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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Nov 24. 2022

현재 경험의 의미를
증대하기 위해 행동하라

인터뷰어 안나 / 포토그래퍼 윤슬




* 성균관대학교 케이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현재 경험의 의미를 증대하기 위해 행동하라>라는 존 듀이의 말을 좋아해요. 스스로 늘 경험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데, 제가 스스로 생각하는 비전과 가치가 결국 어떠한 일련의 행동이나 경험의 선택의 기준이 아닐까 싶어요. 저에게 의미의 증대는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데, 이 의미는 처음 선택될 때부터 아주 작은 씨앗이라도 있어야 해요. “나는 왜 살지?”라는 질문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려면 “왜”라는 것을 고민해 보는 게 의미의 출발인 셈이죠. 그리고 거기서부터 의미의 증폭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어떤 소리의 파문이 커지듯, 내가 하나의 스피커가 되어 증폭되는 것. 즉,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의 선택의 기준이 있느냐에요. 그리고 이를 온전히 적용하고 있는가 말이죠. 


    저는 성대 친구들만큼 바쁜 친구들을 본 적이 없어요. 이 정도면 아이돌 스케줄이라면서 늘 놀려요(웃음). 한편으론 왜 그렇게 다들 피곤해할까, 무엇인가를 하는 데 있어 그렇게 극심한 피로를 느낄까 안타까워요. 한 가지 이유를 꼽자면 내가 이것을 선택했을 때 나만의 기준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차이인 것 같아요. 이유가 있는 사람은 다음 일을 진행하면서 그 과정을 의미화시킬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면 결과만 보게 되죠. 나로부터 출발된 이유가 있지 않으니 기댈 곳은 결과밖에 없어서 결과만을 보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늘 “왜”라는 질문을 강조하면서 스스로의 기준을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을 의미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게 사실 어렵잖아요.
어떤 일은 하고 나서 의미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맞아요, 그게 사실 엄청난 장벽이 되기도 하죠. 성대 친구들을 만나면 ‘참 성실하지만 용감하지 못해’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저 역시도 감정의 근원 중에 공포가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라 너무나 잘 이해해요. 다만 왜 이런 공포가 생겨났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렇다 할 실패를 겪어보지 않으면 그 공포가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어떤 종류이든 거절이나 실패를 거듭 경험하게 되면 생각에 변화가 생기는데, 틀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틀 밖으로 한 번 정도 이탈해 보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틀 밖으로 한번 벗어난 것만으로도 어떤 점에서는 동일한 나이지만, 또 되게 많이 다르다는 전환점이 되거든요! 그게 결국 의미를 찾아 한 단계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저는 집중과 몰입은 굉장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몰입은 그만의 플로우를 만드는 거예요. 무엇인가 빠져들만한 걸 발견하고 이를 끝없이 반복하는 거죠, 마치 회전 계단처럼요. 몰입에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되게 중요해요. 단순한 호오의 문제를 떠나, 내가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몰입할 수 있게끔 애착점을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당신이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쓰고 끊임없이 반복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주고 싶죠. 몰입이라는 것은 끝없이 다음 스테이지를 자기 스스로 만들거든요. 그 한 단계 한 단계를 찾아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자신만의 플로우를 만드는 거죠.



몰입의 경험에 대해 듣고 싶어요. 


    20년 넘게 키운 고양이를 몇 달간 터미널 케어를 하며 임종을 함께 했는데, 저는 그 경험이 완전한 몰입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친구가 신부전이라는 병 진단을 받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통보를 받는데, 저를 정말로 무너질 지경까지 고통스럽고 슬프게 만들었죠. 그러면서 결심을 했어요. 되돌릴 수 없다면 지금 내 우선순위는 지금 얘다, 일도 다 그만두고 옆에 붙어 케어를 했어요. 아픈 고양이를 케어하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계속 공부를 했었고, 이 아이가 잠이 든 시간에는 하루의 기록에 대해 계속 글을 썼어요. 내가 생각하는 케어라는 것은 무엇인지, 또 죽음이란 것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지금 저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요. 


    그때 아마 제가 팀에 대한 막연한 지향점을 갖게 되었던 것 같아요. 2인칭의 죽음을 처음 느껴보면서 엄청난 고통과 막막함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는 낯선 고양이에게 너무나 많은 공감과 지지를 보내주었거든요.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공동의 생각과 철학을 쌓아나가는 과정들이 있었어요. 


