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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예림 Oct 10. 2024

몰디브 바다가 숨기고 있는 것들

몰디브

몰디브에 간다고 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너무 부럽다’는 것이었다. 파란색, 초록색, 하얀색 물감을 골고루 섞어 물에 풀어놓은 듯한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지구에서 맛있다고 하는 모든 음식을 무제한으로 즐기며, 바다 어디에서나 머리를 물속에 넣으면 신비로운 산호초와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는 천국 같은 나라가 몰디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이유로 몰디브에 가는 것을 오랫동안 꺼려 왔다. 천국 같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만들어질 것이며, 작은 섬에는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경비행기가 물건을 실어 날라야 할테니 말이다.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터였다. 남편의 이 말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알고 있었어? 몰디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로컬 섬으로도 여행이 가능하다고 하던데?”


로컬 섬으로 여행을 갈 수 있게 된 것은 2009년 이후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떠난 친구들이 그렇게나 많았는데도 말이다. 내가 들은 몰디브 여행은 최소 두 명에 천만 원은 있어야 갈 수 있는 럭셔리의 끝판왕이었다. 알고 보니 몰디브 정부는 다국적 기업이 리조트를 세울 수 있도록 ‘한 섬에 하나의 리조트(One Island, One Resort)’ 전략을 오래도록 내세웠는데,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몰디브를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도착과 동시에 전 직원이 나와 웰컴 인사와 웰컴 드링크를 건네고, 삼시 세끼 뷔페가 제공되며, 맥주와 모히또를 무제한 마실 수 있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빳빳하고 깨끗한 침대 시트로 교체되어 있는 곳. 하지만 정작 현지인의 삶은 조금도 엿볼 수 없는 리조트 여행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런데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는 로컬 섬은 달랐다. 남편은 나를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몰디브에는 대략 1200개의 섬이 있는데 그중 약 200개의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는 몰디브로 떠나기 전에 어떤 섬으로 가야 할지 수시로 구글맵을 열어 몰디브 지도를 훑었다. 고심 끝에 마푸시(Maafushi)를 선택했다. 섬의 규모도 어느 정도 있어서 식당을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을 것이고, 바다가 아니어도 섬 곳곳을 돌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공항 주변에는 수상비행기가 쉴 새 없이 뜨고 내렸고, 리조트가 소유한 수많은 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 곁을 지나 시내로 넘어왔다. 그곳에서 현지인들이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로컬 보트를 탈 수 있었다. 로컬 보트는 주요 섬들을 지나며 승객들을 태웠고, 편도 2달러만 주면 이용할 수 있었다.


마푸시는 넉넉하게 한 시간이면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아담한 섬이었다. 숙소 앞은 땅을 넓히는 공사가 한창이어서 바다를 볼 수 없었고, 숙소 양옆으로는 새로운 건물을 올리고 있어 공사 소음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몰디브라고 해서 숙소 문을 박차고 나가자마자 해변으로 뛰어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조그맣게 부풀었던 마음이 빠르게 쪼그라들고 있었다. 


섬 곳곳에서 진행 중이던 공사 프로젝트


옷을 갈아 입고 거리로 나왔다. 햇볕에 바짝 마른 새하얀 모래 골목을 걸었고, 몰디브 바다색으로 칠한 현지인들의 주거지가 나타났다. 빈티지한 건물과 외관 장식, 물 빠진 파스텔컬러가 웨스 앤더슨의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몰디브 사람들은 여행객들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모습이었다. 남자들은 영화 모아나에 나오는 마우이처럼 어깨까지 내려오는 윤기 나는 곱슬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이슬람 국가답게 여성들은 대부분 어두운 색상의 긴 옷을 입고 히잡을 쓰고 있었다. 3,00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이 섬에는 학교가 딱 한 개가 있었다. 마침 학교 앞을 지나는데 오후 등교를 하는 학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하나 둘 도착하고 있었다. 



해변에 도착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캔디바 물빛에 우리 셋은 발끝부터 아드레날린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감성적인 바다 색깔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다 몰디브, 몰디브 하는 이유가 이거구나 싶었다. 여러 바다를 가보았지만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몰디브 바다가 처음이었다.



내가 코코넛 나무 아래 자리를 잡는 사이, 남편은 근처 리조트에서 무알콜 모히또 두 잔을 사 와 분위기를 더했다. 잠시 후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파도를 거슬러 성큼성큼 바다로 들어갔다. 하얀 물감을 풀어낸 것처럼 불투명한 물이라 물고기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물은 깨끗했고, 발에 닿은 모래는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 우리 셋은 부둥켜안고 점점 다가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파도타기를 시작했다.


“엄마, 우리가 지금 인도양 위에 떠 있는 거야. 지구는 정말 아름다워. 그렇지 않아?”


아이가 말했다. 정말 그러했다. ‘다들 이거 보려고 몰디브까지 그 먼 시간을 걸려 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순간, 발바닥에 날카로운 것이 스쳤다. 별거 아니겠지 싶어 다시 놀고 있는데, 도저히 쓰라려 참을 수가 없었다. 바다 밑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닥에는 거친 돌과 굵은 모래가 많은 것 같았다. 우리는 서둘러 물 밖을 빠져나왔다. 내 발바닥에서 시뻘건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다에 들어간 지 15분도 되지 않아 물놀이를 포기하게 될 줄이야.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간 아이는 양손 가득 무언 가를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엄마 이것 좀 봐! 우리 집에 있는 거랑 똑같은 거야!”



