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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예림 Oct 12. 2024

몰디브 사람들은 왜 웃지 않을까

몰디브

몰디브로 여행을 떠난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전 상사에게서 이런 메시지가 왔다.


“음, 몰디브 나쁘지는 않지. 너 리조트 가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몰디브를 보러 가는 거야(Oh well Maldives is not bad, u going to a resort or a realistic place)?”


이곳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상사가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말을 건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봐았던 몰디브는 진짜 몰디브의 겨우 한 조각에 불과했다는 뼈아픈 진실을 말이다.


몰디브의 수도 말레(Malé) 공항에 도착했을 때,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리조트에서 나온 외국인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곧장 수상 비행장이나 리조트 전용 보트 선착장으로 떠났다. 우리는 한동안 택시를 잡지 못해 덩그러니 공항에 머물러야 했다. 겨우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사진과 다른 열악한 환경에 실망 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몰디브 사람들의 차가운 태도에 당황스러웠다. 호텔 직원의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에 마음마저 서늘해졌다.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내 아침 인사가 민망해 가슴 한쪽이 후끈거릴 지경이었다.



몰디브를 떠나는 날 아침, 우리는 다시 말레로 돌아왔다. 중심지에 있는 국회의사당, 국립박물관, 그리고 몰디브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말레 모스크를 둘러볼 계획이었다. 말레는 어딜 가나 공사 소리가 끊이지 않았기에 아이 손을 잡고 맘 편히 거리를 걷는 건 어려웠다. 골목마다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고, 바다 한쪽에서는 땅을 매립하는 대규모 공사가 한창이었다. 섬들을 연결하는 다리 공사도 진행 중이었고, 인도와 차도는 공사 자재들로 막히거나 깨져 있기 일쑤였다.



몇 군데를 돌아본 뒤, 우리는 새롭게 만들어진 인공섬 훌후말레(Hulhumalé)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파마를 한 것 같은 곱슬머리가 목까지 내려온 젊은 택시 기사 마흐메트 씨의 차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마흐메트 씨도 뚱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할 뿐이었다. 도대체 이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몰디브 물가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같더라고요. 서울도 물가가 높은 편인데 여기는 더 심한 것 같아요. 말레에서 사는 건 어때요? 괜찮은가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어색함을 깨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택시 기사는 긴 한숨을 쉬었다.


“여기 보이는 집들 있죠? 월세가 얼마인지 아세요? 120만 원이에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큰 집도 아니에요. 겨우 방 두 개인데 이렇게 비싸요. 몰디브 사람들은 갈 데가 없어서 다 여기 수도로 몰려들어요. 지금 우리가 달리는 이 길도 아침에 나가면 몇십 분 걸려야 겨우 빠져나갈 수 있어요. 몰디브 사람들은 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해요. 여긴 도저히 희망이 없어요.”


“마하메트씨도 떠나고 싶으세요?”


“당연하죠. 어디든 가고 싶어요. 여기만 아니면 됩니다. 너무 지쳤어요.”


말레에 있던 식당과 카페는 정말이지 비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라고 해도 지나치게 비쌌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은 7,000원 정도였고, 음식 한 접시는 2만 원을 훌쩍 넘었다. 목이 말라 카페에서 9,000원짜리 생수를 시켰는데, 몰디브의 바다 색을 닮은 푸른 유리병에 담겨 있었다. 말레에 사는 현지인들의 한 달 평균 임금이 8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라는데, 가족들과의 외식은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몰디브 현지 음식을 먹고 싶어 검색도 해보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관광객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이탈리아 음식인 중국 음식을 팔고 있었다. 맛도 없는 외국 음식을 멀리 떨어진 몰디브까지 와서 비싼 돈을 주고 먹어야 하니 도저히 마음에 차지 않았다. 게다가 몇몇 건물을 빼고는 여기가 ‘몰디브구나!’ 싶은 무언가를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름만 몰디브일 뿐 영혼은 쏙 빠져 있는 허울 같은 도시였다.


겨우 찾아낸 몰디브 전통 아침식사. 카레향 가득한 밥상.


몰디브는 지독한 관광지의 저주에 빠져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광객이 늘어나 돈을 많이 벌면, 몰디브 국민들의 삶도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몰디브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나라의 손아귀에 이리저리 주물리고 있었다. 마흐메트 씨의 이야기다. 


