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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유 Oct 05. 2024

[10]

착실하게 군생활을 마치고 복학을 했다. 기숙사는 순번에 밀려 당첨되지 않아 자취를 해야만 했다. 학교 옆에 방을 구하고 짐을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형도 자취를 하고 싶다며 함께 살기를 제안했다. 형과 함께라면 자잘한 집안일은 부지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호기롭게 시작한 자취생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의 청결함을 잃어 갔다. 두 명이 누우면 적당히 굴러 다닐만한 방 한 칸에 먼지가 얼마나 자주 쌓이는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쌓여가는 먼지에 익숙해지던 나와 달리 형은 여유가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청소를 했다. 나 역시 미안한 마음에 형이 없는 틈을 타서 열심히 청소를 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까지는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다.


처음 몇 주 동안 형은 주말에 본가인 안양에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음식을 챙겨 왔고 우리 집의 작은 냉장고는 반찬통으로 가득했다. 냉장고에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반찬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밥상을 차려 같이 밥을 먹을 때면 형은 언제나 내가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양보해 주었다. 집에서 많이 먹고 왔다며 나에게 많이 먹으라고 했다. 식당에서 사 먹는 밥은 아무리 맛이 좋아도 집밥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 음식이 많이 생각났지만, 군대까지 다녀온 아들이 끼니도 제때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실토할 수는 없었다. 형이 많이 챙겨주어서 부족함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말로 안부를 전할 뿐이었다. 한 편으로는 형의 어머니께서 형을 위해 준비해 주신 음식일 텐데, 내가 이렇게 먹어도 되는가에 대한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어디까지나 음식을 먹기 전까지의 죄송한 마음이었을 뿐, 음식을 입 안으로 넣는 순간 죄송함이 감사함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때는 그냥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은 형도 배가 많이 고팠을 것이다. 다만 한식을 좋아하는 나를 더 신경 써 준 것 같다. 둘 만의 식사가 끝나면 괜히 아쉬워 소주를 찾았다. 술이 들어가니 긴장이 더 풀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주말이 금세 지나갔다.


외로운 주말에 적응이 되어 갈 즈음에, 형이 집으로 오는 시간이 조금씩 빨라졌다. 일요일 아침 일찍 오는가 하면, 토요일 점심시간에 맞춰서 반찬을 가득 들고 오는 일도 있었다. 형은 혼자 있을 내가 걱정이 되어 그런다고 했고, 시골에서 자란 나는 아침을 거른 적이 없기에 굶고 있을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는다고 했다. 때로는 주말에 형과 형의 친구들이 만든 축구동호회에 데려가서 운동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회식에도 참여하여 저녁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불안하기만 했던 자취생활이 형의 크나큰 도움으로 안정적인 생활이 될 수 있었고, 부모님께서도 형의 이름만 들으시면 큰 걱정 없이 안심을 하셨다.


형은 야간 피자가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직접 피자를 만들어서 가져오기도 했고, 다양한 샐러드를 챙겨 와 배를 채워 주었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은 형이 챙겨 온 음식들이 모두 형이 결재를 하고 가져온 것이었다. 당연히 적당히 남은 재료와 음식들을 포장해 온 것으로 생각하고 배를 채우기 급급했던 나는 굉장히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형을 더 끔찍이 아끼고 형제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일들이 있고, 이런 경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훨씬 더 거대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수업을 마친 오후에 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서 손수 반찬을 가지고 학교에 오신다는 소식이었다. 다행히 깨끗하지 못한 집으로 오시지는 않고, 학교 근처에서 뵙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형이 더 많이 먹어야 할 반찬을 거의 다 먹어 치우고 있는 나는 당연히 인사를 드려야 했기에 시간에 맞춰서 꼭 같이 뵈어야 한다고 했다. 약속 장소에서 무쏘 차량을 타고 오신 형의 어머니를 처음 뵈었다. 형을 봐서는 여장부 같은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너그러움과 인자함이 넘치는 친근함 가득한 인상이셨다. 아들을 반기시는 미소는 아름다웠고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아우라는 주변의 모두를 물들일 만큼 맑고 깨끗했다. 자연스럽게도 여전히 소녀의 감성을 잃지 않고 밝은 에너지를 뿜어 내시는 내 어머니가 생각났다. 형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형이 내 얘기를 잘 한 덕분인지 어머니께서는 내 인사도 잘 받아주셨다. 반찬 맛이 괜찮은지 물어보시는 말에 연신 허리를 굽히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반찬을 건네주시고는 집으로 놀러 오라는 말씀을 하신 후 핸들을 돌려 멋스럽게 출발하셨다. 군더더기 없는 시원시원함 속에 세심함과 깊은 정이 느껴졌다. 형이 어머니의 마음을 닮으신 것 같았다. 형의 어머니를 처음 뵙는 순간이었다.


