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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유 Oct 07. 2024

[13]

새벽 5시.


택시를 잡아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서인지 정신이 몽롱하다. 아니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모든 사실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머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복잡한데, 그 어느 때 보다도 텅 비어 있는 것만 같다. 넋이 나가면 이런 상태일까.


화장터는 청주이고, 장지는 청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족 선산이다. 화장터까지는 대형 버스로 모두 같이 이동하고, 화장터에서 장지까지는 가족들만 이동한다고 한다. 길이 좁아서 대형 버스 진입이 어렵고 주차 공간도 협소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형이 있는 곳을 꼭 알아야만 하는데, 그래야만 만나러 갈 수 있기에 불안한 마음이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현실을 거부하고 있는 낯선 상태에서 새벽의 차갑고 무거운 낯선 공기가 오히려 반갑다. 낯섦에 낯섦이 더해지니 더욱더 현실이 아님에 탄력을 받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곧 익숙함이 찾아올 것임을 안다. 금세 해가 떠 오를 테고, 도로는 차로 가득할 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디에서나 분주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가득하겠지. 영원히 익숙하지 않을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 하고 인정해야 하는 때가 두렵다. 새벽 시간에 겨우 잡아 탄 택시, 모든 낯섦을 뚫으며 달리고 있는 택시. 택시가 빠르게 달릴수록 그 '때'가 점점 더 가까워 짐을 느낀다. 창문 밖으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건물들과 앙상해져 가는 가로수, 멀어져만 가는 구름과 흐트러짐 없이 쫓아오는 달은 나를 오직 현실로만 데려다 놓는다.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이 순간에 외로움이 사무친다.


병원 장례식장에 다다르자 뒤 따라 멈추는 택시가 눈에 띈다. 발인에 맞춰 장례식장에 오시는 분들이라 생각한다. 외로운 새벽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를 받는다. 마음을 추스르고 차 문을 열어 두려운 현실에 한걸음 더 다가간다. 차가운 현실이 얼굴을 에워싸고 몸속으로 들어오니 두 손과 얼굴이 덜덜 떨린다. 지친 기색조차 없는 달은 여전히 나를 쫓고 있다. 뒤 따라온 택시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내린다. 어둠 속에 비치는 실루엣에서 형이 보인다. 시간이 멈췄다. 모든 것들이 얼어붙었다. 누군가가 내 심장을 쥐어짜기 시작한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너무 아파 몸을 웅크리며 소리조차 낼 수 없는 비명을 지른다. 그럼에도 눈에서 형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한마디가 분명하게 귀에 꽂힌다.


"희찬 엄마."


형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택시에서 내려서 계신다. 아버지께서 형의 이름과 함께 어머니를 부르시는 말소리에 심장의 통증이 가시고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를 알아보고 말없이 부둥켜안았다. 나를 보니 아들이 생각나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를 마주 하니 형이 생각나는 나. 터져 나오는 눈물이 마를 새가 없다. 나는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어제 형의 카페를 찾아서 건물 주인을 만났던 일을 말씀드린다.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다고, 형이 어떻게 지냈는지 알 것 같다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카페에 가봤구나... 이제 어떡하니... 어떻게 살겠니..."


어쭙잖은 위로에 통곡과 눈물만 더 해 드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언제 연락했니?"


"두 달 전에 연락했어요. 코로나 잠잠해지면 얼굴 보자고 하셨는데..."


나도, 어머니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내게서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며 미처 몰랐던 부분들을 알고 싶어 하실 것만 같다. 훗날 어머니의 큰 아들이 사회생활을 얼마나 멋지게 해 왔는지, 집 밖에서는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마르지 않은 눈물이 또다시 뚝 뚝 떨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리고 싶다.


뒤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시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희찬 엄마. 그만 울어, 그럼 또 너무 힘들잖아..."


아버지의 어깨에 힘이 없어 곧 쓰러지실 것만 같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으실 것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말로는 표현 못 할 슬픔의 소용돌이를 견디고 계신다. 눈을 떠야 할 이유도, 움직여야 할 이유도 잃어버린, 더 이상 숨 쉴 의미조차 없어진 세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심정으로 두 분이 서 계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 단지 형을 많이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여기 있음을 보여 드릴 뿐이다. 이것이 작게나마 아버지, 어머니께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모님께서는 발인을 위해 준비할 것들이 있다고 하시며 먼저 장례식장에 가 있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얼마 후 형의 동생 가족이 왔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형의 어린 조카는 많이 피곤해 보였고 장례식장 분위기로 침울한 얼굴이다.


운구는 형의 친구들이 맡았다. 그리고 운구차 앞에서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지만 고요하다. 하늘도 숨죽여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태풍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고요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통곡의 소리가 들려온다. 기다란 관 속에 형이 잠들어 있다. 부검을 했다고 하는데 형은 부검을 잘 견뎌 내었을까. 부검을 마치고 온전한 모습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온 것일까.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형이 너무도 보고 싶다. 보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또다시 흐르는 눈물에 형의 마지막 모습을 놓칠까 봐 자꾸 닦아낸다. 콧물도 흘러내리고 자꾸만 터져 나오는 통곡에 귀도 막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셀 수 없이 외치고 소리친다.


'형, 가지 마요. 제발 가지 마요. 제발이요. 너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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