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다윤 / 포토그래퍼 채은
* 훈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1999년에 안경원을 열었어요. 이 동네 분위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서울에서 발전이 가장 더딘 동네죠. 처음에는 그게 답답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포근하게 느껴져요. 나이 들면 안정적인 게 좋거든요. 사람들은 들어왔다 나갔다 계속 바뀌었지만, 동네 분위기만큼은 그대로예요.
학생들은 많이 달라졌죠. 소통 방식 자체가 예전하고는 달라요. 그땐 제가 젊어서 그랬던 건지, 시대가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옛날 학생들은 정이 많았어요. 지나가면서 인사도 하고 “사장님, 이거 하나 드세요.” 하면서 챙겨주고 되게 정겨웠어요. 학생들이 술 먹고 가게 앞에 오바이트 하고 간 적도 많았어요. 한 달에 몇 번씩 치우고 그랬는데 최근 7~8년 동안은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요즘에는 옛날처럼 다 같이 뭉쳐서 노는 문화가 줄었다는 거예요. 저는 99년도부터 봐왔잖아요. 그땐 동아리 문화가 훨씬 활발했어요. 늘 같이 놀고 취하고 그러다 가게 앞에 토하고 그런 시대였죠. 어떻게 보면 깨끗해졌다고 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학생 간의 소통도 많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저는 원래 젊은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인스타그램 같은 건 너무 어려워서 못 하지만, 여기에서 학생들이랑 대화 많이 나누려고 해요. 제가 56살이거든요. 아무래도 꼰대 같은 마인드가 있어요. 그래서 손님들 얘기 들으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배우죠.
저는 대학교 CC였어요. 아내는 제가 만든 댄스 동아리 후배였고요. 제가 동아리를 만든 목적은 딱 하나였어요. ‘결혼할 여자를 찾자.’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죠. 동아리 지원서 만들 때 시력 적는 칸도 넣었어요. 시력은 유전이 되니까요.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하고 신입생들을 한 달 동안 지켜봤는데 아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아내는 저랑 5살 차이 나요. 스무 살 여자애한테 스물다섯 살 복학생은 그냥 아저씨로 보였겠죠. 바로 대시하면 까일 게 뻔하잖아요. 일단 동아리 일 열심히 하면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리고 아내가 같은 과에서 친한 선배들이랑 우연을 가장해서 계속 만났어요. 그 사람들이랑 5개월 동안 술도 마시고 어울리면서 ‘선영이 좋아한다, 나 괜찮은 사람이다’ 어필했죠. 동아리에서는 좋아하는 티 안 냈어요.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대했어요.
그러다 2학기 정기 공연이 끝난 날이었어요. 아내가 제 앞에서 자꾸 알짱거리더니 할 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얘가 무슨 얘기할지 다 보였죠.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 살, 저는 군대까지 다녀온 스물다섯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한참을 뜸 들이다가 “선배님, 저 좋아하신다면서요.”라고 하길래 제가 그랬어요. “좋아했었지...” 그랬더니 애가 초점을 잃으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쁜 거예요.
그때 제가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아내가 “왜요, 선배님?” 이러더라고요. “나 소개팅이 있어서 그거 해보고 생각해 볼게.”라고 대답했어요. 제가 소개팅했겠어요? 안 하죠. 그러고 일주일 동안 동아리 방을 한 번도 안 갔어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아내는 매일 나왔대요. 일주일 뒤에 갔더니 아내가 30분 만에 헐레벌떡 동아리 방으로 오더라고요. 아내한테 에버랜드 자유이용권 주면서 “내일 몇 시까지 와.”하고 갔어요. 다음 날 보니까 아내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거예요. 눈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기쁘기도 하고 그동안 애태운 거 때문에 그날 동아리 방에서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사귀게 됐어요.
아들 세 마리 키워요. 큰아들 하나에, 둘째랑 셋째는 이란성 쌍둥이예요. 제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는지 아들만 셋이에요. 쌍둥이들은 작년에 수능 봤어요. 아, 쌍둥이 키우는 거 진짜 힘들었어요. 쌍둥이들 태어나고 한 7개월 동안은 새벽 4시 전에 자본 적이 없어요. 애들이 두 시간마다 우는 거예요. 배고프다고 울면 먹이고, 등 두들겨서 트림시키고, 재우고, 기저귀 갈고… 애 둘이 번갈아 가면서 이러니까 잘 시간이 없어요.
