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보다 먼저 보는 것은 엄마의 얼굴이다.
지난 글에 이어서 [애착의 유형]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애착 유형에 대해서는 고백하기 창피한 에피소드가 있다. 논문 발표와 사은회가 있던 몇 년 전, 신입생들과 후배들이 있는 자리에서 내 소개를 이렇게 했다.
안녕하세요. OO기 안정애착 OOO입니다. 과제와 시험에 치여 사는 동안 가족의 따뜻한 지지와 부모님의 사랑 덕분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화끈거리는 멘트였다. 애착에 대해 공부 좀 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자기애에 빠진 인사말인지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 도대체 안정애착이라는 게 가능했을까. 먹고살기 바쁜 70년대에 적절한 의사소통 유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고, 아이의 반응에 "~ 했구나."라고 포근하게 말해줄 여유가 없었을 텐데. 부모님이 티격태격 싸우셨다 금방 풀어지고 하면서 지금까지 함께 사시는 게 다행이다. 일 년 동안 눈물 콧물 흘리며 개인 분석을 받은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안녕하세요. 안정애착인 줄 알았던 OOO입니다.
안정된 유아들은 낯선 상황(the Ainsworth Strange Situayion)에서 엄마와 분리될 때 고통받았더라도 엄마를 다시 만나면 바로 안심하며 놀이를 다시 시작했다. 이런 유아의 탄력성(resilience)은 유아가 보내는 신호와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 엄마와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이다.
⇒ [엄마들] 이 엄마들은 유아에게 자신의 속도나 목적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신의 리듬이 유아의 리듬에 순조롭게 맞물리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Winnicott의 표현에 의하면, 이 엄마들은 '충분히 괜찮은 (good-enough)' 방식으로 잘못된 조율보다는 민감성을 /거절보다는 수용을 / 통제보다는 협동을 / 냉담함보다는 감정적으로 함께 해주는 능력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었다(Ainsworth et al., 1978).
⇒ [유아들] 안정애착 유아들은 불안정 애착 유아들에 비해 자존감, 감정적인 건강, 자아탄력성, 긍정적 정서, 주도성, 사회적응력, 놀이에 집중하는 능력이 상당히 높고, 교사와의 관계도 좋다.
⇒ [성인이 되어] 유연성과 탄력성을 가짐, 긍정적인 대인관계 형성
회피적인 유아들은 엄마가 떠나든 돌아오든 눈에 띄게 무신경한 반응을 보였다. 낯선 상황 실험 이전과 이후에 측정한 이들의 코르티솔(신체의 주요 스트레스 호르몬)은 안정된 유아에 비해 그 증가량이 높았다. 회피형 유아들은 부모와의 분리와 상실로 인해 외상을 경험한 연령이 높은 아이들처럼, 위로나 돌봄을 요청해봐야 소용없을 거라고 체념한 듯 보였다.
⇒ [엄마들] 애착 관련 경험과 관계를 무시(dismissing)하거나 애착 행동에 거부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 유아들의 엄마들은 감정표현을 억제하고 신체 접촉을 회피한다. 유아가 울면 뒤로 물러나거나 무뚝뚝하게 반응한다.
⇒ [유아들] 연결을 이끌어내는 모든 의사소통을 억제한다. 엄마한테 가까이 가지도 않고 애정표현에도 무관심하다. 안기더라도 축 늘어진다. 왜냐하면 거부당하는 것을 피하고 자신의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의 슬픔을 비켜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라서 학생이 되면 보통 부루퉁하거나 거만하거나 반대를 잘하는 성향을 보인다. 교사가 화를 내거나 통제하는 반응을 하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고, 주로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경향이 많다.
⇒ [아동기와 그 이후 시기의 정신병리에 미치는 위험요소] 성인 이후의 강박적, 자기애적, 분열성적 문제와 관련이 깊다.
Ainsworth의 연구에서는 두 가지 유형의 양가적인 유아들이 확인되었다. 낯선 상황 실험 이후 엄마와 다시 만났을 때 엄마에게 적극적으로 매달리거나 거부하고(분노하는), 또는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두 가지 유형이다(Main & Weston, 1982).