    그때 팀에 대한 경험을 두 가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우선 고양이가 너무나도 씩씩하게 투병을 했어요. 끝까지 존엄하게 자기의 생명을 바닥까지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케어하는 입장에서도 그리고 투병하는 입장에서도 너무나 호흡이 잘 맞았거든요. 내가 교감을 하고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존재와 무엇인가를 같이한다는 것은 그것이 죽음까지 가는 과정조차도 굉장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리고 이 아이의 기록을 고양이 투병 카페에 공유했는데, 이러한 저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관계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 있었어요. 커뮤니티와 사회적 지지가 주는 힘을 참 많이 느끼게 되었죠.

이 몰입의 경험이 저를 한 단계 성장하게 했고, 죽음에서 나아가 웰다잉의 문제에 생각해 보면서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었어요.





    

    옛날에도 물론 여러 변수와 위기는 존재했지만 이 정도의 예측 불가능성이 높은 시대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요. 그게 이십 대들을 힘들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이고요. 저 역시도 감정적으로는 공감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충분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최근 지속 위기(영구적 위기, permacrisis)라는 단어를 보고 나서 한순간에 납득이 됐어요. 저는 대학교 때 기질적인 이유에서 개인적으로 우울했을 뿐 불행하지는 않았었거든요. 그때는 앞으로의 삶이 점점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제가 크게 잘못하지 않으면 말이죠. 근데 지금은 내가 뭔가를 놓치면 위기에 빠질 거라는 불안감이 너무 크게 자리하고 있어요. 그래서 항상 불안하죠, 마치 맹수가 언제 목덜미를 물어뜯을지 몰라 쫓기는 토끼처럼. 물론 기회도 많아요. 다만 위기는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위기가 회복될 수 없다고 믿는 게 너무나도 큰 것 같아요.



이런 불안은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요.


     지속 위기가 당분간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이럴 때 위기에서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음 단계로 살아남는 사람이 있는데, 결국은 자기가 그 위기에서 생존자가 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중요해요. 또, 때로는 누군가의 지지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여기서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요. 칭찬은 쉽지만 지지는 어렵기 마련인데, 그 이유는 지지에는 책임이 결부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살면서 지지를 받아본 경험이 많지는 않은데, 그게 저에게 있어서 사회적 결핍으로 느껴져서 대물림되지 않길 바라요. 그래서 칭찬보다는 지지를 하고자 노력해요. 칭찬은 결과에 대한 칭찬이지만, 지지는 출발에 대한 지지잖아요. 친구들이 결과에 집착하게 하기보다는 시작하게끔 만들어주고 싶어요.





    

    스스로에게 Why(왜)라는 질문은 던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다만 쉽지 않은 일이죠. 고통스러운 솔직함을 마주해야 하거든요. 그게 힘들 때 저는 일단은 미사여구를 좀 버리려고 해요. 저희가 Why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예쁜 단어를 선별하려고 되게 애쓰거든요. 마치 인스타 포스팅하듯이. 이렇게 미사여구를 좀 걷어내게 하기 위해서는 실제 경험에서 근거한 표현들이 나와야 되는 것 같아요. 나한테서 아주 강력하게 느껴지는 무언가의 경험들.

 

    이거는 제 후배의 이야기인데 이 친구 같은 경우에는 자기 삶의 Why가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최대한의 스킨십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말해요. 이 친구하고 왜 그게 너의 삶의 동력일까, 너는 왜 그걸 향해서 사는 걸까라고 대화를 나누다가 이 친구가 하는 이야기가 이제 부모님이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세요. 근데 늘 바쁘세요. 어느 날 자기가 국민학교 때 자다 일어나서 빈집에 눈을 떴는데 그때 느껴졌었던 그 공포의 경험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이후에 결정적인 장면을 돌이켜보면 내가 지극히 행복했던 순간, 내가 충만함을 느끼고 누군가를 막 좋아하고 아니면은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했을 때는 늘 옆에 스킨십의 경험들이 있었더래요. 자기가 제공하거나 자기가 받는 방식으로요. 그다음에 자기가 아무리 뭔가 성공을 했어도 지극히 외롭거나 고통스러울 때가 있는데, 멈춰 서서 이게 뭐지 하면서 근원을 생각해 보니 바로 스킨십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장면들이 자기 스스로 되게 솔직하게 꺼내져야 되는 것 같아요. 저한테 가치가 되는 경험들을 다시 꺼내듯이 주요 장면들을 나열해 보는 거,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Why에 대한 질문의 답변을 찾아주는 게 아닐까 해요. 더 이상 답할 수 없을 때까지 솔직하게, 그러나 타협하지 않는 반복된 질문 이런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인터뷰어 안나 / 포토그래퍼 윤슬

2022.11.18 케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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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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