평일에는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 형과 나는 떨어져 있어도 자연스럽게 각자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둘 중에 누가 혼자 있기라도 하면 서로 연락하여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소주를 동반한 술자리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실 그때는 거의 매일 소주를 마셔댔다. 학교 행사도 많았고, 친구들과 약속도 많았다. 그때는 기억이 끊길 만큼 소주를 마셔도 다음 날 오전이면 말끔하게 회복되었다. 어쩌다 형과 둘이서 집에 있는 날이면 밤새 이야기를 하며 소주를 마셨다. 형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어디에서나 분위기를 주도했다. 유쾌하고 말도 재미있게 잘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등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불필요하게 수다스럽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약간의 고독과 외로움이 찾아오는 조용한 학교의 저녁은 각자가 평소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 놓기에 충분했다.


하루는 형과 집에서 적당히 반주를 마시고 일찍 누워 잠을 청했다. 애매한 취기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는데 형의 전화가 울렸다. 학교 고시반에 있던 형들이 수험 생활에 지쳤는지 형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소주를 마시자고 하는 것이었다. 형은 이때다 싶어서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했다. 사실 나는 최근에 너무 방탕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껴 책과 가까이 지내는 시간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간도 늦었고 속 마음을 관철시키고 싶은 마음에 형의 말에 단호히 거절을 했다. 형은 오기가 생겼는지 설득을 이어가다 막바지는 거의 사정하다시피 했지만 나는 끝까지 거절했다. 형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원치 않는 술자리에 끌려다니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그날 새벽에 형은 거나하게 취해서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선잠이 들어있던 나는 형이 왔음을 알고 나서야 안심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데 이 사건이 형에게는 두고두고 서운한 감정으로 남게 된다.


하루는 저녁을 해 먹을 심산으로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사 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대부분 안주 거리만 골라서 사 온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소주와 함께 수다를 떨었는데 형이 잘 꺼내지 않는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형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는데 추운 날씨에 커다란 온탕에는 문신을 한 험악해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형은 겁이 나서 온탕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는 거침없이 탕으로 들어가신 후 형을 부르셨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피로를 녹이시는 아버지 옆에서 몸을 녹였다. 더욱이 무시무시한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아버지의 모습에 깜짝 놀랐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정직 공무원의 특성상 문신을 한 분들이 익숙하신 것도 있겠지만 형은 그때 아버지라는 거대함에 놀랐고 존경스러웠다고 했다.


또 한 번은 형이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머니의 배 속에 형이 있었고,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리시던 어머니께서 밖에 마중을 나가셨다. 그런데 저 건너편에서 어머니를 쳐다보는 낯선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자꾸만 어머니를 쳐다보며 가까이 걸어왔고 이상하게 느낀 어머니는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어머니의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점점 더 남자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음에 어머니는 심각한 상황임을 느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파트 계단을 걸어 2층까지 올라 집으로 가서 문을 잠갔다. 간발의 차이로 뒤따라온 낯선 남자가 주변을 계속 서성이고 있었고 심지어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려보기도 했다. 만약 당시의 집이 2층이 아니라서 엘리베이터를 더 기다려야 했다면 맞닥뜨린 낯선 남자로부터 무슨 해를 입었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형은 할아버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산소에 모시던 날. 모두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새 하얀 나비가 날아왔다. 나비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위를 날아다니며 장례 절차를 모두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적당히 날아다니다 도망을 갈 법한데도 계속 주위를 맴돌자 가족들 모두 할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시려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밤이 짧게 느껴지기도 했고, 어느새 잠이 들어 코 고는 소리에 혼자만 떠들고 있음을 자각하기도 했다.


