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좋은 인연을 만나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형에게 전했다. 형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서도 제수씨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서두른 것은 아닌지, 나를 잘 챙겨주는지 이것저것 물으며 검증을 했다. 형이 나에게 자주 하는 얘기가 예민하고 까칠해서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세심한 아내를 만나야 한다는 얘기를 종종 했었다. 혹시라도 나를 힘들게 하면 집으로 찾아가서 제수씨를 혼내주겠다는 농담으로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 주었다.
공교롭게도 다른 선배도 나와 같은 날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형에게 서운한 마음을 감추며 축하의 마음만 받겠다고 했다. 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동근이 결혼식인데 형이 가야지!"
"우와! 정말요?"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형이 내 결혼식에 와 주길 바랐다. 내 아내와 부모님에게 형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에 멋지게 차려입은 형이 왔다. 어머니께서는 형에게 말씀 많이 들었다며 나를 잘 돌봐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갑작스레 당황한 형은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부모님께서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셨기에 본인은 특별히 한 것이 없다고 했다. 잠깐 사이에 오간 대화에서 깊은 정이 느껴졌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와도 같은 형이 정이 묻어나는 대화를 나누니 어깨가 으쓱했다. 얼마 후 형은 조용히 나에게 와서 축의금을 따로 받을 것인지 물어봤다. 당시의 순진한 나는 무슨 의미인 줄도 모르고 별다른 고민 없이 신랑 측에 넣어달라고 했다. 만약 지금이었다면 형에게 눈을 찡긋 하고선 주머니 한편에 넣어놨거나 친구에게 맡겨놨을지도 모른다. 형은 두툼한 봉투를 보이며 신혼여행 가서 편히 쓰도록 다양한 단위로 환전을 해 왔다고 했다. 축의금을 달러로 받았다는 얘기는 지금까지도 들어 본 적이 없다. 형 나름대로의 이벤트로 축하의 마음을 전한 것이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액수가 적지 않았다. 이 돈을 내가 어찌 사용할 수가 있었겠는가. 신혼여행길에 당연히 가져가지 않았고, 보물처럼 집 안의 가장 안전한 곳에 고이 모셔 두었다. 한동안 그 봉투를 볼 때마다 형의 마음 씀씀이에 괜히 뭉클했다.
결혼 후 어느 뜨거운 여름 복날에 형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형이 있는 안양의 유명한 삼계탕 집을 찾았으니 형을 모시러 가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전화 통화를 한 때부터 그날따라 형의 기분이 썩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복날이라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백숙의 크기도 작았다. 손님이 많으니 바로 앞에 있는 형과 대화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더운 날씨와 불친절함은 덤이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와 형을 집에 내려드리려는데 서로가 표현은 안 했지만 무척 아쉬운 상황이었다. 우물쭈물하던 나와 달리 형은 집에 들러서 시원한 수박이 있으니 먹고 가라고 했다.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툰 실력임에도 요리조리 유도를 봐준 형 덕으로 겨우 주차를 했다. 형은 냉장고에서 커다란 수박을 꺼내 먹기 좋게 잘라 주었다. 시원하고 달달한 수박을 한가득 베어 물고 더위를 식혔다. 형은 요즘 택배 일을 하고 있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지쳐있다는 근황을 얘기했다.
