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사에게 공감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정확하게 이해하되 매몰되지 않고 다시 빠져나올 수 있는 메타인지를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이 되어 남의 삶을 겪어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넘버 원"이다. (넘버 원이었다.) 투박하고 푹신한 맛은 없지만 오랜 시간 동안 모모와 애기똥풀 아이들을 품어주었다. 똑같이 생긴 녀석들이 6개나 있지만 모모는 꼭 나를 선택하기 때문에 내 콧대는 하늘을 찔렀다. 가끔 만나는 아이들은 저마다 품는 맛이 달랐다. 맨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쭉 벋는 아이, 내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플라스틱 받침을 깨 버리는 아이, 벌받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앉는 아이들은 무난한 A급이다. 너무 세게 흔들다가 뒤로 꽈당 넘어지는 아이와 뒤로 돌려 앉아 쉴 새 없이 떠드는 B급도 눈 한번 딱 감으면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엉덩이를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다가 방귀를 뀌는 녀석은 ... 으... C급에 넣어주겠다.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므로 그것까지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D 급! 언젠가 개구쟁이 한 녀석이 수업을 하다가 손가락을 내려 내 몸통에 쓱 닦는 거다. 그것도 나의 가장 부드럽고 매끄러운 받침대를 말이다. 아뿔싸. 시간이 지나면서 딱딱하게 굳어지는 그것은 ~ 그것은~ 바로 코딱지였던 것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모모가 정성스레 소독하고 닦아주었지만 으~ 그때 일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내 몸에 세균이 붙어있는 것 같아 몸이 배배 꼬인다.
이런 시시콜콜한 사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어 잊혀진다. 플라스틱 받침대가 없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괜찮고, 귀퉁이가 조금씩 긁히는 것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 줄 수 있다. 흠흠... 나도 그 정도는 된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자꾸 신경 쓰이는 녀석이 있다. 5미터 전방 11시 방향, 책장 옆 갈색 가죽의자. 저 녀석은 모모네 일터에 온 지 3년이 넘은 하얀 인조 대리석 책상과 세트다. 사실 들어올 때부터 견제하긴 했지만 나도 살아온 짠밥이 있기에 그렇게까지 의식하진 않았다. 모모가 그 녀석 위에 앉아 책을 읽던, 음악을 듣던 그러려니~ 넘겼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 센치해지고 모모를 독점하는 저 녀석이 신경 쓰인다. 내가 부드러운 스펀지라도 품고 있었다면, 책상과 세트 상품이었다면, 저 자리에서 늘 모모와 함께 있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내가 누구냐, 상담심리사 모모의 의자가 아니더냐! 불행의 시작은 남과의 비교에서 온다는 걸 안다. 저 녀석은 저 녀석의 삶이 있고, 난 이곳에서 내 역할을 하면 되는 거다. 비록 정해진 시간에만 모모를 앉히더라도 '지금-이 순간'에 만족하고 감사하자. 모모가 다가오면 최대한 내 자리를 곧게 펴서 함께 있는 시간이라도 편안하게 해 주자. 그리고 행복한 일은... 우하하하~ 모모가 나를 그려주고 있다.
11시 방향 갈색! 보고 있나?
#네이버블로그: 모모의 심리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