.


동네가 다 같이 팀 프로젝트 하는 것 같아요.
사장님들이 서로 손님들 상태 봐 가면서 나눠 맡으신 느낌?


또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카드 결제가 아니라 전부 다 현금이었어. 총무들이 결제할 때 현금을 몇십 장씩 세려면 오래 걸리잖아. 그러면 내가 "야, 그냥 줘. 남으면 줄 거고 모자라면 내가 챙겨 놓을게." 했지. 그런 재미도 있었는데 요새는 그런 게 없어.


분위기가 바뀐 결정적인 건···.


코로나.


코로나, 맞아. 한 2년 정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게 되니까 모임이 없어지고 다 두세 명씩 개인으로 와. 손님도 예전처럼 그렇게 많지도 않고. 전에는 방학 때랑 중간고사, 기말고사 볼 때 쉬고, 대신 3, 5, 6월, 그 다음에 9, 11, 12월 이렇게 6개월 장사해도 괜찮았지. 나름대로 루틴이 있었는데 그 루틴이 다 깨져버린 거예요. 개강을 해도 별 차이가 없어. 계속 방학이야.


그렇다고 장사 안 된다면서 계속 머리 싸매고 있으면 내 정신 건강만 안 좋아지니까 일단은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러려니 해야지. 그리고 지금은 예전처럼 막 돈을 막 벌어야 한다는 모티브가 없잖아요. 애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들 알아서 사는데 내가 거기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지금처럼 이렇게 배달 1시간 막아 놓는 것도 편하게 막아 놓을 수 있어요. 옛날 같았으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하는 생각에 어떻게든 했을 텐데, 이제는 돈 몇만 원 덜 벌더라도 같은 가게니까 저쪽('명륜 쭈꾸미')에 손님 넘겨주고 그냥 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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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삶의 낙은 무엇인가요?


이제 가게를 슬슬 접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접으면 해외여행을 가려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내가 58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지금 68세, 거의 70이잖아요. 유럽을 한번 혼자 가 보고 싶어. 진짜 가 보고 싶어. 기왕이면 우리보다 오래되고 잘 사는 나라 가서 편안하게 쉬고 오고 싶어. 가게는 한 2년만 더 하다가 딸들한테 맡기고 사업은 밀키트 쪽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일단은 아이디어 차원인 거고 구체화되려면 올 연말이나 내년 초쯤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우리 때는 문법이니 이런 걸 공부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요새 유튜브 보니까 듣는 게 먼저더라고. 일단 들어야지 얘기가 나오니까. 그래서 넷플릭스를 계속 틀어놓고 보고 있어요. 영화보다는 시리즈를 주로 봐요. 난 범죄물을 많이 봐. 범죄물을 보면 범죄 용어가 많이 나오잖아요. 보다 보면 같은 단어가 계속 나오니까 익숙해지고 그런 단어 알아두면 내가 가서 뭐, 이거(수갑) 찰 일은 없겠구나 하는 거지. (웃음)


일단 그렇게 해서 듣는 거를 소화하고 그다음에 말하는 건 교환 학생들 오면 걔들하고 얘기해요. 보통 혼자 오잖아, 그러면 일부러 말을 거는 거야. 근처에 에어비앤비 몇 군데가 있거든. 요 앞에서 캐리어 끌고 헤매고 있으면 어디 가냐 하면서 말 걸고 사장한테 전화해 주는 거지. 그렇게 하면서 감을 유지하려고 해요.


보통은 영어 말할 때 두려워하잖아요. 대단하신데요?


멕시코 사람인데 시드니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있어요. 걔가 하는 얘기가 그거예요. 처음에 말할 때 틀려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뻔뻔하게, 두려워하지 말고 뱉으라는 거야. 그래서 오케이, 그냥 얘기해 보고 상대가 못 알아 들으면 다시 얘기하고 그렇게 해요.


갈지 안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요. 나름대로 계획은 해놔야지 되든 안 되든 할 거 아니야. 집사람한테 같이 가자고 했더니 혼자 갔다 오래.


혼자 가시면 안 외로우시겠어요?


모르겠어. 가서 외로움보다는 새로움이 더 클 것 같아. 내가 TV 속, 영화 속에서 보던 곳을 한번 다니면서, 커피 마시고 싶을 때 커피 한 잔 마시고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그냥 구경하는 거지. 내가 무슨 엄청난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얘기 할 필요는 없잖아. (웃음) 안 되면 파파고 돌리면 되는 거고. 가서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있으면 또 나이 먹은 사람끼리 통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유럽 중에서 가고 싶으신 나라가 있으세요?