형이 단기간에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종을 알아보다가 택배 일을 하게 되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이 든다는 것이었다. 형처럼 튼튼한 사람이 이렇게 까지 힘들어한다는 것은 분명히 보통 고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까부터 형의 얼굴이 좋지 않았던 것은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서 그랬던 것 같다. 별다른 생각 없이 왔다가 하루 이틀 만에 그만두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새벽부터 출근해서 담당 구역의 물건을 챙겨 나와 저녁까지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고, 고객들의 독촉 문자가 상상 이상으로 많다고 한다. 형이 담당하는 지역은 아파트보다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가 많았고 좁은 골목과 계단을 뛰어다녀야만 하는 곳이었다. 특히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5층에 다량의 생수를 옮기는 날이면 진이 빠진다고 했다. 5층으로 올라가는 중에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집이 있는데 어떤 날은 그 개가 계단까지 나와서 으르렁대는 통에 곤란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덤벼드는 개를 방어하는 중에 개가 다치기라도 하면 시간이 더 지체될까 염려가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불미스러운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형은 몇 년만 고생해서 자금을 모아 사업을 할 계획임을 슬쩍 알려주었다. 아버지께서도 알고 계시지만 큰 아들로서 죄송한 마음에 아버지를 마주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고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형이 다칠까 염려를 많이 하시고, 형은 어머니께 아버지 몰래 파스를 붙여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에어컨도 켜지 않고 물건을 배달하시는 분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더운 날씨에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며 존경을 표하는 형에게 나는 에어컨을 꼭 틀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형은 풀파워로 틀고 있으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킨다.
몇 년 후에 형은 노량진에서 카페를 창업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창업의 소식도 좋았지만 더 이상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했고 기뻤다. 형의 카페에 첫 손님이 되고 싶은 욕심에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갔다. 아직 일부 공사가 진행 중에 있었고 형의 사촌 동생이 당분간 카페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고 한다. 카페에 필요한 것은 없는지 끈질기게 물어본 끝에 형은 계란 한 판을 사다 달라고 했다. 동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고, 마음을 거절할 수도 없으니 카페에서 사용할 재료인 계란을 부탁한 것이다. 카페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계란을 찾아다녔건만 보이지가 않았다. 결국 다시 형에게 빈 손으로 돌아갔고, 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같이 가자며 길을 나섰다. 형도 계란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며 조금 더 멀리 큰 길가로 나갔다. 큰 길가 모퉁이 쪽에 계란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곳이 있었고 계란을 사려는데 형은 괜찮다며 직접 계산을 했다. 계란을 파시는 할머니께 기어코 현금을 드린다. 할머니와 안면이 있으신 듯했는데 형이 카페 메뉴 만드는 연습을 하느라 계란을 자주 구입했던 것으로 보였다. 형은 카페 주변에서 지료들을 구입할 때 반드시 현금으로 계산한다고 했다. 그래야 사장님들의 굳은 얼굴에 조금이나마 환한 빛이 드리운다고.
카페를 준비하면서 여행 겸 공부를 위해 프랑스에 다녀온 형은 재미있는 일을 들려주었다. 점심시간 즈음에 방문한 한 카페에서 읽을 수 없는 메뉴판을 보며 두 가지 메뉴를 주문했다. 카페 사장님과는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지만 뭔가 잘 못 된 듯한 느낌의 반복된 말을 들었다. 강단이 있는 형은 아무 문제없는 듯이 일단 주문한 메뉴를 달라고 했고, 얼마 후 앞에 놓인 것은 우리나라 팥빙수와 비슷한 두 개의 디저트였다. 껄껄 웃은 나는 그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이어서 형은 허기가 져서 배를 채울 심산이었는데 결국 하나도 다 먹지도 못하고 케이크와 비슷한 메뉴를 추가로 주문했다는 것이었다. 카페 사장님은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예상한 듯했다. 디저트 메뉴를 공부한 셈 치고 비싼 값을 지불했다는 형의 말에 진짜 비싼 공부 하셨다며 맞장구를 쳤다. 케이크는 정말 맛있었다고 했다.
드디어 카페의 정식 오픈일이 되었다. 카페 매출도 올리고 홍보도 할 겸 퇴근 후 동료들과 함께 형을 찾았다. 내심 동료들 각자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다.
