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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의달빛정원 Apr 03. 2018

독서치료 #11 초기기억이 미치는 영향

<마법의 여름>을 읽고

언어 습득 이전 신체 감각에 기반한 초기 기억

개인 분석을 받을 때 어린 시절 초기 기억을 먼저 물어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초기 기억은 한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에 대한 느낌과 대인관계 패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우리의 초기 기억은 상징적 사고가 발달하기 전에 암묵적으로 형성된다. 주로 운동 기억과 감정 기억, 상태-의존적 기억 또는 기분-의존적 기억, 신체적 패턴, 타인과 함께하는 자기 절차로 부호화된다(Beebe & Lachmann, 2002; Pally, 1998; Siegel, 1999; Stern, 1977, 1985). 감정(emotion)과 느낌(feeling)은 '느껴진 경험(felt-experience) 일 뿐 아니라 '신체에 기반을 둔' 경험으로,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존재한다. 치료자들은 신체감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언어로는 접근할 수 없는 형태로 내담자 안에 존재하는 초기 관계 경험이나 트라우마를 알아차리고 접근할 수 있다.


시골에서 마법의 여름을 보내는 형제


초기 기억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미 모넬화학감각연구센터의 레이철 헤르츠 박사는 특정 향기를 맡으면 감정이 들어간 개인적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향기가 기억을 이끌어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한다. 나는 맑은 계곡에 가서 숲 냄새와 물 냄새를 맡으면 어린 시절 자주 찾던 산골짝의 외가로 순간 이동하는 경험을 한다. 나의 초기 기억은 월악산 계곡물을 움켜쥐던 알싸한 아침 공기와 물 냄새에서 시작된다. 세네 살 된 작은 아이가 외갓집 앞을 흐르던 계곡물에 발부터 담그고 맑고 차가운 물을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했다. 눈앞에는 가재가 기어 다니고 잔잔한 연두색 물결이 음악처럼 흔들리는 그 장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이런 초기 기억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지금도 지쳐 힘들면 그 산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맑은 계곡물을 움켜쥐고 잠잠히 들여다보면 안정감을 느낄 것 같다. 대학시절 방황할 때 기어들어간 곳도 바로 그곳이고, 안기고 싶은 정신적 엄마이자 기대고 싶은 안식처로 남아 있다. 또한 나는 맑은 물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담자의 마음을 맑고 깨끗한 거울로 비춰주어 그 안의 보물을 찾도록 안내하는 상담심리사가 되고 싶다.
                                                  

<마법의 여름> 표지

작가 후지와라 카즈에는 소아과 의사                                   

<마법의 여름>의 작가 후지와라 카즈에는 소아 뇌신경외과 의사였다. 그는 오랫동안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서인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느끼는지를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이 작품은 2001년 <눈 내리는 하굣길> 이후 2002년에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2017년 기준으로 초판 18쇄를 찍은 스테디셀러이다.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의사가 쓴 글에 개구쟁이 어른인 하타 코시로가 삽화를 그려 좋은 작품을 만든 것이다.
                                                  

하타 코시로의 경쾌한 삽화

맞벌이 가정의 케이와 유이 형제는 여름 방학에도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시골 바닷가에 사는 외삼촌의 엽서를 받고 환호성을 지르며 도쿄를 떠난다. 이발사인 외삼촌은 조카들의 머리를 빡빡 깎아주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허연 도시 형제가 만난 시골 아이들은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새까매서 더 눈에 띄었다. 시골 아이들과 더불어 계곡에서 장수잠자리를 잡고, 물에 빠지고 나무를 타면서 두 형제는 조금씩 건강해지고 잘 먹고 잘 자게 된다. <흔들 흔들 다리 위에서>라는 작품을 만든  하타 코시로가 그린 그림을 보면 그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 짐작이 간다. 깊고 푸른 숲속 풍경, 나무를 기어오르는 모습, 계곡에 빠지는 모습, 모기에 물려 부은 얼굴 등 풍성한 자연을 담아내고 있다. 두 형제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는 장면을 볼 때마다내 신체감각은 순식간에 어린 시절로 달려간다. 미지근한 비와 축축한 옷의 감촉, 비와 함께 올라오는 흙냄새, 찐덕찐덕하게 진흙을 밟는 소리가 기억난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평화가 코딩 되길...

초기 기억은 신체 감각에 저장된다. 어린 시절, 자연이 주는 평화와 안정감을 경험해 본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 그 자연이 훼손되거나 파괴하려는 것에 맞서 대항할 수 있다고 한다. 케이와 유이처럼 자연 속에 폭 안기는 경험을 한 아이들은 몸속 어딘가에 자연의 경이로움과 평화가 코딩될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위로하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을 제공하는 삶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스마트 기기에 놀이 빼앗기고 '아이다움'을 잃어가는 우리 아이들이 놀이를 되찾으면 좋겠다. 자연의 품에 흠뻑 안겨 얼굴이 까매질 때까지 놀아본다면 그 추억을 평생 간직하고 힘들 때마다 조금씩 꺼내 보며 음미할 수 있을 테니까.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저녁 노을
수평선 너머로 지는 저녁 해는 정말 컸다.
나는 어제보다 훨씬 더 새까매졌다.


[자기 적용]

· 여러분은 어떤 초기 기억을 가지고 있나요

· 그 기억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 자연에 폭 안기어 안정과 평화를 느낀 적이 있었나요

· 힘들 때마다 찾아가 쉬고 싶은 공간이 있나요

· 이 그림책을 누구와 함께 나누고 싶은가요

· '마법의 여름' 같은 경험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눈 내리는 하굣길> / 아이세움

<몸, 뇌, 마음> / 주디스 러스틴 / 눈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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