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다윤 / 포토그래퍼 모아이
* 희지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희지 님의 첫 혜화살이는 어떤가요?
낙산공원 근처에 사는데, 너무 힘들어요. (웃음) 집에 있을 땐 괜찮거든요. 그런데 문밖을 나서면 오르막, 내리막길의 연속이에요. 날이 갈수록 다리가 튼튼해지고 있어요. 제가 예전에 살던 동네는 분위기가 조금 칙칙했어요. 색감으로 따지면 모든 게 무채색인 느낌? 그래도 혜화는 색감도 다양하고 분위기도 고즈넉해서 좋아요. 저랑 잘 맞는 동네 같아요.
주변 상권 사장님들과도 친해지셨나요?
카페 오드콜라 사장님이랑 친해졌어요. 바로 옆 진공푸랑 곱창집 사장님과도 인사하는 사이가 됐고요. 제 문신이 독특해서 그런지 한 번 방문하고 나면 다들 저를 기억하시더라고요. 특히 오드콜라는 저희 집 바로 앞에 있어서 출근길마다 반려견 랄프랑 같이 인사를 드리고 와요. 서로 가게는 잘 되는지, 랄프 건강은 어떤지 그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에요.
가게에 들어오면 Moth:VO만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져요.
희지 님은 골동품을 좋아하세요?
네, 물건에 깃든 이야기가 좋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기 보이는 빨간 마트료시카 있죠? 저희 아빠가 예전에 소련으로 출장 가서 사 오신 거예요. 러시아 말고 소련이요. 채색 기법이나 안료를 보면 소련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골동품 수집가셨어요. 본차이나 찻잔이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셔서 저도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할머니랑 취향이 똑같진 않지만요. 할머니는 CD를 모으시고 저는 바이닐을 좋아하거든요. Moth:VO의 ‘VO’에서 V는 바이닐, O는 바이닐의 동그란 모양을 뜻해요.
가게에 헌팅 트로피가 4개나 있어요. 헌팅 트로피는 어떻게 모으게 된 거예요?
제가 영화 <모노노케 히메>를 정말 좋아해요. 거기에 나오는 사슴신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막상 만들려니까 신의 형체를 구현한다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특히 머리 부분이요. 두개골 골격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서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어요. 동물 두개골은 자료가 많지 않거든요. 정면·측면 사진만으로는 부족했어요. 입체적인 구조는 직접 봐야 알 수 있죠.
어떻게 사슴신을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하셨어요?
아, 제가 열두 살 때부터 특수 분장을 배웠어요. 처음에는 특수 분장이 일반적인 메이크업보다 화려하다 보니 관심이 생겼어요. 제가 화려한 걸 좋아하거든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적성에 맞아서 미용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대학교에서도 특수 분장을 전공했어요. 배울수록 특수 분장 일이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점이 잘 맞는다고 느껴졌어요?
공부 같은 경우에는 머릿속에 지식이 조금씩 쌓여야 시험 성적이라는 결과가 나오잖아요. 분장은 그렇지 않아요. 바로 결과가 나와요. 제가 원래 고민을 길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자료를 찾다가 바로 시안을 그려보거든요. 어떻게 보면 시안도 하나의 결과물이잖아요. 그런 작업 과정이 저랑 잘 맞았어요.
평생 해온 특수분장 일을 놓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어느 순간 메이크업이 겉만 꾸미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만 계속 만나다 보니까 지치기도 했고요. 제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좋아하더라고요. 아무래도 향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향수나 담배, 커피처럼요. 사람을 대할 때도 그 사람의 내면을 관찰하려고 해요. 겉모습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코로나 때 집에서 홈 카페를 자주 열었어요. 지인들이랑 “이 커피의 맛은 이렇다, 컵 노트는 이렇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메이크업보다 저한테 와닿는 게 더 많았어요. 그때부터 ‘이게 더 재밌네, 이걸 더 해볼까?’ 싶었죠. 그리고 랄프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랄프를 입양하고 나서는 파트타임 일밖에 못 하겠더라고요. 그러면 랄프랑 같이 일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자영업자의 길을 걷게 됐어요. 대학은 졸업 전시를 앞두고 그만뒀고요.
졸업을 앞두고 그런 선택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인생을 하드코어로 살고 있어요. 도파민 중독이라고도 하는데, 하고 싶은 걸 안 하고 살 거면 뭐 하러 살지 이런 생각을 해요. 일 중독 기질이 있어서 바쁜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예전에 카페 아르바이트 했을 때도 몸 갈아 넣으면서 일하는 걸 즐겼던 사람이라… 쉽게 살 바에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힘들게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Moth:VO 단골 손님이 많더라고요. 어떤 분들이 자주 오세요?
성대생들이 많아요. 가게가 좁다 보니 손님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릴 때가 있는데,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 앞으로 뭐 하면서 살지?” 이 얘기를 정말 자주 들어요. 저도 늘 고민하는 주제이긴 하지만, 이 친구들은 저랑 고민의 결이 완전히 달라요. 저는 항상 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하고 싶은 게 없어 보여요. 꿈이 없는 느낌?
신기하네요. 저도 그래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게 고민이에요.
그럴 수 있어요. 세상에 수없이 많은 감정이 있지만, 그걸 하나하나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보통 디테일한 감정을 스스로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니까요. 좋아하는 걸 깨닫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아직 잘 모르겠다고 느끼는 게 당연해요. 저는 공부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어요. 성대생들은 워낙 바쁘게 공부해 온 친구들이라,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그래도 조금씩 자기 감정과 취향을 들여다보면 좋겠어요.
사실 이런 고민은 성대생뿐 아니라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거예요. 저는 좋아하는 일에 정말 많은 시간을 써본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만큼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낯선 일 앞에서 용기가 부족한 건 당연해요. 자신감을 가지고, 일단 뭐든 해보세요!
인터뷰어 다윤 / 포토그래퍼 모아이
2025. 11. 17. Moth:VO 희지 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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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