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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의달빛정원 Apr 11. 2018

독서치료 #12 아이들의 감성을 키워준 노래들

<백창우 아저씨네 노래창고> 외

육아에 지친 나를 울리던 노래


2000년 가을. 남들보다 빨리 결혼해서 두 딸을  키우던 나는 왠지 모를 허전함과 힘겨움에 지쳐있었다. 남편과 토닥거린 뒤 울컥해서 애들을 맡기고 무작정 집을 나와 걸었다. 어렵게 혼자 나온 가출?이라 백화점이라도 갈 줄 알았지만 나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이 책방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으로 향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져서 하염없이 듣고 서 있었다. 그때 흘러나온 노래는 꼬마 아이와 어른이 함께 부른 노래였다. 주인장이 건네준 건 <백창우 아저씨네 노래 창고>라는 테이프가 딸려 있는 노래집이었다.  


우리 어머니

이원수 시 / 백창우 곡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
오늘은 주무셔요
바람 없는 한낮에 마룻바닥에
코끝에 땀이 송송 더우신가 봐
부채질해 드릴까 그러다 잠 깨실라

우리 엄만 언제나 일만 하는 엄만데
오늘 보니 참 예뻐요 우리 엄마
콧잔등에 잔주름 그도 예뻐요
부채질 가만가만 해드립니다   

  

언제나 일만 하던 엄마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란 가사를 듣자마자, 철부지 나이에 애 엄마가 된 나의 처지와 늘 바빴던 친정 엄마가 오버랩이 되면서 그만 폭풍 눈물을 흘리고 만 것이다. 우리 엄마도 '바람 없는 한낮에 마룻바닥에' 누워 코를 골며 주무실 때가 있었지... '우리 엄만 언제나 일만 하는 엄만데' 가끔 보면 귀여울 때가 있었지... 학부모 대상으로 독서치료 집단상담을 할 때 이 곡을 함께 부른 적이 있다. 참여자들이 그린 어머니의 모습은 몸배 바지에 뽀글뽀글한 파마 머리를 하고, '찢어진 난닝구'를 꿰매 입으시던 주름 가득한 모습이 많았다. 우리는 이 곡을 함께 부르면서 어머니들을 추억했고 시에 어울릴 만한 그림을 그렸다. 동시에 우리 아이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고향 바다     
이원수 시 / 백창우 곡   
  
봄이 오면 바다는 찰랑찰랑 차알랑
모래밭엔 게들이 살금살금 나오고
우리 동무 뱃전에 나란히 앉아
물결에 한들한들 노래 불렀지

내 고향 바다 내 고향 바다
자려고 눈 감아도 화안히 뵈네
은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내 고향 바다 내 고향 바다       

  

테이프가 늘어지게 듣다


그 날 사들고 간 <이원수 시에 붙인 노래들>은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우리 가족과 함께 들었다. 바다 여행을 갈 때는 차 안에서 '고향 바다'를 불렀는데 그 후로 아이들은 이원수 님의 시처럼 '자려고 눈 감아도 바다가 환히' 보인다고 했다. 양치질을 가르칠 때는 '이 닦는 노래'를, 애들을 재울 때는 '어디만큼 오시나'와 '부엉이'가 애창되었다. 남한강 강둑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겨울 물오리'를 소리 높여 부르기도 했다. 수업하는 아이들과 감자를 심으러 갈 때는 '씨감자'를 알려주었다. 단체로 문경새재 나들이를 간 적이 있었는데, 빨간 단풍잎이 떠다니던 계곡에 앉아 수십 명의 아이들과 '메아리'를 합창하던 추억은 지금 대학생이 된 애들도 기억한다.     




메아리     
이원수 시 / 백창우 곡     

언니야 언니야
큰소리로 부르면
산에서 그 누가
언니야 언니야     
엄마야 엄마야
큰소리로 부르면
산에서 그 누가
엄마야 엄마야  
   
내 목소리 흉내 내는 산속의 아이
흉내만 내지 말고 너도 불러 봐
내 이름은 순이야 한번 불러 봐
내 이름은 순이야 한번 불러 봐         

 

작곡가, 시인, 가수로 활동한 백창우 씨는 어린이 노래 팀 '굴렁쇠'를 만들어 정기 공연을 하고 있다. 2002년에 보림 출판사에서 <이문구 동시에 붙인 노래들>가 나왔고, 그 후에는 보리 출판사에서 권태응, 김용택, 아이들의 시에 곡을 붙인 <보리 어린이 노래마을>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었다.  지금 성인이 된 우리 딸들은 어릴 때부터 듣던 백창우 노래창고 시리즈 덕분에 좋은 시들을 노래로 기억한다. 특정 상황이 되거나 장소에 가면 자동적으로 이 노래들이 나온다.                                              

  

내 마음속에 저장~

큰애는 어린이집에서 얼굴에 상처가 나 돌아오는 동생을 보면 '자숙이가 놀다가 울고 들어왔다 누가 꼬집어서 울었을까(이문구 시, '울보 자숙이')'를 불러주었다. 한겨울 운동장에서 굴렁쇠를 굴리면서는 '굴렁쇠', 황토 천연염색을 해서 널 때는 '빨래', <강아지똥>을 읽고 나서는 '강아지똥', 시험 성적을 받아 온 날에는 '걱정이다, 걱정', 같은 반 개구쟁이를 이르면서 '문제아'를 불렀다. 우리 가족은 일 년에 한번 한여름밤의 별똥별 축제를 보러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 돗자리를 편다. 바닥에 누워  '산 너머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이문구 시, '산 너머 저쪽')'를 부르는 우리만의 의식을 이 아이들이 엄마가 되어서도 기억하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 CD와 함께 나온 이 시리즈는 우리 가족 추억의 애창곡이 되었고, 어른들과의 독서치료 수업에서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자극적인 가사를 흥얼거리고, 상품화된 아이돌 춤을 추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가족의 추억에 #과 b를 섞어준 이 노래들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저장~'이다.



상담심리사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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