형은 우리가 주문한 메뉴를 뚝딱 만들어 주었고 맛있게 드시라고 하며 형의 두 번째 특유의 표정을 지었다. 양쪽 입 꼬리가 동시에 올라가면서 양쪽 눈꼬리가 아주 살짝 쳐지는 미소, 눈보다는 입이 더 많이 웃어 보이는 얼굴이다. 두 번째 특유의 표정이 나오면 곧이어 고개를 숙여 땅을 한번 본다. 역시 이번에도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춘다. 기분이 좋은데 괜히 쑥스러울 때 나오는 표정과 행동이다. 후배의 동료들이 반가워서였을까, 손님을 대하는 마음에서였을까. 아니면 정성을 다해서 만든 음식을 내어놓는 뿌듯함이었을까.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을 내어놓는 매 순간들이 행복했을 형에게는 모두 다 해당되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형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애써 못 본 척하며 큰소리로 감사하다고 했다.
적당히 소란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동료들에게 형은 내가 일을 잘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동료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일을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좋으니 가까이 지내도 괜찮을 거라고 했다. 애초에 내가 일을 잘하는지는 관심 밖이었을 테다. 물에 내어놓은 자식 걱정 하듯, 일이 서툴더라도 잘 봐달라는 뜻이었다. 동생에 대해 할 말은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기에 근질근질한 입을 참아내며 적당히 자랑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 눈치 빠른 동료들은 나를 치켜세워주며 형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주었다.
한바탕 웃음소리가 지나가고 난 후에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형이 보였다. 분주하게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는데 손놀림은 아기를 대하듯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약간 들뜬 기분과 함께 연신 미소를 내뿜는 형을 보며 배달 주문이 들어왔나 생각하던 중에 우리에게 커다란 케이크 두 접시를 내어 주셨다. 4명인 우리가 먹기에도 충분히 많은 양이었다. 한눈에 봐도 크고 화려해서 상당히 비싸 보이는 케이크에 깜짝 놀란 동료들은 주문한 메뉴가 아니라고 했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10개든 100개든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다는듯한 얼굴의 형은 새로 판매 예정인 메뉴이고, 처음으로 손님들에게 내놓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서비스'임을 강조하면서 동료들을 안심시켰고 맛 평가를 요청했다. 동료들은 환호와 박수로 이번에는 내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주었다. 형과 나는 마주친 눈을 찡긋 하며 서로의 고마움을 확인했다.
케이크가 등장할 때부터 이미 눈으로 맛있음을 보았기에 동료들이 케이크를 입에 넣은 후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다. 두 눈을 감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정신없이 흔들며 황홀경에 빠진 듯 극찬을 아끼지 않는 이 사람들이 내 동료들이다. 괜히 불안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전우애에 이어 동료애를 만끽하던 순간이었다. 물론 나도 맛을 봤지만 실제로 맛있었다. 적당히 단 맛이 입맛을 자극했고, 부드러운 빵은 음료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낌없이 올려진 딸기는 입 안에서 적당히 스쳐가는 시럽과 잘 어울렸다. 이 케이크가 형이 프랑스에서 비싼 값을 주고 공부했던 그 케이크와 비슷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맛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동료들에게 먹기 전에 촬영한 사진들로 sns 홍보를 부탁하였고 역시나 믿음직한 나의 동료들은 큰 소리로 꼭 sns에 홍보하겠다고 했다. 이어서 동료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시기를 재고 있을 때, 눈치 빠른 형은 자리가 부족하다며 얼른 식사하러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물론 빈자리가 있었지만 못 본 척하고 쫓겨나듯 기분 좋게 카페를 나왔다.
지난번에 봤을 때 보다 조금 더 살이 빠져 보이는 형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힘이 들지만 스스로 해 낸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형은 손님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이대로 몇 년이 지나면 큰 길가로 확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고 나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응원했다. 형을 만나러 갈 때마다 나는 형의 손 때가 묻은 카페를 구석구석 살핀다.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면 형은 카페에 부족한 점은 없는지 의견을 묻는다. 커피를 멀리하고,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는 무조건 다 좋다고 한다. 카페의 인테리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형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있는 이 공간이 그저 좋은 것이다. 행복한 형을 무조건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노량진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은 테이블 4개의 아담한 카페의 덩치 큰 주인장.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 주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