어느덧 한 학기가 지나고 방학이 되어 나는 시골로 내려가야 했다. 형과 떨어져서 지내게 되는 것이 내심 서운했지만 시골에 있는 가족이 너무 보고 싶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며칠 후, 나는 짐을 정리해서 시골에 보내고 형과 함께 식사를 한 후 기차역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형은 감사하게도 무쏘를 운전해 와서 내 짐을 우체국까지 옮기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차를 타고 신호를 기다리는 도중에 갑자기 반대편에서 오던 커다란 트럭에 설치된 철문이 열려 우리가 타고 있던 차의 앞유리를 강하게 때렸다. 다행히 유리가 깨지지는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깨질 듯 금이 간 유리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우리를 지나친 트럭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고, 형은 놀란 가슴을 뒤로하고 트럭을 뒤쫓기 시작했다.


"꽉 잡아라. 알았지."


트럭을 쫓아가며 경적을 계속 울렸지만 트럭은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어 보였고 나는 난생처음 경찰에 신고하여 차량 번호를 알렸다. 한참을 달려 어딘가 외진 곳으로 들어가 주차하는 트럭을 확인했다. 막상 내려서 대면하려니 겁이 났지만 형은 거침이 없었다. 형은 나에게 큰길에서 기다리다 경찰차가 오면 같이 오라고 했고, 형은 트럭에서 내린 운전자를 쫓았다. 얼마 뒤 택시가 우리를 뒤쫓아 왔고, 트럭을 잡았느냐고 물어보셨다. 사고 현장을 목격하셨다가 걱정이 되어 뒤쫓아 오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경찰이 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 주셨는데 참으로 감사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형이 보였고, 트럭 운전사를 보니 외국인 같다고 했다. 곧이어 경찰차가 왔고, 트럭 운전기사를 만났는데 한국말을 잘하는 한국사람이었다. 운전기사는 라디오를 켜놔서 경적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 길로 모두 다 난생처음 경찰서를 갔고, 처벌을 원하냐는 질문에 형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와 통화를 한 형은 집 근처 공업사에서 차를 수리하기로 했고, 차량 보상만 제대로 해 주면 좋겠다고 의사를 전했다. 그 와중에도 형은 내 기차 시간을 염려하며 아직 시간이 있으니 최대한 서둘러 보자고 했다.


결국 갑작스러운 사고로 기차는 몇 시간 뒤로 미뤘다. 형과 떨어지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인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는 하지도 못했고 겨우 우체국만 들렀다가 헤어졌다. 지금도 왜 그렇게 큰 트럭과 사고가 났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차선을 잘 지켰고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트럭은 왜 누가 봐도 불안해 보이는 철문을 달았을까. 왜 하필 그날 철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을까.

형에게 언제나 교통사고를 조심하라는 신의 메시지였을까. 아니면 사람을 잘 챙기고 리더십 강한 형을 급하게 등용할 필요가 있어 조금 일찍 데려가겠다는 사전 메시지였을까.


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학교에서 형은 방학 중에 자취방에서 지내며 주말 야간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안개가 심한 어느 늦은 시간에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던 중에 자동차와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는 어머니만 알고 계셨기에 교통사고 경위도 아버지께는 모두 다 말씀드리지는 못했다고 했다. 형은 입원 후 금방 일어났고 거의 다 회복되어 지금은 괜찮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강철 같은 형은 무슨 일이든 금방 이겨내고 회복했기에 다행으로 생각했다.

지금에야 다시 생각해 보니 형은 알게 모르게 교통사고와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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