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사에게 공감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정확하게 이해하되 매몰되지 않고 다시 빠져나올 수 있는 메타인지를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이 되어 남의 삶을 겪어보기로 했습니다.
JETSTREAM 볼펜이 되어보기로 했다.
나는 uni 0.7 검은색이다. 부드럽게 잘 빠진 플라스틱 몸에는 미끄러짐 방지용 고무가 붙어 있다. 문방구에 꽂혀있던 빨강, 파란색과 함께 왔는데 주인 모모는 나만 편애한다. 나는 모모의 가방 한 귀퉁이, 필통, 숄더백, 호주머니 등 여기저기로 옮겨진다. 조용한 방이나 시끄러운 지하철 어디든 나는 잘 적응하는 편이다. 왜냐면 주인장이 나를 안심시켜주어 나름 안정 애착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가끔 똑같은 녀석들과 마주칠 때가 있었다. 모모가 좋아하는 슈퍼바이저 선생님의 볼펜도 같은 나와 같은 모델이라서 순간 묘한 뿌듯함과 연대감을 느꼈다.
주인장 모모가 나를 꼭 쥐고 써줄 때는 최대한 부드럽게 내 진액을 내보내려고 애를 쓴다. 대충 알아볼 정도로 휘갈겨 쓰는 필체라서 진액이 종이에 잘 스며들도록 조절을 해야 한다. 연필꽂이에 있던 다른 녀석들이 똥을 마구 싸대는 바람에 분리수거함으로 직행하는 것을 본 이후부터는 더 긴장하고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똥을 참으며 깔끔하고 부드러운 선을 그리도록 돕는다. 모모의 작업을 위해서라면 속이 비는 그날까지 똥을 참을 수 있다. 나의 변비는 모모의 행복이니까...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SARASA와 양다리를 걸치던 모모가 나를 더 아끼기 시작했다. 나를 인정해준 것이다! 오, 마이 갓. 어느덧 내 진액이 떨어져간다. 새로운 부속품이 들어와도 모모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을 안다. 알뜰한 모모니까. 난 그 애를 잘 다독여서 최대한 부드럽고 적당한 굵기의 필체를 선보일 것이다. 오늘 밤에도 똥을 잘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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