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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n 26. 2024

공정하다는 착각에 대한 나의 g소리

My Dear Desperado

그런 영화가 있다. 대중적인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나에게만은 찰떡 같은 영화. 그래서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영화의 장면, 대사, 분위기, 냄새가 생각나는 영화말이다. 나에게는 ‘내 깡패 같은 애인(영어 제목: My Dear Desperado)' 이 딱 그런 영화다. N 검색 결과에 따르면, 이 영화는 2010년 5월 20일에 개봉했고, 총 68만명의 관람객이 소박하게 극장에서 관람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육체적인 싸움보다 말 싸움에 더 재능을 보이는 삼류건달 동철(박중훈 분)과 지방대 출신의 취준생 세진(정유미 분)이 서울 강북의 어느 허름한 원룸촌 반지하의 이웃으로 우연히 만나 펼치는 얘기다.


앞선 캐릭터 소개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취준생', '지방대', '입심좋은 삼류건달' 등을 소재로 한 다소 어둡고 찌질한 에피소드로 영화는 이어진다. 찌질한 이 영화와 나는 공통점이 많았다. 2010년 당시 나는 지방 출신의 취준생이었으며,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동네의 반지하에 실제 살면서 취직을 준비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 도피용으로 건달 영화(특히 대부)에 심취해 있었다!


세진은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위치한 IT 대기업에 취직한다. 나도 운이 좋아 서울에 위치한 어느 대기업에 취뽀했다. 영화는 세진의 취직으로 끝이 났지만, 나의 사회생활은 시작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나는 억세게 운이 좋아,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들'에서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다. 양승훈 작가님은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에서 한국 사회의 정의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 한국 사회는 성공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있다. '공정한' 입시경쟁을 치르고 좋은 대학 나와서 고위직 공무원이 되거나 고소득 전문직을 갖거나 혹은 서울에 본사가 있는 대기업이나 전망 좋은 IT 기업에 들어가야 성공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나도 짧게나마(지금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작은 성공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한국사회에서 작은 성공을 한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며 '나는 참 운이 좋았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왜냐하면, 내 성장환경으로는 스펙을 쌓고, 정상적으로 취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나의 성장환경을 얘기하자면, 인자하신 어머니와 엄격하신 아버지는... 내가 10살이 되기 전에 이혼하셨다. 엄격하신 아버지는 돈에도 엄격하신 나머지 돈을 쫓아내셨고, 이혼한 홀아버지 밑에서 나와 동생은 어렵게 부산과 경남 등지를 생존을 위해 옮겨 다녔다.


나의 엄격한 부친이 어린 시절 나에게 자주하셨던 말이 있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 허나, 강한 정신력과 노력으로 충분히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그러면서 함께 예로 든 이가 막노동을 하면서 서울대에 합격하고, 더 나아가 사법시험에도 합격하셨던 공부가 가장 쉬었던 그 분(아마 내 또래의 부모님들이 본보기로 가장 자주 얘기했던 원조 엄마 친구 아들이 아닐까?)!


물론, 부친의 주장은 오류가 많다. 확증편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주 세부적으로 맞는 부분도 있다. 바로 세상은 '불공평하다'이다. 이 주장을 시대적, 공간적 그리고 가정 환경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우선 시대적인 관점에서, 조선시대에 메호(메시/호날두)급의 운동 신경을 갖고 태어났다 한들, 지금의 메호가 누리는 명성과 부의 10분의 1이라도 조선시대에 누릴 수 있었을까? (물론, 세계적인 무장으로 태어났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텐데, 축구와 싸움은 다른 영역이지 않나?) 공간적으로 현재 미얀마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와, 미국과 영국, 한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게 틀림없이 다를 것이다. (나는 미얀마에서 2년, 이라크에서 3년, 아프가니스탄에서 7개 월을 몸소 지내봤기 때문에 다를 수 밖에 없음을 확신할 수 있다) 매슬로의 욕구이론(4단계인 안전 욕구)까지도 언급할 필요가 없다.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더라도, 혹은 넷플릭스에서 전쟁에 관한 영화를 1편이라도 보면, 전쟁터에 태어난 이들의 운명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정 환경적인 면, 앞서 언급한 영화의 주인공 삼류건달 동철의 사연을 보자. (영화에서는 동철의 과거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마음대로 상상해보자면) 동철의 아버지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고엽제 후유증을 앓았을 수 있다. 그 후유증으로 인해 변변한 직장을 유지하지 못했고, 가정 불화 끝에, 동철은 결국 엇나간다는 그런 진부한 스토리 말이다.


물론, 나의 대기업 동기들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노력하지 않았으면 대기업 입사조차 불가능했을 테니. 하지만 전쟁이 없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가정불화가 없는 혹은 덜한) 가정에서 자라 괜찮은 대학을 나올 수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자 운이지 않을까. 즉, 세상은 불공평할 수 밖에 없으니 나에게 조금 더 관대해져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감히 생각해본다.


이 글은 동철이 여고생들이 많이 찾는 분식집에서 야무지게 단무지에 라면을 먹으며 세진에게 하는 말로 야무지게 끝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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