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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Nov 09. 2022

삶이 확신이 되는 과정

인터뷰어 아뵤 / 포토 호호





*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졸업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양희윤 학우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사실 졸업 심사를 위한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평범한 것 같아요. 1학기에 너무 많은 걱정을 해서 지금 큰 걱정이 안 드는 것 같기도 해요. 졸업 전시를 하려면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심사 당락에 대한 걱정보다는 전시에 대한 걱정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전시 준비 기간이나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서부터 끝이다, 그런 건 거의 없는 것 같고요. 아무래도 예술의 영역이다 보니까 사람마다 시작점도 다르고, 또 고통받는 지점도 다르고, 완결되는 부분도 다른 것 같아요. 3년 동안의 작업들이 모여서 이미지로나 내용으로나 하나로 연결되기도 하고, 그냥 완전 새로운 작업을 하기도 해요. 저도 사실 이 작업이, 1학기 때는 전혀 다른 작업을 하다가 2학기 개강 직전에 시작한 작업이에요.



고통스러운 지점이 다르다고 했는데
희윤 님에게는 혹시 어떤 지점이었나요?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고통을 느끼는지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작업이 풀릴수록 '나한테 정말 확신이 없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로 같은 고민에서도 사실 확신이 없는 게 가장 불안하고 힘들잖아요? 그 상황이 작업에도 똑같이 영향을 주더라고요. '이걸 지금 그려야 하나? 그리고 싶나?' 그런 것조차도 확신이 안 드는 상황이, 고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확신을 갖게 하는 요소들도 있나요, 살면서?


    모호한 지점들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확신이. 이 작업도 그렇고요. 학교에서 심리상담을 받았을 때 제가 제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서 갑자기 그 말을 곱씹어보면서, 그렇게 모아져 있는 감정의 형태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런 그림들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확신이라는 게 결국 감정이다 보니까, 어디서 생겨날지 사실 알 수가 없는 거죠.





작업에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피드백이죠. 4학년 돼서 정말 많이 느낀 것 같아요. 피드백이 중요하다. 그리고 동기들끼리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거. 4학년 1학기가 되고 동기들하고 이야기하던 시간이 거의 차단이 되는 거예요. 공간이 달라질뿐더러 다 휴학을 하기도 해서. 혼자 남겨진 것 같고 그래서 그때 심리적으로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크리틱’이라고 해서 4학년 1, 2학기에 한 번씩 교수님들께 공개적으로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있는데, 사실 그때보다도 그냥 매주마다 동기들이나 같이 실기실 쓰는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던 게 훨씬 더 저한테 많이 쌓였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희윤 님에게 미술이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나요?

    대답하기 약간 부끄러울 정도로, 저한테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미술 자체가 그냥 저의 일상이고, 취미고. 그 모든 부분을 다 엮고 있는 분야라서.


    초등학생 때부터 계속 방과 후 미술 수업을 했어요. 가끔 빼먹고 안 가거나 해도 몇 년 동안 꾸준히 했는데, 그때 미술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거든요? 그냥 거기서 친구하고 노는 게 좋았지. 그런데 중학생 때 방과 후 미술 선생님이 정말 좋은 분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전시를 보러 가라는 조언을 들었거든요. 제가 말을 잘 듣는 편이라서 ‘선생님이 가라니까 가 봐야지,’하고 갔어요. 한가람 미술관에서 한 프리다 칼로 전시였는데, 그 전시를 봤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요. 그 뒤로 저 혼자서 전시를 보러 다녔어요. 그러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가 중3 때였는데 부모님께 말씀드리게 됐죠.

성남에 살았는데 지금은 또 본가를 인천으로 옮겼어요. 그래서 사실 그때 지리적 여건도 좋았던 거죠. 바로 빨간 버스 타면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니까. 여러 가지가 좀 맞았던 것 같아요.


    전시 보기가 유일한 취미예요. 전시를 보는 것도 있지만 보러 가는 그 과정이 저한테는 힐링하는 시간이라서요.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길을 걷고 버스 타고. 공부하는 와중에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약간의 핑곗거리가 되어주고. 그런 게 좋아서 어렸을 때부터 다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취향도, 웬만해서는 미술이면 다 좋아해서 닥치는 대로 보는 것 같아요.



원래 성격도 그런 편이세요?


    제가 그렇게까지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는 느끼지 않거든요. 근데 미술이 저를 열려 있는 사람이고 싶게끔 만들어준 것 같아요. 미술이라는 영역 자체가 사회의 전 분야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띠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영역이고. 그래서 미술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많이 열리는 것 같아요.





4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요?


    4년 동안 제 자신에 대해서도 새로이 알게 된 부분이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대학교 와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특히, 싫어했던 걸 다시 경험하고 좋아진 게 많아요. 예를 들어 햄버거를 학창 시절 때까지 거의 먹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먹는 것 같아요. 되게 사소하지만 스스로 큰 변화라고 느끼는 것들이 있어요.


    새로 사귀었던 친구가 햄버거를 정말 좋아해서, 같이 가서 한번 먹어봤다가 좋아졌어요. 제가 주위 환경, 특히 사람한테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결국 애정이란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걸 저절로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에너지잖아요. 그 에너지가 진짜 중요해요. 제가 장르를 거의 가리지 않고 미술을 좋아하는 것도 다 그런 애정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제가 되게 부정적인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갈수록 좋은 점들만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고, 지금은 그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 같아요.






고민해오던 것이 있나요?

    4학년이 되면서 느낀 걸 말해볼까요. 막 학기가 되니까 졸업을 하고 나서 뭘 하지 막연한 고민에 자꾸만 발을 들이게 돼요. 저는 학석사 연계를 진행 중이라 바로 대학원에 가면서도 계속, 휴학하면, 졸업하면, 10년 뒤에는 뭘 할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웃긴 건 이런 고민을 3학년 2학기 때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진로에 관한 고민은 평생 하겠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이 어렸을 때는 '어떻게 떳떳하게 살지'에 관한 질문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벌어먹고 살지'라는 현실적인 질문이 된 것 같아요.



그 두 가지에 대한 답을 찾으셨나요?

 

    어렸을 때 인생에 대해서 좀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사회에서는 늘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런 문제들을 듣거나 볼 때 '그럼 나는 뭘 할 수 있지? 나는 지금 이렇게 어리고 아무런 힘도 없는데,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나?' 하는 생각에 많이 괴로웠어요.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근데 저 같은 사람한테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픔을 기억하고 같이 힘들어해야 하는 게 맞는데, 자꾸 저 자신을 놔 버리고 싶어 지니까.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내일 당장 어떻게 벌어먹고 살지를 고민하는 것도 떳떳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요?

    ‘가장 좋아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이런 수식어가 달린 기억을 골라내는 게 제일 어려워요.


    특정한 어느 하루보다는, 동기들과 야작을 하면서 하려고 했던 작업은 안 하고 떠들다가 집에 갔던 밤들이 기억나는 것 같아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기억나지 않으면서 즐거웠고, 또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특정을 짓는다면, 3학년 과제전? 1, 2학년 과제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했거든요. 정말 열심히 밤새 작업했고 그래서인지 축하해주러 오는 지인들에게 받은 축하들이 진심으로 기뻤어요.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공개적으로 축하를 받는 경험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뜻깊었죠.






인터뷰어 아뵤 / 포토그래퍼 호호

2022.10.31 미술학과 양희윤 학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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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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