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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의달빛정원 Jun 28. 2018

[사물체험 놀이]#3  내공 있는 의자

상담심리사에게 공감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정확하게 이해하되 매몰되지 않고 다시 빠져나올 수 있는 메타인지를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이 되어 남의 삶을 겪어보기로 했습니다.



의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나는 "넘버 원"이다. (넘버 원이었다.) 투박하고 푹신한 맛은 없지만 오랜 시간 동안 모모와 애기똥풀 아이들을 품어주었다. 똑같이 생긴 녀석들이 6개나 있지만 모모는 꼭 나를 선택하기 때문에 내 콧대는 하늘을 찔렀다. 가끔 만나는 아이들은 저마다 품는 맛이 달랐다. 맨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쭉 벋는 아이, 내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플라스틱 받침을 깨 버리는 아이, 벌받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앉는 아이들은 무난한 A급이다. 너무 세게 흔들다가 뒤로 꽈당 넘어지는 아이와 뒤로 돌려 앉아 쉴 새 없이 떠드는 B급도 눈 한번 딱 감으면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엉덩이를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다가 방귀를 뀌는 녀석은 ... 으... C급에 넣어주겠다.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므로 그것까지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D 급! 언젠가 개구쟁이 한 녀석이 수업을 하다가 손가락을 내려 내 몸통에 쓱 닦는 거다. 그것도 나의 가장 부드럽고 매끄러운 받침대를 말이다. 아뿔싸. 시간이 지나면서 딱딱하게 굳어지는 그것은 ~ 그것은~ 바로 코딱지였던 것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모모가 정성스레 소독하고 닦아주었지만 으~ 그때 일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내 몸에 세균이 붙어있는 것 같아 몸이 배배 꼬인다.

이런 시시콜콜한 사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어 잊혀진다. 플라스틱 받침대가 없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괜찮고, 귀퉁이가 조금씩 긁히는 것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 줄 수 있다. 흠흠... 나도 그 정도는 된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자꾸 신경 쓰이는 녀석이 있다. 5미터 전방 11시 방향, 책장 옆 갈색 가죽의자. 저 녀석은 모모네 일터에 온 지 3년이 넘은 하얀 인조 대리석 책상과 세트다. 사실 들어올 때부터 견제하긴 했지만 나도 살아온 짠밥이 있기에 그렇게까지 의식하진 않았다. 모모가 그 녀석 위에 앉아 책을 읽던, 음악을 듣던 그러려니~ 넘겼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 센치해지고 모모를 독점하는 저 녀석이 신경 쓰인다. 내가 부드러운 스펀지라도 품고 있었다면, 책상과 세트 상품이었다면, 저 자리에서 늘 모모와 함께 있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내가 누구냐, 상담심리사 모모의 의자가 아니더냐! 불행의 시작은 남과의 비교에서 온다는 걸 안다. 저 녀석은 저 녀석의 삶이 있고, 난 이곳에서 내 역할을 하면 되는 거다. 비록 정해진 시간에만 모모를 앉히더라도 '지금-이 순간'에 만족하고 감사하자. 모모가 다가오면 최대한 내  자리를 곧게 펴서 함께 있는 시간이라도 편안하게 해 주자. 그리고 행복한 일은... 우하하하~ 모모가 나를 그려주고 있다.

11시 방향 갈색! 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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