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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Aug 14. 2024

무더위에 지친 직장인에게

입추라고?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784


직장인이 조폭보다 무서워하는 건? 3폭(폭설, 폭우, 폭염)


3폭 중에서도 지금의 나는, 폭염이 가장 싫다. 아마 '지금 여기' 내가 처한 상황이 가장 극적으로 와닿아서 그럴 것이다. 장마 때는 퍼붓는 비를 보며, 출근을 걱정했드랬다. 아마 겨울이 오면 폭설을 가장 싫어하겠지.


지난주인가? 폭염 속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Y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팀장님! 오늘 입추인 거 아세요?"


찐죽찐죽 흐르는 땀 때문에 나는 건성으로 들었다. (미안. Y)


"그러냐? 이렇게 더운데 입추라고? 참...(사실 더워서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또 미안. Y)


입추날에 입추라는 소식을 건성으로 듣고, 며칠이 지난 어느 늦은 밤, Hoya(인생 970일 차 글쓴이 아이)가 드디어 잠을 허락하셨다. 그분은 꿈나라로 행차하셨고, 집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늙고 지친 몸을 거실 소파에 누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새삼 에어컨 소리가 크게 들렸고, Y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왜 에어컨 소리를 들으면서 그 목소리가 떠올랐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잠들기 직전의 '그'


"팀장님, 오늘이 입추인 거 아세요?"


입추立秋.  24 절기의 13번째로 태양 황경黃經이 135도가 될 때이다. 천문학에서는 가을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양력으로는 8월 7일 내지 8월 8일에 든다. (출처: 위키백과)


Y가 입추라고 알려왔던 때는 한창 더운(한 35도 이상이었던 듯?) 2024년 8월 7일 강서구에서 어느 직장인 무리가 점심을 먹으러 가던 바로 그때였다.


우리나라 선조들은 왜 이렇게 더운 날, 가을의 문턱이라고 구분해 놓았을까? 여러 가지 이유(기후 변화, 농사 준비 등등)가 있겠지만 오늘 여기에서는 내맘대로 해석해보려고 한다.


바로, '위로' 아닐까?


지금은 너무 덥더라도 가을이 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버티라는 그 '위로'


여기 24 절기 전문가專門家 아티스트가 있다. 바로 내가 존경하는 이반지하 님*


*이전 나의 글에서도 느끼셨겠지만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참 많다.


이반지하 님의 절기에 대한 생각을 잠깐 들어보자.



한 번은 자살충동으로 힘들어하는 사연을 보낸 이에게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삶을 잘라서 살자는 이야기를 했다. 평생 살 생각 하면 너무 힘드니까, 5년, 3년, 1년, 6개월, 한 달, 일주일, 하루, 열두 시간, 한 시간 이런 식으로 쪼개서 생각하고, 일단 딱 거기까지만 살아내 보기로 결심하는 것은 내가 나의 심리와 정신건강을 챙기면서 배우게 된 생각법이었고, 그것이 진심으로 사연자에게 가닿기를 바랐다.

...

원해서 태어난 적 없는 우리가 이 삶을 산다는 것, 버텨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위로가 필요한 활동이라서, 주기적으로 "이야! 우리 여기까지 살아냈다!" 하면서 구심점을 잡아주고 축하하는 것이 나는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생각과 몇 가지 계기, 또 우연이 만나 '이반지하 24 절기 유튜브 라이브'가 탄생했다.

...

하지만 진짜 핵심은 이거다. 나는 내 24 절기 라이브 방송이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는 웃을 수 있는 '주기'가 되길 바란다. 적어도 "아, 벌써 입춘이네" "오늘이 동지아?" 할 수 있는 구분선이 되어, 밑도 끝도 없는 삶의 혼란 속에 숨 한번 돌리는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책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중에서,  



여기 나의 직장인 친구 JK가 있다. JK는 절기 입추 말고 진짜 선선한 가을이 오면, 문신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더운 여름을 잘 견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나 머라나? (사실은 땀이 많은 체질 때문에 여름에는 문신이 불가하다)


나도 이반지하 님처럼 잘라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너무 길게 생각하지 않고, 이번 절기 딱 15일만큼만 잘 견디자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친구 JK처럼 이번 여름을 잘 견딘 나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고민하고 결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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