⇒ [엄마들] 회피형 유아들의 엄마들처럼 언어적이거나 거부적이지는 않지만 유아의 신호에 대한 반응이 매우 적다. 유아가 보내는 신호에 일관성 없는 반응을 보이고 이랬다 저랬다 하며 예측 불가능하다. 은근히 유아의 자율성을 좌절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자신의 애착 경험에 집착하여 화난 말투와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두려워하는 등 혼란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 [유아들] 처음부터 엄마가 곁에 있는지에 매우 집착한다. 엄마에게 너무 달라붙거나 분리될 때 떼를 쓰며 괴로와한다. 계속 떼를 쓰면 언젠가는 들어주겠지 하며 나름대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시 만났을 때도 안도감이 적고 미숙해 보이는 아이들이 많다. 자라서 교사에게 응석을 부리고 유아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주로 피해자가 되는 경향이 많다.
⇒ [아동기와 그 이후 시기의 정신병리에 미치는 위험요소] 히스테리나 연극성 장애와 연관성이 있다.
Ainsworth의 연구가 수행되고 거의 20년이 지난 뒤 Main이 그전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유형을 발견했다. 혼란된 애착 유형의 유아들은 엄마와 다시 만났을 때 등을 돌리거나 얼음이 되거나 바닥에 맥없이 쓰러지거나 멍한 모습을 보인다. 즉, 접근과 회피의 중간에서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인다. 부모에게 학대받은 유아의 82%가 혼란된 애착으로 분류된다(Calson et al., 1989).
⇒ [엄마들] 부모가 아이에게 겁을 주거나 / 아이 스스로 겁을 먹었거나 / 정신질환, 물질남용 등으로 해리된 상태에 빠진 부모와 상호작용했을 때
⇒ [유아들] 해결책이 없는 공포를 경험한 유아의 입장에서 전략이 붕괴된 것이다.
⇒ [아동기와 그 이후 시기의 정신병리에 미치는 위험요소]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들과 연관성이 있다.
애착은 독특하고 생물학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근본적인 행동/동기 체계이다. 유아가 양육자와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최초의 상호작용은 애착과 관련된 정보를 조직하는 의식적/무의식적 규칙인 내적작동모델이 된다. 이는 감정과 행동뿐만 아니라 주의와 기억, 인지에도 영향을 미치고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불안정 애착은 세대 간에 전이된다(Main, 1995).
애착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유아와 양육자 간의 의사소통의 질이다. 유아의 비언어적인 단서들에 정확하게 반응해 주어야 한다. 부모는 마음 상태에 대해 명시적으로 생각하는 정신화(mentalizing)와 자기 성찰을 통해 정서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자녀의 불안을 잘 담아내는(containing) 부모가 되어야 한다(Fonagy). 자녀의 불안을 잘 담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부모의 공감, 적절한 대처, 아이의 의도적인 입장에 대한 알아차림이다. 이러한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 아이의 정서를 조절하고, 부모는 안전한 도피처, 안전기지로서의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거울보다 먼저 보는 것은 엄마의 얼굴이다.
D. W. Winnicott(1971)
감정 조율을 잘하는 부모의 내적 상태에 수반되고(contingent), 티가 나는 반영(marked mirroring)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마음이 자기 자신의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 애착은 다른 세대로 전이된다. 부모가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해 잘 알아차리고 생각하는 정신화가 되면 애착에 문제가 있던 부모라도 아이들의 안정애착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상담 장면에서는 내담자들에게 안전 기지를 제공함으로써 그 자체로 치유적일 수 있는 교정적인 관계 경험을 제공한다. 내담자의 신체 감각과 표현, 움직임, 자세는 무언의 말을 한다. 상담자는 마음챙김 작업과 신체 작업을 통해 감정과 접촉하고 감정을 조절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신의 과거와 경험에 대해 자기가 취하는 태도가 궁극적으로 훨씬 큰 영향력이 있다. 우리는 경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안정과 유연성, 내적 자유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상담자는 심리치료를 통해 성찰적 태도와 마음챙김의 태도를 갖게 하여 내담자가 자신을 폭넓게 자각하도록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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