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아빠를 쏙 빼닮으면 부자간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가족분들을 향해 고개를 든 순간, 잠깐이었지만 형의 얼굴이 보였다. 형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너무 닮아서 두 분이 사이가 좋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기어코 억누르셨던 눈물인데 나 때문에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신다. 예의를 갖추려고 눈을 닦아 보지만 자꾸만 쏟아지는 눈물과 콧물을 미처 다 닦아내지 못한다. 일렁이는 눈앞에 어렴풋이 보이는 형의 가족이 참 따듯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형의 빈자리가 눈에 띈다. 형이 있어야만 하는데 없다.
어머니께서 얼굴을 감싸고 울고 계신다. 오래전에 어머님을 한번 뵌 적이 있는데 나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아버지께서는 얼굴을 훔치시며 고개를 돌리시지만 흐르는 눈물은 가려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해진 아버지의 어깨가 소리 없이 들썩인다.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절망 섞인 극도의 감정을 꾹 꾹 눌러가며 이를 악 물고 참아내고 계신다.
형의 동생이 나를 알아보셨다.
"동근 씨, 맞으시죠...?"
그 말에 어머니께서도 나를 알아보신 것 같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 수 없는지 오래, 지키려던 예의는 온데간데없이 통곡의 소리만 가득하다. 모두가 울고만 있는 순간에 아버지를 한 번 더 올려다본다. 형이 아버지의 나이쯤 되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한번 형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형을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버지를 향해 한 걸음 옮겨 무슨 말인지 온전히 알아듣기 힘든 울먹이는 목소리로 통곡하며 말한다.
"아버지 손 한 번만 잡아봐도 되겠습니까. 이젠... 형의 손을 잡을 수 없으니까요..."
너무도 빼닮은 부자이기에 아버지의 손을 잡으면 곧 형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선뜻 내어주신 두 손을 맞잡고 형을 떠올림과 동시에 말 없는 위로를 드린다. 형과 마주 한 것처럼 가슴이 뛴다. 사실 형의 손을 잡아본 기억은 없다. 옆에서 걷거나 내가 뒤에서 따라가거나, 마주 보고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어느 더운 날, 큰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형의 팔 근육을 구경 삼아 만져본 기억은 있다. 정말 단단하고 탄탄해서 내 한 손바닥에 잡히질 않았다. 형은 괜히 쑥스러워하면서 군대 가면 다들 이런 몸이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막상 군대에 다녀와 보니 다 그런 건 아니었다. 형은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튼튼한 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손은 크고 두꺼웠다. 직접 잡아본 적은 없지만 형의 손 역시 아버지 손을 쏙 빼닮았을 것이다.
아버지와 꼭 잡은 두 손 위로 통곡하시는 신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쓴다. 눈을 질끈 감아 눈물을 잘라내고 형을 보고자 아버지를 본다. 형이 맞다. 그리고 형의 아버지가 맞다. 세상에 이보다 더 슬픈 얼굴이 있을 수 있을까. 아버지에게 원통함과 분함, 그리고 후회와 회한이 보인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후회, 너무 강하게만 대했던 순간들, 온전히 믿고 응원하지 못했던 모든 일들을 자책하고 계신 것만 같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시는 모습도 보인다. 남아있은 가족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버티고 계신 것이리라 생각한다. 아버지께 형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인다. 가족들에게 울지 말라고 하시지만 그 말씀에 신음소리가 다시 통곡으로 바뀌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와 두 손을 꼭 잡았다.
"동근이구나,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는구나, 너무 원통하다."
잘라냈던 눈물이 다시 쏟아져 나온다.
"오래전에 어머니께서 반찬 가져다주실 때 뵌 적이 있어요."
인사를 나누자 어머니께서 나를 꼭 끌어안아 주신다. 세상에나, 이렇게 가녀린 몸으로 그렇게 큰 아들을 키워내셨으니 얼마나 뿌듯하시고 자랑스러우셨을지 알 것만 같다. 어디에 내어 놔도 부끄럽지 않은 큰 아들을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잃어버렸다. 작고 여린 그 안에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끓어 넘쳐 쏟아지고 있다. 평생을 짊어져야 할 고통, 스스로 감당해야만 하는 슬픔과 분노가 길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부르르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고 계시는 것이 느껴진다. 세상의 전부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감히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나에게 남아있을지 모를 형의 기운을 아버지, 어머니께서 조금이라도 느끼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번은 형이 부모님과 함께 동생 집에 갔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카와 장난을 치며 놀아주는데 제수씨가 보기에 아이가 형을 너무 힘들게 했는지, 제수씨가 아이를 나무라며 아주버님 죄송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형은 괜찮다며 더 많이 놀아주었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들을 키우는 제수씨가 정말 대단하고 고생이 많다는 얘기를 했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조카가 너무 귀엽고, 형의 아버지도 많이 닮아 부모님께서 좋아하신다고 했다. 아이를 보니 그때 흐뭇해하던 형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이는 형의 넓은 등을 올라타며 관심을 보이고, 한 가족임을 느꼈을 것이다. 형은 동생 가족이 자랑스러웠을 것이고,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마음이 따듯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형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 테다. 형은 큰 아들이자, 형이고, 아주버님이고 삼촌인데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 없다. 모두가 형의 모습을 기억에서 떠올려 내야만 한다. 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었다.
손과 발이 떨리고 숨소리도 덜덜거려 나 스스로가 버겁다. 형의 동생께서 잠시 앉으시라며 자리를 안내해 주신다. 숨을 고르고 눈물을 닦아 정신을 차려보려 한다. 어느새 소주를 한잔 가득 담아서 건네주신다. 내가 위로를 해 드려야 하는데 염치없게도 위로를 받고 있는 모양새다. 내가 대학 새내기이던 시절, 주말에 형의 초대로 형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형의 동생을 처음 뵈었는데 그 이후로 거의 15년 만에 뵙는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시기에 형님으로 대했고, 형에 대한 얘기를 잠깐 나누었다.
형은 동생과 티격 태격 하던 일들을 나에게 곧 잘 얘기하곤 했다. 내가 듣기엔 피를 나눈 형제이기에 노파심에 한 얘기가 조금은 거칠어져 감정이 상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형은 언제나 말미에 그래도 동생은 자기 할 일을 잘하고 있다며 뿌듯하게 생각했다. 형님께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셨을 때, 마치 형이 합격한 것처럼 좋아하시며 나에게 자랑하시던 이야기. 서로 약간의 감정이 상했던 대화를 하시더라도 말미에는 언제나 동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음을 말씀드렸다. 두 형제 사이에 오해가 없도록 이 사실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다. 내가 아는 한, 형은 누구보다도 동생을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얼마 전에 형이 예쁜 여성분을 소개받아 조심스럽게 연락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마 형 성격에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것만 같아서 이 이야기도 전해 드렸다. 내가 결혼할 때 신혼여행 가서 쓰라며 환전까지 해서 달러로 직접 건네주셨던 일, 학교 다니면서 형과 같이 자취하던 시절에 형이 반찬을 많이 챙겨주었던 일도 절대 잊지 못한다며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여전히 덜덜 떨리는 몸과 호흡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할 것만 같다. 언젠가 형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