주변에서 체코, 이런 동유럽 쪽을 추천해 주더라고. 그쪽이 좀 조용하게, 편하게 갔다 올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뭐, 프랑스 가서 루브르 본다고 해서 인생이 더 유식해지는 것도 아니고. 이해도 못 하는 거 괜히 폼 잡고 있어 봐야 시간 낭비하는 거지. (웃음)


요즘 또 다른 관심사가 있으신가요?


손주 보는 거. 다음 달 7일에 손녀가 동생이 생겨요.


정말요? 축하드려요!


우리 큰손주가 지금 4살인데 동생 태어나는 수술 날짜가 그때로 잡혀 있어서 얼른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내가 할아버지가 되니까 손주 오면 더 해주고 싶고, 어떻게 보면 내 새끼도 아닌데 오히려 내 새끼보다 더 마음 쓰게 되는 것 같아. 나이 먹는다는 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나는 앞으로 배터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는 상태잖아. 대학생 친구들은 지금 한창 충전을 열심히 해서 계속 써야 되는 입장인 거고, 우리는 너무 충전을 해가지고 배터리가 조금씩 약해지는 것도 느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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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찮으셨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건강하시죠?


별짓 다 하잖아. 학생들하고 술 먹고 다 했다고 했잖아. (웃음)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궁금해요.


집사람 공이 제일 크지. 지금도 나는 집사람이 죽으라면 죽어, 말대꾸를 못 해. (웃음) 이제 가게 그만두면 그때부터는 자기 괴롭히지 말라고 해.


5살 차이 나는데 회사에서 처음 만났어. 내가 먼저 다니고 있는데 집사람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왔더라고.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 조그마한 아가씨가 설치고 다니는데 귀엽더라고. 그리고 일도 되게 잘하고. 난 바로 뒤에 앉아서 일했으니까 매일 보고 그랬지.


그래서 먼저···? (웃음)


사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서로 뭔가 교감이···. 옛날 어른들 말에 자기 연이 정해져 있다고 하듯이, 미쳐요. 진짜야, 때 되면. 나도 처음부터 결혼 생각은 없었는데 내가 직장 생활로 힘들어할 때 집사람이 뒤에서 백업도 해주고 도움을 받으니까 나도 막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지.


또, 아플 때 산행을 많이 다녔어. 여기서 넘어가서 삼청 공원, 중앙고등학교 쪽으로 해서 법학관 앞으로 내려왔지. 매일 아침 그렇게 다녔어. 아플 때 항암 치료하면 사람이 거의 죽어 있어. 4박 5일 동안 주사 맞고 나면 한 2주일 있다가 또 들어가거든. 나와서 한 이틀 좀 정신 차리고 그다음에 가는 게 어디냐, 수선관 건너편에 벤치가 있거든. 거기 소나무 밑에서 그냥 자는 거야. 빨린 기를 소나무에서 충전하는 거죠. 그게 제일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조금 힘이 생기면 더 올라가고, 더 올라가고, 더 올라가서 말바위까지 가는 거지. 추우면 못 가고 봄, 여름, 가을 그렇게 생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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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멘털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긍정적인 마인드를 배우고 싶어요.


이렇게 대화를 나눠 보면 나도 성격이 굉장히 급하고 다혈질적이잖아. 내가 얘기할 입장은 아닌데 물어봤기 때문에 그냥 얘기를 하자면, 사람이 조급하고 여유가 없으면 시야가 좁아져요. 지식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은 시야가 넓어야지 보일 거 아니야. 시야각이 넓어져서 많이 보이게 되면 모든 경우의 수에 반응하기보다는 나한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어떤 게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돼. 그러다 보면 내가 수용해야 할 거 수용하면서 안심하고 진정하게 되는 거지.


예전 같으면 막 싸우고 할 일도 요즘은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고. 이제 뭐, 갈 데가 다 돼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씩은 마음이 편안해지게 돼. 그런데 또 사람 성격이 변하면 죽는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욱하고 하는 거는 그거는 있어. (웃음) 그래도 그냥 좀 내려놓는다, 내려놓을 것도 없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번 같이 어울리는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 그때만 해도 벌써 한 십몇 년이 훌쩍 지났으니까, 그때 친구들하고 지금 친구들은 마인드가 또 다를 수 있거든. 이제 내가 술은 많이 안 먹더라도 몇 명이서 얘기도 좀 해보고 싶은데, 그냥 내 희망 사항일 뿐이지. 어떻게 강제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닌 거고. 바람일까? 이런 생각도 한번 해 봐요.






인터뷰어 희주 / 포토그래퍼 영랑

2025. 11. 2. 명쭈3 사장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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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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