게다가 큰아들이 쌍둥이랑 3살 터울이에요. 첫째도 아직 아기였죠. 우리 첫째 아들은 쌍둥이가 울면 스카치테이프로 입 막으려고 하고, “너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 그랬어요. 엄마 아빠가 쌍둥이만 신경 쓰니까 속상했던 거죠. 우리 몰래 때리고, 꼬집고, 엉덩이로 깔고 앉기도 했어요. 그래도 아내가 “그때 오빠가 진짜 많이 도와줬어.”라고 얘기해요. 진짜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했으니까요. 아내는 애들이 울어도 잘 안 깼어요. 깨더라도 너무 힘드니까 못 일어나고 하여튼 파란만장했어요.
큰애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3년 가까이 말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때는 계속 애 붙잡고 같이 바람 쐬러 나갔어요. 나가서 잘못한 거에 대해 다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냈어요. 애가 한동안은 그냥 듣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아빠, 그때 사실 내 마음은 이랬던 것 같아.”라고 말하더라고요. 그걸 3년 동안 기다렸어요.
솔직히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승질내고 한 대 쥐어팰까?’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그래도 아내한테 “이거는 기다려야 해. 시간이 걸려도 기다려야 해. 때리면 결국엔 서로 평생 안 보게 될 거야.” 계속 말했어요. 저는 큰애가 아무리 사고를 쳐도 때린 적은 없어요. 제가 어릴 때 운동하면서 많이 맞아봤거든요. 때리는 건 교육이 안 돼요. 그냥 때리는 사람의 감정을 표출하는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대화해야 해요. 그냥 붙잡고 얘기하는 거예요. 얘기하면 뭐, 반응이 좋게 오나요? 그래도 참아야죠. 첫째인데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지 알아요? 쌍둥이는 첫째에 비하면 30%도 안 했어요.
아빠는 한결같아야 해요. 사소한 얘기라도 계속 물어보고 들어줘야 해요. 아들들이 보통 초등학생 때 아빠한테 자꾸 말을 붙이거든요. 그게 단절되는 순간은 아빠가 안 들어줄 때예요. “아빠, 듣고 있어?” 했는데 아빠가 “어 그래 알았어.” 이러면 애들은 다 알아요. 그때부터 말을 안 하기 시작해요. 그래서 저는 아들이 얘기하면 계속 말을 이어 나갔어요. “그럼, 이거는 어땠어? 저거는 어땠어?” 계속 얘기하다 보니까 중고등학생이 돼서도 대화해주더라고요. 우리 아들은 저기 버스 정류소에서 여자 친구랑 뽀뽀했다 그런 얘기까지 해요.
제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보통 밤 11시에서 11시 반 사이예요. 그래도 일반적인 가정보다 대화는 많이 했을 거예요. 제가 옷 갈아입고 운동하러 나가면서 3~40분은 애들이랑 떠들고 놀거든요. 매일 그렇게 해요. 부모가 자식하고 하루에 30분 정도 시간 내서 얘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돼요? 거의 없어요. 그렇게 따지면 대화 많이 했죠.
아들들이랑 그냥 일상적인 얘기도 많이 하고요. 저 요즘 걸 그룹도 다 알아요. 키키, 이즈나, 하츠투하츠... 제가 정말 좋아했던 그룹은 해체했어요. 여자친구 좋아했거든요. 애니메이션 얘기도 자주 해요. 아들이 저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어요. 저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되게 좋아해요.
신카이 마코토 아세요?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나 세밀한 감정 표현이 너무 좋아요. <날씨의 아이>가 그 사람 작품이에요. <초속 5센티미터>도 주인공들이 결국에는 만나지 못하고 헤어지는데, 진짜 가슴 아파요. 그거 보면 우울한 기분이 거의 일주일을 가요. 마음이 되게 힘들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또 생각나요. 해피엔딩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가슴은 되게 아픈데 좋아요. 좋다고 표현하면 이상한가요? 그게 더 마음에 와닿아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순수한 사랑, 때 묻지 않은 그때가 그리워요.