아이가 바다에서 건져온 것은 ‘죽은 산호’였다. 몇 년 전, 친구가 키우던 산호가 생명을 다해 하얗고 단단하게 변한 산호를 받은 적이 있었다. 백화된 산호를 익히 알고 있었다. 아이는 끝도 없이 죽은 산호를 가져다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설마 ‘이렇게나 많이 있다고?’ 싶어 해변가로 나가보았다. 해변에는 죽은 산호가 파도에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내 발에 상처를 낸 범인이었다. 섬뜩했다. 믿기 어려웠다. 천국같이 아름답게만 보였던 몰디브의 바다가 사실은 죽은 산호밭이었다니. 불편한 진실을 눈으로 마주하고 나니 더는 바닷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바다 수영을 마치고 우리는 섬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큰길을 벗어나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에 젖은 옷자락은 차츰 옅어졌고, 모래는 사각사각 떨어져 나갔다. 여행객들은 우리가 갔던 해변가에만 몰려 있던 것인지, 이름 없는 해변가는 고요하다 못해 정적이 감돌았다. 남쪽으로 걸어가니 작은 교도소가 나왔는데 그 앞바다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그곳에는 거대한 쓰레기 언덕이 자리하고 있었다. 쓰레기장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도록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안에는 건축 부자재, 폐 타이어, 플라스틱 병, 유리병, 과자 봉지, 부서진 가구, 음식물 쓰레기가 질서 없이 뒤섞여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행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마푸시 섬은 단단히 몸살을 앓고 있었다. 제때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는 바다로 흘러들어 가거나, 썩은 쓰레기에서 흘러나온 유해 성분이 바다 생물과 현지인들의 몸을 상하게 할 것이었다. 몰디브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 건 꽤나 쓰라린 경험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기사를 검색했다. 그제야 몰디브 바다가 거대한 산호 무덤으로 변해버린 이유, 여행객들이 환호하는 신비한 물색으로 변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산호는 혼자 살아갈 수 없어 조류와 짝꿍처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조류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조류가 전해주던 영양분을 받을 수 없게 된 산호도 결국 죽게 된다. 이렇게 산호가 사라진 바다에는 더 이상 물고기도 찾지 않는 것이다. 


죽어서 하얗게 변해버린 산호는 바다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호가 하얗게 변해버리고 나면 바닷물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캔디바 물색을 띠게 된다. 더 많은 산호가 죽을수록 더 아름다운 민트빛 바다가 되는 것이다. 몰디브를 방문하는 여행객이 많아지려면 물빛이 지금처럼 아름다워야 하는데, 그렇다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넋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으니 몰디브 정부와 국민들의 고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 위기에 놓인 몰디브의 진실을 알고 나니, 몰디브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해수면의 높이였다. 택시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올 때 보았던 바다는 해안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찰랑거리며 침범할 듯 위협했고, 그때 아이와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엄마, 근데 태풍이 오면 도로가 다 잠기는 거 아니야?”


몰디브 섬 80% 이상이 해발 1미터 아래에 있다. 그러니까 섬의 가장 높은 곳이 바다 수면에서 1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의 희생을 가져왔던 인도양 쓰나미는 몰디브의 섬들도 덮쳤고, 당시 몰디브 수도 말레의 3분의 2가 침수가 된 일이 있었다.


해수면이 점점 더 높아지고, 바다가 뜨거워져 태풍이 더 자주 발생해 높은 파도가 친다면 몰디브이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바닷물의 짠기가 닿은 땅에서 곡식이 자라고,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을까? 마푸시 섬에 있던 학교와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몰디브 정부는 재생 에너지 사용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기후 위기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국민들의 이주를 위해 수도 말레와 연결된 인공섬 훌후말레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과연, 몰디브의 해수면이 상승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는 문제는 몰디브 정부만의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지구를 뜨겁게 달구는 데 매일매일 일조하는 우리의 일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몰디브는 곧 바다 밑으로 사라질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몰디브 산호위에 인공섬 만들었다···완공 땐 인구 44% 이주' 2021.04.13


몰디브에서 돌아온 지 3개월이 됐을 때, 아이는 국제앰네스티가 주최하는 어린이 그림 대회에 참가했다. 세계적인 인권 구호 단체인 앰네스티는 그동안 주로 정치적 이유로 구금되거나, 종교 및 성차별로 인해 차별받는 사람들을 돕는 데 힘써왔지만, 이번 그림 대회의 주제는 놀랍게도 ‘기후 위기’였다. 기후 위기가 사람들의 생명, 음식, 물, 주거, 교육, 빈곤 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권의 위기로 본 것이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는 지구 온도가 약 3도 상승할 경우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이렇게 되면 7억 명의 사람이 집을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안타깝게도 그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아이는 그림 대회가 열리는 홀 바닥에 앉아 고개를 들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하얀 도화지 위에 주저 없이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뜨겁고 거친 파도가 섬나라를 삼키는 모습이었다. 섬나라 사람들의 학교와 병원은 속절없이 파도에 휩쓸려 나갔고, 사람들은 도움을 구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주최한 <어린이 인권 그림 그리기 대회>


“그림 그리면서 무슨 생각했어?”

“나라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생각했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올 수 있어?”

“그건 아마도 쉬운 일은 아닐 거야. 난민을 받는 건 또 다른 문제거든.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가끔 아이와 잠들기 전 몰디브 바다 색을 떠올린다. 발바닥을 밀어내던 에너지 가득한 파도도 느껴본다. 그리곤 내 발에 생채기를 내던 죽은 산호를 생각난다. 우리는 지금도 이렇게 하염없이 죽어나가고 있다고. 제발 뭐라도 해보라고. 몰디브 바다는 오늘도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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