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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유 Oct 06. 2024

[11]

형님은 장례식장을 급하게 구하느라 장소가 협소하다고 사과를 하셨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머리만 복잡할 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장례식장을 차마 떠날 수 없어 형의 사진이 보이는 가까운 복도에 멍하게 앉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본다.


한바탕 눈물을 흘렸지만 조문객이 많아질수록 들려오는 통곡 소리에 다시금 눈물이 흐른다. 감각이 둔해져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 눈물이 스스로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오후가 되자 학교 선후배들이 드나든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이 닿았나 보다. 떠나가는 길에 그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들 실컷 보라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가까이 지냈던 선후배들이 보이는데 아는 체를 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는 체를 할 만큼의 정신도 없거니와, 떠오르는 형의 기억들로 가득 차버린 마음에 다른 사람을 마주 할 공간이 없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형의 친구들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온다. 누가 말 할 것도 없이 끌어안고 흐느낀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하냐, 그 튼튼하던 애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요, 말이 안 됩니다 정말..."


그리고 사고 경위를 전해 듣는다.

친구의 개업식이 있었고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이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다. 늦은 새벽 시간에 형은 친구 집에서 잠을 자기로 하고 택시를 잡아 친구와 함께 이동했다. 친구는 아내와 아이가 있었는데, 막상 집에 들어가니 실례라고 느낀 형은 극구 괜찮다고 하며 걱정 말라는 말을 남기고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한두 시간 후에 횡단보도가 없는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려다 달려오는 택시에 치어서 1차로 쓰러졌다. 택시는 차선을 옮겨 형이 쓰러진 차선의 옆 차선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얼마 다른 차량이 쓰러져 있던 형과 2차로 충돌했다. 급하게 병원으로 옮겼지만, 형은 이미 현장에서 사망했다. 개업식에서 형의 핸드폰과 다른 사람의 핸드폰이 서로 바뀌는 바람에 신원 확인이 늦어졌고, 사고 차량이 두 대 이기 때문에 부검을 해야 하기에 발인이 하루 늦어진다고 한다. 경찰을 통해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했고 형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고 설명을 해 준다. 다시 한번 숨이 턱 막힌다.


얼마나 아팠을까. 두 번째 충돌이 없었다면 살 수 있었을까. 왜 택시는 차선을 바꿔서 차를 세웠을까. 왜 빨리 내려서 뒤 따라오는 차에게 경고하지 않았을까.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끊이지 않는 의문에 원망의 대상을 찾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얼마 후 형의 동기들이 왔다. 학교에서 형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선배들을 보니 형의 조각들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복도에 멍하게 있던 나를 먼저 알아보고 이쪽으로 오신다.


"동근아, 가자."


이 한 마디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형과 나의 각별한 사이를 잘 알고 있는 선배들 이기에 내가 받은 충격을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말도 없이 선배들을 따라 걷는다. 병원 밖으로 나가니 코를 찌르는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나를 감싼다. 장례식장 주변에 형과 인연이 있었던 학교 선후배들이 많이 보인다. 나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눈에 초점이 없어 사람을 쳐다보는데도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눌 뿐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제와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별은 반짝이고 수많은 간판들에 불이 들어와 있다.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들이 밝게 웃으며 서로에게 기댄다. 내 안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는데 바깥세상은 여전히 평온하다.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많아서 식사가 어려워 근처 국밥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횡단보도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셀 수 없이 수많은 세상을 본 것만 같다. 왜 세상은 형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세상인가.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원망의 대상을 찾고 있는 나를 느낀다.


텅 빈 국밥집 구석에 앉는다. 전해 들은 형의 사고 경위를 선배들에게 설명한다. 형들 역시 같은 의문을 갖고 화를 억누른다. 벌겋게 변한 눈을 하고선 국밥이 나올 때까지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 형이 있었다면 무슨 얘기든 나누면서 조금은 힘이 났을 텐데. 형이 없는 순간에 형을 찾고 있다. 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쓰디쓴 잔을 비우며 형을 떠올렸다.


다음 날 형의 카페를 찾았다. 꺼진 조명은 형이 문을 열고 들어와 켜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굳게 닫힌 문은 금방이라도 열려서 어서 오라며 형이 반겨줄 것만 같은데 너무도 고요하기만 한 이 순간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렵다. 바로 앞에 있는 빵집 사장님이 나오시더니 카페를 슬쩍 보고 들어가신다. 미용실 사장님도 빗자루를 들고 나오셔서 깨끗한 길에 괜히 빗질을 하고선 카페를 쓱 훔쳐보시더니 이내 들어가신다. 잔뜩 들뜬 얼굴로 카페를 향해서 뛰어오는 사람들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린다. 혼자 왔다가 놀란 얼굴로 돌아가는 손님, 두 명 세 명 짝을 지어서 왔다가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쉬이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카페 앞에서 형의 온기를 찾고 있는데 근심 걱정이 가득한 얼굴의 아주머니 한 분이 깜깜한 카페 앞에 선다.


"아니, 찾아오는 손님도 많은데 왜 며칠째 문을 안 열어. 주변 상가 사장님들도 다 걱정하고 있는데."


"아... 누구... 신지..."


"이 카페 사장님 아세요? 저는 카페 건물주예요. 이 총각이 일도 열심히 하고 주변 사장님들하고도 잘 지내는데 걱정이 되어서요."


아주머니는 쉬는 날도 아닌데 카페가 문을 열지 않는다며 형이 걱정되어서 어제부터 여러 차례 카페에 다녀가셨다고 한다. 주변 상가 사장님들도 전혀 소식을 몰라 걱정이 많으며, 카페에 왔다가 돌아가는 손님들을 수 차례 봤다고 하신다. 나는 형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드렸다.


"아이고 세상에, 착실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을 왜 데려갔대. 결혼도 안 한 총각인데 어쩜 좋아."


형은 주변 상권의 사장님들과도 잘 지냈던 모양이다. 주변 사장님들은 알게 모르게 무슨 일이 있으면 형을 많이 찾으셨을 것이고 믿음직스럽다며 이것저것 챙겨주셨을 것이다.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은 화해를 시키고, 소외된다 싶은 사람은 외롭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 사람을 돕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 형이 카페를 운영하며 어떻게 생활했을지가 눈에 보여 또다시 눈물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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