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만해요!’ 그 말을 믿었다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엄마’

by 김혜미

“선생님, 어때요? 괜찮을까요?”
“음... 할 만해요!”

첫 시작은 가벼웠다. 담당 의사의 명쾌한 답변에 나 또한 경쾌하게 결정했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다.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했다고. 남편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그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할 수 있는 거냐고. 나는 웃으며 답했다. 의사 선생님이 할 만 하대.

어려서부터 참을성이 제법 있었다. 운동을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 100미터 달리기나 멀리 뛰기보다는 철봉 매달리기나 오래 달리기 같은 종목이 훨씬 기록이 나았다. 중학생 땐 장염인 줄 알고 약만 먹고 참다가 맹장이 터져서 큰일 날 뻔하기도 했다. 사람 간의 관계도 오래 끓여 뭉근한 사골국처럼 시간을 두고 다가가는 편이었다. 기다리고 인내하는 데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시험관 시술도 그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시험관 시술은 쉽지 않았다. 첫날부터 과배란을 유도하기 위한 주사를 처방받아와 며칠 동안 내 뱃가죽을 부여잡고 직접 주사를 놓았다. 간호사가 방법을 알려줄 때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하려니 손이 덜덜 떨렸다. 남편에게 부탁하니 자기는 더 무섭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 그냥 내가 하자. 겁을 내면 주사를 놓기가 힘드니까 한 번에 찌르는 거야. 하나, 둘, 셋, 푹― 일정한 시간에 맞춰 하루는 오른편에, 다음 날은 왼편에. 며칠이 지나자 배꼽 주변은 주사약이 뭉쳐 단단해졌고 파랗게 멍이 들었다.
주사 놓기보다 더 어려운 건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는 것이었다. 시험관 시술이 잘 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만일의 경우에는 난감할 것 같았다. 이미 한 번의 유산을 겪었던 터라 또다시 가족들에게 슬픔을 안겨주기 싫었다. 아니, 내가 상처 받기가 두려워 입이 무거워졌다. 회사에도 알리지 않았다. 임신 때문에 일에 지장을 준다는 인상을 받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친정을 찾은 어느 날 가족들이 거실에서 웃고 있을 때 나는 방에서 조용히 주사를 놓았다. 행여나 들킬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괜히 방문을 잠그지도 못했다. 난자를 채취하는 전날 밤은 더 긴박했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다 중간광고 시간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혹시나 주사기를 떨어트릴까, 광고가 끝나지는 않을까. 떨리는 손으로 난포 터뜨리는 주사를 놓았다. 몇 분의 시간이 단 몇 초처럼 느껴질 만큼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광고가 끝나기 전에 자리로 돌아온 나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마이크 앞에 앉았다. 그래야만 했다.

주사의 고비를 넘기고 나니 다음은 복수(腹水)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관 시술을 시작할 때는 잘 몰랐던 부작용이었다. 과배란 주사를 맞고 난포가 너무 많이 생겼을 경우 복수가 차거나 호흡곤란이 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난자 채취 전날 인터넷에서 시험관 선배들(?)의 후기를 읽으면서 슬쩍 긴장했지만 속으로는 설마 했었다. 그 설마는 현실이 되었다. 복수는 천천히 차올랐다. 나흘 뒤 대학로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는 온몸에 붓기가 가득했다.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일을 마무리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나의 몸 상태와는 다르게 체외수정 결과는 양호했다. 자연수정, 미세수정, 최상급배아, 신선이식, 냉동배아... 여러 가지 말들이 허공을 떠다녔다. 머릿속에 서 정리가 되기도 전에 1개의 배아를 내 몸에 이식했다. 모든 과정을 복부 초음파를 통해 흐릿하지만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아주 잠깐 실험실의 동물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우리 아기를 만날 날만을 손꼽아 보기로 했다. 아기 씨가 내 몸에서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기를 기도했다. 저녁부터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면서 끙끙 앓았다. 혹시나 이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새벽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배아 이식 후에도 복수는 날이 갈수록 늘었다. 혈액에 있는 수분이 혈관 밖으로 나와 복강 안에 고일 수록 자꾸만 숨이 차고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모든 스케줄을 최소화하고 저녁 방송만 남겼다. 낮보다 밤에 더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버텼다. 복수를 빼내도 다시 금방 차오른다고 해서 복수천자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온음료를 계속 마시고 화장실을 자주 가는 수밖에 없었다. 복수가 최고치에 다다랐을 땐 이미 임신 중기로 보일 정도로 배가 불룩했다. 흥청망청 젊음을 과신하며 지내온 나날들이 나에게 복수(復讐)하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복수는 처절하지 않아서 임신을 확인한 뒤로는 조금씩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할 만하다는 의사의 가벼운 답변은 족쇄이자 원동력이었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랬으리라. 이 모든 건 시험관 시술을 결정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겪었을 과정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다들 이겨냈을 거라 생각하니 전우애로 코끝이 시큰해졌다.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필하며 덩달아 고생한 남편도 고마웠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의사 말만 믿고 이 길에 들어선 나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고백하건대 시험관 시술은 참을성만으로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급작스러운 몸의 변화만큼이나 홀로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외로웠다.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말라고, 힘들다고 아프다고 말하라고, 있는 힘껏 티를 내라고 하고 싶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할 만하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엄마가 된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처럼. 대신 말을 좀 바꿔야겠다. (우리 아기니까) 할 만해요,라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둘에서 셋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