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절반을 역주행 했습니다
연봉 절반을 깎아 사기업에서 공공기관으로 갔다
남들은 더 좋은 대우, 더 많은 연봉을 위해 이직을 하는데 나는 역주행을 했다. 적잖게 받던 연봉을 절반이나 자진 삭감하면서 공공기관으로 이직을 한 것이다. 나름대로의 확신과 기대가 있었기에 호기롭고 어깨가 으쓱해지는 결정이라 생각했다.
이직을 결정한 기관은 애초에 순위가 높은 곳도 아니었기에 연봉이나 복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오직 기관이 하는 일에 의미를 두고 이직을 결심했으므로.
그러나 이직 후 처음 받은 급여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어이가 없을 지경이니 말해봤자 속상하기만 하다. 모르고 온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씁쓸한지. 6년이 지난 지금은 월급이 많이 좋아졌느냐? 그것도 아니다. 지금도 처참하기는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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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사회생활 첫 발을 내딛고 4년이 넘도록 일하는 동안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 생각하여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이어갔고 석사 학위 취득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목마름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분명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요소가 더 많은 업무에 내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음을 알았다. 주도적이고 능동적이며 성취감 높은 일을 하고 싶은 것도 알았다. 또한 평생의 좌우명인 '베풀며 살자'를 실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므로.
우연히 동료 선배로부터 공공기관 채용공고를 전해 들었다. 채용 직무가 전공을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관 취지도 매우 훌륭하고 주도적으로 일하며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월급은 중요하지 않다 생각했다. 많으면 많은 대로 쓰고, 적으면 적은 대로 쓰며 사는 거 아니겠는가? 굶지 않을 만큼만 벌면 되었다. 결심했다. 연봉은 반토막 나지만 나의 행복을 위해서 간다. 부장님, 선후배님들과 직장생활에서의 인연이 여기까지라 생각하니 아쉬움에 떡을 돌리고 퇴사했다. 인간관계 문제로 퇴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너무나 건강한 인간관계로 근무하다 퇴사를 하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럭저럭 부대끼다 입사에 성공했다. 그런데 사기업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이곳은 여성 비율이 더 높은데 정년 보장, 자유로운 육아휴직과 경력단절 우려가 없어 급여가 적음에도 여성들이 많이 선호한다고 한다. 반면 급여가 적어 남자들은 지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전 직장은 겉으로 봐선 분위기가 흉흉했으나 들여다보면 협조도 잘되고 서로 양보와 희생을 눈치껏 돌아가면서 적절히 하여 갈등이 적었다. 그러나 윗사람의 눈치를 많이 봐야 했고 위계질서는 철저했으며 선배들은 눈치 보는 후배들을 챙기고 후배들은 그런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배웠다. 공공기관은 수평적인 관계에 가까웠고 겉으로는 분위기가 좋으나 들여다보면 까칠했다. 서로에게 지나친 터치 없이 각자 고유 업무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출퇴근도 자유롭고 눈치 보는 일이 적다. 주요 업무는 담당자가 나 혼자 이므로 대략적인 인수인계 이후 시행착오를 거치며 혼자서 터득해야 했다. 또한 업무협조 구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 얼마든지 협조가 가능해 보이는 일도 서로 공문을 보내라고 기싸움하고 막상 공문이 오면 불편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기본적으로 다들 정신없이 바쁘고, 각자의 고유 업무를 초과하거나 침해받는 것에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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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공기관 직원이 되고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6년 전 사기업에서 받던 월급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생활비에 보태고 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아이가 커가니 적은 월급에 눈살이 찌푸려짐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눈치 보지 않고 출퇴근하며 휴가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업무협조 구하는 일은 아직도 적응 중이다. 과연 적응이 될지 모르겠다만.
업무 만족도도 좋다. 주도적으로 일하고 상담도 하고 성취감도 좋다. 물론 악성 민원인도 있다. 인력이 부족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각자 업무에 대한 자부심은 누구나 느끼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지나친 업무량과 자부심이 오히려 업무협조를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적은 급여에도 근속연수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도움을 받으시는 분들의 감사하다는 인사와 작은 미소 덕분이다. 마음이 따듯해지고 때로는 내가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사람 사는 게 이런 것 아니겠나 생각한다.
100% 만족할만한 직장생활이 존재할 거라 생각지 않는다. 매사가 그렇듯 우리는 갈림길 앞에서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의 기준은 모두 다르다. 심지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자의 그 기준이 달라진다.
후회란, 선택에 있어 그 결과에 감정조절을 실패했을 때 느끼는 것이라 한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이리라. 풍족하지 못하지만 입에 풀칠은 하고 산다. 이만하면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