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낙유 Oct 08. 2024

[15]

장의 버스에 올라타고 화장터로 가는 길.


형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고 있다. 버스 저 중간쯤에 형이 누워 있다. 주말이면 숱하게 다니던 청주 가는 길. 빨리 도착하길 바라고 또 바랐던 이 길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천천히 지나길 바란다. 한바탕 거센 눈물 바람이 지나간 후의 버스는 시간이 멈춘 듯이 적막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눈물과 콧물을 삼키는 소리만이 멈춘 듯한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흐린 날씨는 모두를 위로하는 것일까. 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이, 자욱한 안개를 뚫고 비치는 햇빛이 무엇인가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창문으로 단절되어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나에게 닿지 못하듯 나 역시 창문에 막혀 닿지 못한다. 저곳으로 넘어간 사람만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있는 것만 같다. 아직은 두껍고 단단하게만 느껴지는 이 창문이, 어째서 형에게는 이토록 빨리 얇아져서 일찍 깨어져버린 것일까. 그 이유를 잔뜩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은데 닿지 않으니 그저 미울 뿐이다.


화장터에 도착한 후에 언덕길을 올라 한참을 서 있다 순서가 가까워 모두가 버스에서 내린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공기에 다시 한번 짓눌려 고개를 들기조차 힘이 든다. 분주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뚫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통곡의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한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형은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 한 줌 재가 되는 걸까.


버스에 타고 있는 형을 내려 다시 한번 예를 차린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행렬이 닿는 곳은 뜨거운 불길. 차마 갈 수 없어 자꾸만 뒤처지면서도 형의 마지막을 조금이라도 덜 외롭게 하려고 힘을 짜 낸다.

마지막. 형의 형체가 남아있는 것은 지금이 마지막이다. 지금의 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육신은 남아있지 않는다. 모두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던 한 사람, 형의 맨 끝이 지금이다. 영원히 잊지 않으려고, 나의 맨 끝에서도 형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눈을 비비고 헐떡이는 숨을 삼키며 보고 또 본다. 앞으로는 형과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떠올리면서 느낄 수밖에 없다. 그 기억과 느낌들이 희미해져 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야 한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다시는 마주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 앞에 하찮고 초라하기만 하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기만 해야 하는 존재. 눈물로 감정을 쏟아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존재가 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죽이고 있다. 이곳과 저곳의 경계처럼 느껴지는 유리벽 뒤의 커튼 너머에서 분골 강도를 물어보는 말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무슨 얘기인지 몰랐는데 뼈를 어떻게 갈 것인지를 물어보는 의미였다. '곱게'라는 말이 들리기 무섭게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 이후에 무언가가 갈리고 빻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무슨 소리인지를 알았다. 다시 한번 통곡의 소리가 사방을 타고 울려와 온몸을 덜덜 떨리게 한다. 형이 환하게 웃던 순간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생명력이 가득했던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형 특유의 표정들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시원시원한 그 웃음소리를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지금 보고 느끼는 이 모든 것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오감이 멀어지고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다시 찾아온다. 정신이 감각과 분리된다. 흐느끼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다. 돌이킬 수 없는, 이미 일어난 사건임을 타인이 되어 바라보고 있다. 연에 순응하고자 했던 삶의 배신감에 온 힘을 다해 저항하고 싶다. 순리를 따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울 줄 몰랐다. 모든 것을 원망하고 발버둥 치려 하지만 그 대상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해 울분만 삼킬 뿐이다. 시작과 끝이 있고 태어남과 죽음이 있음을 세상 모두가 알지만 경험하지 못한 모두는 모른다. 가장 노골적으로 잔인하고, 기약 없는 고통을 가져오는 단순하고 간단한 불변의 법칙임을. 끝이 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떠올려 보지만 지금 형의 끝을 지켜보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을, 넘어가는 해를 끌어당겨 되돌릴 수가 없다. 그저 지켜보며 더 빨리 흘러가지 않기를, 더 빨리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며 바라 볼 뿐이다.


기계 소리가 멈추고 흐느끼는 소리만이 남아 있는 적막함 속에 커튼이 들춰진다. 하얀 유골함이 나온다. 저 안에 형이 있다는 생각에 유골함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마음속으로는 형을 부르고, 입 밖으로는 형의 이름 대신 통곡의 소리가 새어 나온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입을 다물어 보아도 자꾸만 새어 나오는 응어리를 어찌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 형이 있음을 증명할 유일한 흔적이 저 안에 남아 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던 한 생명이, 스쳐가는 바람에도 흩날려 사라져 버릴 만큼의 곱디 고운 가녀림만 남았다.


