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진스 / 포토그래퍼 유송, 채은
* 수피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수피에게 가장 특별한 사랑이 있다면 뭐야?
우리 집 강아지 ‘포미’에 대한 사랑이야. 포미는 이제 11살 된 포메라니안인데 나한테는 첫 강아지이기도 해. 그리고 포미 등에 남은 꼬리 자국을 볼 때 제일 사랑스러워 보여. 포미는 항상 기분이 좋아서 꼬리를 바짝 올리고 다니거든. 그래서 털에 꼬리 자국이 남아 있는데 그게 정말 귀여워. 나이가 많은데도 아직 아기 같고 늘 천진난만해. 내가 생각했을 때 포미를 향한 마음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 같아.
포미에 대한 사랑을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궁금해.
인간관계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무조건적이라고들 하지만 갈등이 심해지면 절연하기도 하잖아. 그런데 강아지는 웬만하면 주인을 싫어할 일이 없거든. 내가 사람 노릇을 못 하는 상황이더라도 강아지는 그런 거 상관없이 나를 계속 좋아해 줄 테니까. 조건 없는 사랑인 거지. 그래서 나도 포미를 정말 순수하게 사랑하게 된달까.
만약 포미와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
나는 어떤 말을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포미의 말을 듣고 싶어. 평소에 내가 포미한테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 내 말은 어느 정도 알아들을 것 같거든. 근데 그 조그만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잖아. 내가 없을 때 나를 보고 싶어 하는지, 진짜 나를 좋아하긴 하는 건지, 이런 사소한 생각들이 궁금해. 그리고 나중에 포미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속상하지 않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해줬으면 좋겠어.
반면에 아픈 추억이 된 사랑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뭐겠어.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아이돌이 한순간에 범죄자가 된 거지. 그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가 지금도 생생할 정도야. 일이 너무 심각하니까 쉽게 현실로 다가오질 않더라고. ‘우리 아저씨가 뭐?’ 이런 느낌으로 벙쪘어. 단순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수준이 아니라 강도 높은 범죄였으니까. 그러다 나중에는 점점 짜증이 났어. 난 더 알고 싶지도 않은데 소식이 자꾸 뜨더라. 무엇보다 친구들이 나한테 관련 기사를 계속 보내줬거든.
한때 그 사람을 사랑했던 팬으로서 가장 속상한 건 뭐였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어 버린 게 나쁜 것 같아. 팬들은 아무 잘못이 없잖아. 멤버들조차 몰랐다는 일을 팬들이 어떻게 알았겠어. 저번에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그 친구가 어떤 아이돌을 좋아한다길래 장난으로 놀린 적이 있거든? 그랬더니 걔가 갑자기 나한테 “야, 너는 그 사람 좋아했잖아.” 이러는 거야. 난 뭐 한 게 없는데 그 멤버를 사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롱당하고 그게 내 약점으로 잡힌 게 참 속상했어.
그분께 마지막으로 한마디하자면?
음... 한마디조차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너무 끔찍하거든.
지금 남자 친구와는 어쩌다 사랑에 빠지게 된 거야?
처음엔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가 서서히 스며들었지. 원래 나는 연락을 주고받을 때 에너지 소모가 큰 편인데, 이상하게 얘랑 대화할 때는 오히려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 들더라고. 결정적으로 반한 계기는 남자 친구의 가치관 때문이었어. 그 친구가 평소에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존경하는 셰프 이야기를 하면서 그 셰프가 아내를 사랑하는 모습처럼 자기도 변치 않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 나도 늘 그런 사랑을 꿈꿔왔거든. 그래서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더 좋아졌지.
‘롱디’를 하는 중인데도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 뭐야?
가장 중요한 건 신뢰와 정서적인 성숙함이라고 생각해. 남자 친구가 워낙 안정적이고 말한 걸 행동으로 보여주니 몸이 멀어져도 불안할 일이 없었어. 한번은 남자 친구가 바빠서 내 연락을 읽고 씹은 적이 있었어. 그래서 내가 서운하다고 투정을 좀 부렸지. 이때 보통 같으면 “내가 바쁘다는데 왜 찡찡거려?”라고 할 수도 있잖아. 근데 얘는 오히려 "Thank you for holding me accountable. (내게 책임감을 상기시켜 줘서 고마워.)"라며 바로 사과하고 행동을 고치더라. 그때 이 사람이랑은 건강한 대화가 가능하구나 싶었어.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고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우리 관계의 비결인 것 같아.
