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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의달빛정원 Mar 25. 2018

독서치료 #6  너에게 묻는다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

교사와 상담심리사를 위한 독서치료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 / 사노 요코 / 시공주니어

                        

아이들이 어릴 때 놀다가 다쳐서 울면서 들어오면 버럭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럴 땐 먼저 안아주고 달래주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무릎에 고인 피를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 배운 대로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아이가 다쳐서 아플까 봐 속상하고 슬픈 것이었다.

 이런 화, 무기력감, 분노, 절망 등은 핵심 정서가 아니다. 슬픔이나 비탄, 수치심과 같은 일차적 정서(primary emotion)를 피하기 위한 이차적 정서(secondary emotion)에 속한다. 사람들은 슬픔을 피하기 위해 화를 내고, 분노를 피하기 위해 두려워할 수도 있다. 우울과 불안 역시 슬픔이나 절망, 상실, 위협감에 대한 이차적인 반응일 경우가 흔하다. 중요한 사람에 대한 해결되지 못한 일차적 분노가 깔려 있는 사람들은 흔히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반응에 민감해지게 된다. 따라서 치료자는 내담자의 신체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여 자신의 정서를 회피하지 않고 알아차리도록 하여 보이지 않는 이면의 좌절된 욕구와 소망을 언어로 상징화하여 표현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내담자는 이전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하거나 불안과 수치심에 휩싸이지 않으면서 자기를 진정시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지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런 정서적 작업을 정서 지향적 치료(emotionally focused therapy: EFT)라고 한다.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의 주인공 아저씨는 늘 불만이 많고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낸다. 사노 요코의 그림책 <백만 번 산 고양이>의 주인공처럼 아저씨 역시 까칠하다. 아저씨는 집 근처의 커다란 나무 덕분에 열매를 얻고 빨랫줄과 그물 침대를 걸어 그늘에서 쉴 수도 있지만 고마움을 모른다. 커다란 나무가 주는 혜택을 다 누리면서도 투덜거릴 뿐이다. 새똥과 애벌레, 눈덩이에 화를 내며 수시로 걷어찬다.
                                                  

두고 보자! 이 몹쓸 나무     
                                                                      

아저씨의 삶의 질은 커다란 나무를 베어 버리고 나서 급격히 떨어진다. 아침이 와도 모르고 계절이 바뀌어도 알 수가 없다. 낮잠을 잘 수도 없고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 그제야 아저씨는 커다란 나무를 그리워하며 통곡을 한다. 자신의 핵심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저씨에게는 정서 지향적 치료가 필요하다. 왜 아저씨는 모든 상황에 감사를 모르고 화를 내는 부적응적인 패턴을 갖게 되었을까. 그 이면의 핵심 정서는 무엇이고 좌절된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통곡하는 아저씨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큰 좌절을 경험하거나, 타인에게 무시를 당했을 때 우리는 불안, 우울, 슬픔, 분노, 죄책감, 수치심 같은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것을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부른다. 아저씨는 슬픔(일차적 정서)을 피하기 위해 화(이차적 정서)를 내고 있다. 또한 그에 따른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문제의 초점이나 대상을 바꾸는 전치(displacement)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가족이 없어서 외로운가 봐요.
엄마, 아빠가 늘 화를 내던 사람이었을 거예요.
친구가 없어서 외롭기 때문이에요.
다른 방법을 잘 모르나 봐요.
성질이 더러워서 그래요.


아저씨가 상담 장면에 나온다면 어떨까. 먼저 따뜻하고 공감적인 환경을 제공하여 신뢰감(Rapport)을 형성하고 어린 시절 누리지 못한 애착의 재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 과제일 것이다. 아저씨가 화를 낼 때마다 느껴지는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여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느낌이나 정서를 언어로 상징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저씨의 주된 정서인 분노와 화 밑에 깊이 숨겨진 상처를 인식하고, 좌절된 욕구와 소망을 표현하도록 하여 '적응적인 정서조절'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게 될 것이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일부분을 패러디하여 아이들이 느끼고 있는 불편한 정서를 표현하고 해소시키는 독서치료 활동을 해 보았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원작)

                          

아저씨에게 묻는다 / 커다란 나무

내 몸뚱이 함부로 걷어차지 마라
아저씨는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 존재인지
한 번이라도 고마워한 적이 있었느냐       (아저씨 입장)

                                                               

커다란 나무에게 묻는다 / 아저씨

내가 너를 걷어차고 잘랐다고
함부로 나를 쓰레기 취급하지는 마라
나무 너는 내가 얼마나 외롭게 지내는지
한 번이라도 공감해준 적이 있었느냐      (커다란 나무 입장)     

                                                                                         

엄마에게 묻는다 / 이 OO

내 엉덩이 함부로 걷어차지 마라
엄마는 나에게 한 번이라도 친절한 적이 있었느냐    (학생글)           

                                                                                                            

언니에게 묻는다 / 김 OO

내 화장품 함부로 쓰지 마라
언니는 나에게 한 번이라도 틴트를 빌려 준 적이 있었느냐    (학생글)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 / 저자 사노 요코 / 시공주니어 / 2004.09.20.             


모모의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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