“우리 경제는 완전히 망했어요.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몰디브에 오는 관광객이 줄어드니까 하루 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했어요. 거기에 러시아랑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졌잖아요. 저는 택시기사인데 손님은 없고, 기름값은 너무 올라 버렸지, 식재료도 너무 비싸져서 필요한 만큼 구매할 수도 없었어요.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또 다른 바이러스가 터지면 그때는 진짜 다 죽어요.”


우리가 몰디브에서 사용하는 돈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우리가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사고 타는 것들의 대부분은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것들이다. 몰디브는 필요한 식품의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주식인 쌀은 몰디브 땅에서 재배되지 않은지 오래고, 채소와 고기는 물론 아이들이 먹는 과자까지도 전부 해외에서 들어온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여행객은 많지 않다. 몰디브에선 언제 어디서나 일본산 블루핀 참치, 노르웨이산 킹 크랩, 인도산 사프란이 들어간 고급 요리까지도 돈만 내면 쉽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주요 식품을 수출하는 나라들이 갑자기 가격을 올리거나, 기후변화가 심각해져 가뭄으로 쌀 생산량이 감소해 몰디브 수출을 중단하거나, 또는 두 나라 간 분쟁으로 수출이 멈춘다면, 몰디브 사람들의 일상은 어떻게 될까? 


한때 몰디브 사람들도 자신들의 땅에서 곡식과 야채를 길러냈다. 그러나 바닷물이 점점 올라오면서 염도가 높아졌고, 이제는 농작물을 거의 생산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더 다양하고 고품질의 음식을 원하는 콧대 높은 관광객들의 입맛과 취향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몰디브의 수입 의존도는 심각해졌다. 섬들 사이를 오가는 보트와 비행기에 필요한 석유부터, 호텔과 리조트 건축에 쓰이는 장비와 자재까지 모두 외국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사람들은 몰디브를 꿈의 공간인 '파라다이스'라고 부른다. 1972년부터 몰디브 정부는 아름다운 섬들을 골라 다국적 기업에 넘겨 개발을 시작했다. 굵직한 해외 기업들은 이 섬들에 지상 낙원을 만들었다. 몰디브 경제의 30%는 관광 산업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그 수익이 몰디브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계획대로라면, 관광 수익은 가라앉는 몰디브에 인공 섬을 새롭게 건설하거나, 관광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산업에 투자하거나, 국민들의 건강과 교육에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개발이 시작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이 기대한 미래는 오지 않았다. 리조트에서 벌어들인 돈이 몰디브에 남지 않고, 외부 세계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몰디브 사람들은 섬을 떠나야 했고, 바다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과 산호들도 점차 사라져 갔다. 여행객이 늘어나자 현지인들의 일상을 위한 식당, 미용실, 식료품 가게 있던 자리에 잠깐 머물다 갈 관광객을 위한 값비싼 레스토랑, 럭셔리한 카페, 기념품 가게가 들어섰다. 몰디브 사람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들을 위한 파라다이스는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 파라다이스는 오직 선택된 외부 세력에게만 허용된 꿈같은 공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공섬 훌후말레의 바다


마푸시 섬에서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옆에는 해변의 분위기를 살린 모던한 느낌의 노천 바가 있었다. 크림색 파라솔이 자리마다 펼쳐져 있고, 아이 주먹만 한 작은 조명이 파라솔 사이사이에 별처럼 반짝였다. 몇 날 며칠 동안 들려오던 라이브 음악에 결국 우리는 바에 가보기로 했다. 젊은 여행자들은 두툼한 소파에 반쯤 누워 물담배를 피우거나, 음악에 맞춰 몸을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메뉴판에는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음료란 음료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구아바와 코코넛이 들어간 ‘아이스 구아바 패션프루트’를 남편은 파인애플과 파란색의 퀴라소가 들어간 ‘블루 오션’을 주문했다. 걱정할 것도, 불편한 것도 없던 평화로운 여름 밤이었다. 그런 날들은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도 내내 이어졌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말레에서 마셨던 푸른 물병이 있다. 말레에서 물을 다 마신 후, 이 병이 버려지는 게 아까워 몰디브에서 서울까지 조심스레 가방에 넣어 왔다. 몰디브에서 가져온 나의 유일한 기념품이다. 이제는 안다. 몰디브 사람들이 여행객들을 환대할 수 없었던 이유를, 나의 아침 인사에도 시큰둥했던 이유를 말이다. 물병을 볼 때마다 몰디브 사람들의 힘없던 눈빛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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