이번에 남자 친구를 보러 스페인까지 간 게 인상 깊었어.
데이트는 잘하고 왔어?
응. 잘하고 왔지! 일단 어쩌다가 스페인까지 가게 됐냐면, 반년이나 못 보기도 했고 개강하기 전에 무작정 보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날아갔다가 왔어. 남자 친구가 지내던 곳은 바닷가 근처 작은 도시에 있었는데 집이 정말 예뻤지. 레몬 나무랑 작은 수영장이 있는 중정도 있고 ‘애쉬’라는 이름의 귀여운 고양이도 있었어. 대부분 집에서 데이트했는데 같이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도 정주행하고 요리도 많이 해 먹었어. 밸런타인데이 기념으로 각자 요리를 해주기도 했어. 남자 친구는 파스타를 만들고 나는 브라우니를 구웠지. 베이킹은 난생처음이라 불안했는데 꽤 성공해서 뿌듯했어.
스페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야?
‘카디스’라는 도시로 같이 드라이브 갔던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 사실 거기에 간 이유가 좀 웃겨. 스페인에 가면 ‘야오야오’라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거든. 근데 남자 친구 동네에는 그게 없었어. 게다가 내가 스페인에 갈 때 라면을 하나도 안 챙겼는데 갑자기 한국 라면을 너무 먹고 싶은 거야. 마침, 카디스에 그 아이스크림 가게랑 아시안 마켓 둘 다 있길래 가게 됐지. 고작 아이스크림이랑 라면 때문에 가깝지도 않은 곳까지 가는 게 굳이 싶긴 하잖아. 근데도 남자 친구가 오직 내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흔쾌히 운전해서 데려가 준 그 마음이 고마웠어. 아쉽게도 아이스크림 가게는 폐업해서 못 먹었지만 다행히 아시안 마켓에서는 너구리랑 까르보불닭을 구해서 맛있게 끓여 먹었어.
그렇다면 연인과의 관계에서 진짜 ‘사랑’이란 뭐라고 생각해?
비효율적인 걸 굳이 하고, 바보 같은 짓을 기꺼이 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장거리 연애를 하면 비행깃값만 해도 엄청나게 깨지고 이동 시간도 많이 쓰게 되잖아. 하지만 사랑하니까 그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여기고 에너지를 쏟는 거지. 그리고 밸런타인데이 같은 기념일도 어떤 사람들은 매년 있는 뻔한 상술인데 굳이 왜 챙기냐고 하잖아. 그런데도 기꺼이 그 바보 같은 짓을 하면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진짜 사랑이 아닐까? 아무 쓸모 없어 보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상대방을 챙겨주는 게 그 자체로 소중한 것 같아.
마지막으로 ‘나’라는 사람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뭐야?
빈티지나 특이한 아이템들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어. 요즘은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옷이 많잖아. 반면 빈티지 옷은 요즘 옷에서 찾을 수 없는 특유의 디테일이 살아 있거든. 어디서 어떤 걸 건질지 모르는 재미도 쏠쏠하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을 만났을 때 나와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 얼마 전에는 후르츠패밀리에서 리본이랑 프릴이 달린 티셔츠를 사고 거기에 맞춰 입으려고 땡땡이 치마도 샀어. 그리고 하얀색이나 파란색 아이라이너처럼 알록달록하고 튀는 화장품에도 꽂혀 있지. 예전에 매장에서 민트색 섀도를 살 때 직원분이 “이 색상 구매하는 거 맞으시죠?”라고 다시 확인해주신 적도 있어. (웃음)
우리 사회에서 그런 ‘나다움’을 유지하는 게 대단해 보여. 그런 스타일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다들 스타일이 비슷해서 다양성이 없다고 느꼈거든. 남들과 다른 걸 다들 두려워하는데 사실 우리 사회가 정해둔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두렵게 만드는 거잖아. 나는 그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게 싫어서 일종의 반발심이 생겼달까. 눈길을 사로잡는 색깔로 포인트를 주면, 별거 안 해도 내 모습이 특별해 보여서 그게 훨씬 마음에 들기도 하고. 근데 요즘 나도 곧 면접 보러 다닐 시기잖아. 그래서 예전 같은 파격적인 염색은 피하면서 나름 현실과 타협하고 살고 있어. 피곤하긴 해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난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거! 나만의 멋과 취향만큼은 잃고 싶지 않아.
인터뷰어 진스 / 포토그래퍼 유송, 채은
2026. 2. 23. 수피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