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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Jan 12. 2023

난 괜찮은 사람이야,

인터뷰어 또트 / 포토그래퍼 둔재



* 성균관대학교 구봄 과의 인터뷰입니다.






2022년은 봄에게 어떤 자국들을 남긴 것 같나요?


    상처에 연고를 발라준 자국들이 보이네요. 2022년을 살면서 난 괜찮은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됐어요.


    지금까지 3년 동안 대학에 다니면서 계속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어요. 누군가가 압박한 게 아니라 스스로 정말 괜찮은 사람이고 싶으니까,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단 생각에 무리해서 일을 했죠. 촬영 다니면서 학점도 꽉꽉 채워 듣고, 수업도 절대 안 빠지고, 과제도 늦게 제출해도 최대한 열심히 하려고 하고, 그런 와중에 프로젝트 있으면 참여하고, 휴스꾸도 너무 재밌으니까 계속해 왔어요. 내 그릇이 안 되는데 불안하게 너무 많은 걸 담으려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휴학하면서 다 내려놨어요. 굳이 이렇게 안 해도 그냥 숨만 잘 붙어 있으면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젠 뭔가 잘하려고 너무 욕심부리진 말아야겠다 다짐하게 됐죠. 1학기를 휴학하고 여름 방학엔 유럽 여행을 하면서 정말 푹 쉬었어요. 그런데 푹 쉬면서 뭐랄까요. 성과를 낼 게 없으니까 자책할 거리도 없더라고요.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알람도 절대 안 맞췄고요.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어요. 그리고 그날그날 가고 싶은 데를 다녀오면서 지냈죠.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정말 힘이 많이 됐어요. 그렇게 지내면서 사소한 걸로부터 제가 좋아지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2학기 때 학교를 열심히 다녀야겠다고 처음으로 결심했어요. 원래 학교는 제게 1순위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촬영도 거의 안 나가면서 학교에만 집중했는데 생각보다 성과가 너무 좋은 거예요. 물론 고생했지만 그만큼 몰두했을 때의 결과가 좋으니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한 과제들로 칭찬도 많이 받았고요. 스스로와 외부에서 좋은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존감을 회복했던 것 같아요. 옛날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들로 저 자신을 엄청 헐뜯고 아프게 했는데,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나는 생각보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됐죠. 그리고 다들 성장이란 게 있는 건데, 차근차근 자기 속도대로 가면 된다는 걸 제대로 깨달았어요.






    혹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보셨나요? 그 영화에서 선택 하나로 모든 게 달라져요. 저는 정말 그걸 믿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이번에 촬영 회식이 있었는데 아파서 그걸 안 가기로 하고 집에 있었어요. 전 이 결정으로도 뭔가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회식을 그대로 갔을 나는 또 다른 내일을 계속 살고 있을 것 같고, 회식을 안 간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답은 없는데 최선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 되게 많이 생각한 문장이거든요. “정답은 없지만 최선은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매 순간에 충실해지는 것 같아요.


    만약 마음에 안 드는 선택이 있다면, 그건 스스로를 기만한 결정이라 생각해요. 이만큼만 해놓고 ‘나 열심히 했는데?’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결정은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최선이 쉼 없이 달리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제가 1학기 때 아예 쉰 것도 저한텐 최선이 될 수 있고, 스스로랑 타협만 안 하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게 힘들지만, 힘들면 분명히 성장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최선을 살고 싶어요.






2023년에 달라지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제가 할 깜냥이 되는 거에는 과감히 욕심부리고 그게 안 되는 거에는 과감히 욕심을 버리고 싶어요. 욕심을 취사선택하는 거죠. 여러 군데 발 걸치기보다 몇 개만 집중해서 하고픈 마음이에요.


    물건욕도 많아서 집에 물건이 정말 많아요. 제가 사 모으는 게 아닌 데도, 그냥 어쩌다가 사게 되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욕심을 낼 거면, 요즘 관심이 많은 책에 부리고 싶어요. 나머지 잡다한 것에는 욕심을 아예 버리고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친구들 만나고 아는 사람 한 명 더 늘리고, 그런 것들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아요. 그 시간을 모아서 저 혼자 채우고 공부하면서, 분배를 잘해 가고 싶죠. 그렇게 사람한테도 욕심을 덜어가고 싶어요. 


    되게 재밌는 게 제가 머리를 칼 단발로 잘랐거든요. 머리를 아예 싹 자르면서 그게 마음가짐에도 도움이 됐어요. 보기에도 스스로가 깔끔하니까 그렇게 살고 싶어지고, 거울을 볼 때마다 그런 삶을 지향하게 돼서 신기해요. 전 환경이나 시각적인 게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리나 청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어질러진 데가 있으면, 마음도 똑같이 어질러지고 마음이 어지러워도 환경을 먼저 치우면, 마음도 정돈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 있는 물건을 싹 비우려고 하고 있죠.


    원래는 찰흙을 막 덕지덕지 붙이는데 바빴다면, 이젠 조각하듯이 깎아내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안을 쌓고, 그렇게 밀도를 높여가고 싶어요.

 



 


삶을 살아가면서 꼭 잊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있다면요?

 

    제가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예술과 인간에 대한 관심은 놓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관심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요.

 

    마로니에 공원에 가면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는 설치물이 있어요. 공원에 갈 때마다 계속 보게 되는데 그 말이 너무 좋은 거예요. 예술이 정치적인 것도 많지만 저는 그냥 파랗게 칠해진 추상화도 좋아요. 그걸 보고 있으면 제 감정이 어떻게든 울리니까요. 그렇게 예술을 접하며 삶이 풍부해진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예술은 인간이 만드는 거잖아요. 그래서 결국 인간 얘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난 왜 태어났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런 생각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예술을 하면서 찾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예술을 보고 찾는 것 같기도 해요. 왜 태어났냐는 질문이 어찌 보면 허무하고 말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그런데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담은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 이유를 조금씩 찾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다시 길을 잃기도 하지만, 전 이렇게 계속 생각하고 찾게 되는 게 좋아요.


    사람이 자기 기원을 계속 찾게 되는 게 참 신기한 것 같아요. 영화에서 어렸을 때 엄마가 주인공을 버리면, 나중에 그 주인공이 엄마를 꼭 찾아가는 이야기가 많잖아요. 옛날에는 이해가 안 됐거든요. 지금 집에서 잘 살고 있는데 왜 자기를 버린 엄마를 궁금해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인간은 기원을 찾게 되는 동물인 것 같아요. 그렇게 찾아가는 과정에서 무미건조한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고요. 그런 데 도움을 주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선도 잃고 싶지 않아요.


    제가 사진 찍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사진에 있어서 무언가를 아름답게 본다는 게 스스로 장점이라 생각해요. 친구들 사진을 찍어줄 때도 전 친구들이 정말 아름답게 보여서, 제 눈에 보인 모습을 최대한 표현하는 방향으로 찍으려 해요. 그런 식으로 눈에 미화 필터가 작용하는 거죠. 어떤 사람은 삶의 고통이나 파괴적인 장면을 찍는 데 끌리기도 하지만, 전 삶의 긍정적인 면을 자꾸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저 스스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요. 꾸준히 아름다운 것들을 계속 발견하고 싶어요.






인터뷰어 또트 / 포토그래퍼 둔재

2023.01.07 구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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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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