저는 대학가에 있다 보니 매년 스무 살 학생들을 새로 만나요. 그런데 저는 자꾸 나이를 먹잖아요. 점점 그 간극이 벌어지는 게 마음이 되게 힘들어요. 예전에는 우울증도 왔어요. 아빠들 50대 되면 우울증 와요. 저는 그게 한 4~5개월 갔어요. 아내랑 자식들도 보기 싫고, 그냥 다 자고 있을 때 늦게 집에 들어가는 거예요. 내가 돈을 벌어야 하고 애들은 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 너무 부담스럽고 벗어나고 싶었어요. 나를 위한 투자를 못 하고 사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요.
애들은 만 오천 원짜리 밥 먹고 다니는데 나는 맨날 한솥 가서 3천 원짜리 먹어요. 5천 원 넘으면 비싸다고 생각하고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한번 화가 나면 만 원 넘는 밥을 사 먹을 때도 있어요. 그 순간은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이게 세 끼 값인데…’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또 싫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은 그 시기를 벗어났으니까 괜찮아요.
근데 또 걱정되는 게 노후예요. 아무래도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잖아요. 우리 세대는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자식한테도 엄청나게 돈을 쓰고 있다 보니까 여유가 없어요. 그래서 노후가 불안해요. 나중에 나이 들어서 일을 못 하게 됐을 때 아내랑 어떻게 살아야 하나 보통 사람들은 그게 제일 걱정이죠.
일에서 오는 행복이 가장 커요. 손님들이 다른 곳에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답답해하시다가 저한테 오셔서 문제를 해결하고 가실 때 정말 기뻐요. 저번에는 장문의 문자로 감사 인사가 온 적도 있어요. 그럴 때 너무 좋아요. 특히 요즘 학생들은 다 제 아들이나 딸뻘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옛날보다 직업적인 만족감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턱걸이 10개 하면 ‘와 기분 좋다’ 싶었다면 이젠 일하다가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기분이 더 좋아요. 그런 소소한 기쁨이 하루하루 지내는 데 되게 크게 다가와요. 퇴근할 때 손님이 건넨 기분 좋은 한 마디가 떠오르면 그날은 흥얼거리면서 집에 가는 거예요.
저는 쉬는 날이 아직도 어색해요. 한 달에 한 번 쉬거든요. 매일 아침에 출근하고 밤에 퇴근하니까 낮에 어디 걸어 다니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 쉬는 날에는 아내랑 아침에 커피 마시러 가거나 동네 사람들이랑 놀아요. 동네에 15년 넘게 알고 지낸 가족들이 있어요. 애들 유치원 때 학부모로 만난 사람들이에요. 비록 2~30대를 함께 보내진 않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과의 공감대가 있어요. 즐거웠던 90년대 그 시절 노래 듣고 춤추고 놀고 그러면서 해소하는 거예요. 우리 나이에 이렇게 같이 놀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딨어요? 동창들도 그 나이 되면 잘 못 만나요. 이 사람들은 서로가 되게 소중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는 거예요.
노후에 꿈꾸는 거는 일단 서울을 벗어나는 거예요. 조용한 동네, 멀리 떨어진 산골 같은 데 살고 싶어요. 앞에 시냇물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고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고, 그래도 인터넷은 돼야 해요.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눈 뜨고 싶을 때 뜨고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는, 그냥 한가한 삶. 제가 운동할 때 제일 많이 하는 게 멍때리는 거예요. 뛰다가 앉아 가지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이거 되게 좋아요. 아무 생각 안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요. 그냥 멍하니 있는 거. 노후에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그게 소원이에요.
항상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오다 보니, 이젠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좋아요. 사회에서는 서로 원하는 게 많잖아요. 뭔가를 얻기 위해 관계를 맺어야 하죠. 그런데 자연은 그냥 바라보고 그게 끝이에요. 나를 원하지 않고 나도 원하는 게 없고 그저 서로 바라보는 관계. 저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바라보면서 바라지 않는 관계. 나이가 들수록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그런 거 아닐까요?
인터뷰어 다윤 / 포토그래퍼 채은
2026. 02. 12. 훈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