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나도 아빠가 되었다. 건강하고 예쁜 딸이 태어난 것이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산모의 배우자 외에는 면회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집안의 어른들도 출산의 축하를 미뤄야 했다. 나는 기쁜 소식을 당연히 형에게 알렸고 형에게 삼촌이 되신 걸 축하한다고 했다. 형은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오랜만에 형이 보고 싶어서 간단히 식사라도 하자고 했고, 형은 흔쾌히 산후조리원 근처로 오겠다고 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반가운 얼굴로 서로를 반겼다. 시간이 지나도 어색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산후조리원에 공식적인 면회는 되지 않지만 입구에서 직접적인 접촉 없이 통유리를 통해서 아이를 볼 수 있었다. 행여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진짜 가도 되느냐는 말로 조심스러워하는 형을 억지로 끌고 아내와 아이를 보여 주었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형은 오랜만에 보는 아내와 인사를 나누었다.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기를 보자마자 형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동그란 눈으로 말했다.
"세상에나! 너무 예쁘다!"
형은 이렇게 갓 태어는 아기는 처음 본다고 했다. 아기를 보고 내 얼굴을 보더니 믿어지지 않는다며 다시 한번 축하해 주었다.
"동근이가 아빠가 되다니!"
피곤해 보이는 형의 얼굴에 밝은 빛이 드리웠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하며 형을 모셨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요즘 근황은 어떤지,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얘기를 나누었다. 왠지 모르게 얼굴이 어두워 보였던 형은 최근에 힘든 일이 있었다며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형의 친구와 심하게 다투어서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다툼의 상대방은 나도 아는 분이었고, 전부터 형과 티격태격하던 사이였다. 한데 이번에는 생각보다 심한 말이 오고 가는 바람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자존심 상하는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 것이 관계를 회복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럼에도 형은 친구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며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상처가 된 말을 냉정하게 받아들여 마음의 평온을 찾아가는 형이 좋았고,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두 분이 잘 화해하고 전처럼 티격 태격 하며 잘 지내길 바랐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피워낸 이야기 꽃의 향기에 취해 소주를 한 병 더 추가했다. 역시나 형은 또 그때의 이야기를 꺼낸다. 학교 앞에서 둘이 자취하던 시절에, 고시반 형들과 술을 마시기로 한 형이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사정을 했음에도 내가 들어주지 않아 무척이나 서운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된 후에도 여전히 형은 나와 같이 소주 병만 보면 그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안절부절못한 자세로 비비 꼬며 매번 언제까지 우려먹을 것인지, 그때는 그랬었고 지금은 잘 모시고 있지 않느냐고, 말 잘 듣지 않느냐며 반항 아닌 반항을 한다. 그때의 사건이 형에게 마음 깊이 서운함으로 박혀 있다는 것이 죄송하고 슬펐다. 형을 따라나섰으면 될 일이었는데,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괜한 고집을 부려가며 버텼던 것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거절했던 나에게 정말 서운함을 느꼈는데 한 편으로는 그때가 즐거웠던 시절이라고, 시간이 참 빠르다고 한다. 그리고 씩 웃어 보이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춘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불안한 무언가가 나를 스쳐 지나감을 느꼈다. 형의 서운한 마음을 영원히 풀어주지 못할 것만 같은, 내가 형에게 진 수없이 많은 빚을 갚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 몹시 기분 나쁘고 정신이 번쩍 드는 싸늘한 느낌.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무언가를 몸이 느껴 반응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식사가 끝날 즈음에 형은 내게 작은 쇼핑백을 건네면서 조카에게 주는 옷 선물이라며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 했다. 아기 옷이 너무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형이 부담을 느꼈을까 봐 염려가 되었다. 축하 선물을 많이 받았지만 형의 선물은 특별히 더 기억하고 싶어서 쇼핑백에 적힌 브랜드 이름을 유심히 보았다. 한데 아기 브랜드가 익숙하지 않아 좀처럼 알아보기가 힘이 들었다. 형은 이 모습을 보고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를 했는지 판매점에 가서 교환도 가능하다고 했다. 수많은 아이 옷 중에서 가장 예쁜 옷을 고르느라 많은 노력을 들였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한사코 손을 저어가며 형이 주신 옷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입힐 거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
그리고 이 옷은 차마 아이에게 입히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선물 받은 그대로 잘 모셔두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어느 봄날, 퇴근길에 형과 연락을 하다 각자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도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지만 형을 생각하니 피곤함이 녹아 내려갔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잔뜩 들뜬 마음으로 자전거를 달렸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형은 언제 준비를 해 왔는지 치킨을 사 왔다. 빈손으로 온 나의 두 손이 민망하던 순간에 마침 옆에 있던 농구장에 어린이들이 보였다. 형은 아이들에게도 치킨을 먹으라고 권했고 농구를 알려주기도 했다. 형은 최근에 농구 동호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근황을 알려왔다. 연신 빛이 나는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서 운동으로 땀을 흘리는 것이 현재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대회도 나갈 계획이라서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는 말과 함께 대학교 다니던 시절 체육대회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족구 경기는 정말 대단했다면서 지금도 소름이 돋을 만큼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었다. 족구는 당연히 우승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아슬아슬해서 더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었다. 형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소리를 너무 많이 질러대는 바람에 목이 쉬어 며칠간 고생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어쩐지 그때 형 목소리가 잘 들리는 것 같더라니 무리를 했던 것이었다.
카페 운영으로 형이 지쳐있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한바탕 웃음을 쏟아낸 덕분에 얼굴빛이 좋아 보여 안심이 되었다. 나 역시 누적된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 보내서 개운했다. 처음 보는 어린이들과도 치킨을 같이 먹고, 농구도 알려주며 친근한 동네 형이 되어주는 사람이 나와 가까이 있어서 좋았다.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서 또 좋았다. 생각만 해도 힘이 되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했다.
몇 개월 후에 형은 농구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같은 팀에 형보다 나이가 많은 형님들도 많이 계시다고 했었는데 다들 운동신경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형은 본인의 활약이 대단했음을 얘기하면서도 팀원 모두가 열심히 했다며 뿌듯해했다. 동시에 별거 아니라는 듯한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하면 하지. 형이야."
무척이나 형 다운 얘기였다. 축하 파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들뜬 내 마음을 표현했는데 우승 직후의 얘기를 들려준다. 우승이 확정 이후 사진을 찍고 파이팅을 외치고 나자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긴 했지만 각자 일들이 있어서 집에 간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형이 우승했는데 밥이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분위기를 잡았다. 늦은 시간에 문을 닫지 않은 식당을 어렵게 찾았고 식당에서 그동안 못 했던 얘기도 나누며 사진도 찍었는데 집에 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가장 즐거워했다는 것이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눈에 그러졌고 모두가 형으로부터 많은 에너지를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형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었다.
얼마 후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한동안 형과 만나지 못했다. 나는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었고, 주말이면 청주에 있는 아내와 아이 곁으로 가야 하기에 사람들과의 만남을 멀리 했다. 카페 영업이 걱정되어 가끔 연락을 드리면 기운 없는 목소리로 포장하는 손님들이 있어서 괜찮다고 하는 형에게 마음이 쓰였다. 얼마 전에는 카페 근처에 있는 회사에서 대량의 주문이 들어와 역시나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괜찮을 리가 없었다. 뉴스에는 자영업자들이 생계에 위협을 느낄 만큼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 되고 있었다. 말로는 조만간 만나자고, 얼굴 한번 보자고 하지만 쉽지 않음을 형도 알고 나도 알았다.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저녁 8시 45분. 형의 소식을 듣는다. 형의 친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