여기서 작별해야 한다. 형과 가족들은 형이 잠들 곳으로 이동하고, 형의 지인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간다. 아버지께서 여기까지 와 주어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설움과 한이 맺혀 여전히 위태롭게만 느껴진다. 어머니께서는 다시 한번 나를 꼭 안아주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신다. 모두가 흐느끼는 가운데 어머니와 나는 한동안 끌어안고 서로가 간직하고 있는 형의 기운을 다시 한번 느낀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만 지금 이 순간에 외롭지 않으시길, 조금이라도 위안을 느끼시길 바라고 또 바란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 어떤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갑작스럽게 큰 일을 겪은 나머지 어안이 벙벙하고 아직까지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든다. 이른 시간에 넘어가는 해를 보며 형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눈으로는 직접 바라보기 힘든 점점 더 붉어지는 해 어딘가에 형이 있을 것만 같다.


어두운 집에 가만히 앉아서 잠시 고민을 하다 눈을 불끈 뜨고서 불을 켠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다음 날에도 새벽은 왔고 본능에 이끌려 출근 준비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떠 오르려는 해의 이마가 살짝 보인다. 그리고 반짝이는 형광등이 비추는 집 안에 어두운 빛이 드리운다.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빛나는 형광등이 눈에 들어오지만 그대로 둔 채로 문을 닫는다.


퇴근 후 형의 카페를 찾았다. 불빛하나 없이 굳게 닫힌 문과 영업을 종료한다는 현수막이 찾아온 손님들의 발걸음을 돌린다. 당분간은 퇴근 후에 계속해서 형의 카페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카페에서 형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일을 하는 모습을 떠 올릴 것이다. 형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기억해 낼 수 있게.


주말에 찾은 청주에서 새벽에 차를 몰아 형에게 향하는 길.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아내와 아이가 잠을 자는 틈에 형을 만나고 올 생각이다. 멀지 않은 탓에 자꾸 찾아가다 보니 7번 제를 드렸다. 그 사이에 한 번은 형이 꿈에 찾아왔다. 멀끔한 옷차림으로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형은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산소에 누군가가 다녀가신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얼어붙은 예쁜 꽃도 있었고, 제사 음식들도 보였다. 설을 맞아 음식 맛보시라고 찾아뵙고 좋아하시던 소주도 원 없이 드시라고 잔을 넉넉하게 채웠다. 이후에도 종종 형이 생각나면 찾아가서 재미있을만한 이야기들을 들려 드렸다. 계절의 바뀜을 느끼며 잠들어 있는 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이 참 좋다. 형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지나가는 바람, 떨어지는 낙엽, 앙상해진 나무들, 얼어붙은 잔디, 피어나는 꽃, 가까이 날아드는 나비와 풀벌레 모두를 형이 하는 말로 여기면 충분하다.


돌아오는 첫 번째 형의 생일에 산소를 찾았다. 그리고 형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장례식 때보다는 좋아지셨지만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계심이 느껴졌다. 며칠 전에 꿈에서 형을 만나 신나게 축구를 했던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어머니께서 눈물을 훔치신다. 그리고 또 한 번 꼭 안아주신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건강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건네 드렸다. 같이 식사하러 가자고 하셨지만 오후에 딸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야 한다는 핑계로 죄송하다고 했다. 사실은 형과 얘기도 나누며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몇 년이 흘러 우연히 형의 sns를 보았고 어느 결혼식장에서 형이 축가를 부르는 영상이 있었다. 형은 노래도 잘 불러서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종종 축가를 불렀다. 영상을 보니 가장 기쁜 노래가 왜 이렇게 구슬프게 들리는지 코 끝이 찡해져 눈물이 흐른다. 형은 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다 전 날 과음을 한 탓에 음이탈 났던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무척이나 창피했는데 오히려 하객들이 더 큰 호응을 해 주어서 자연스러웠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친구들의 축가 부탁이 부쩍 줄었다고 했다. 그때는 마냥 즐겁기만 했던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눈물이 날 만큼 서글프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과 프로농구를 직관하고 있는 사진, 농구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고 찍은 단체 사진, 우승한 그날에 저녁식사 제안을 해 주어서 너무 고마웠다는 이야기, 농구하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형의 메시지가 있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생일 축하 한다는 글, 그립고 보고 싶다는 글도 많이 보인다. 모두가 형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서 감사하고 좋다.


지하철 역으로 몰려드는 사람들과 비좁은 지하철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니 세상은 여전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세상이다.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기에 각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금세 시스템으로 복귀해야만 한다. 더 돌아보고 더 슬퍼하고 더 많이 울고 싶고 더 많이 기억을 떠올리고 싶은데, 하던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감정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기억까지 희미하게 만들어 버릴까 봐 겁이 난다.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도 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아닐까.

이전 14화 [1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