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마쳤을 때, 그리고 제대하던 날 윤장호 하사의 사망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다.
어렴풋이강대국 미국의 힘과 그 힘에 속박된 약소국의 어떤 억울함이었다. 당시에는 광복 60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약소국이었다. 미국이 파병을 가라고 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전쟁터에 가야했다.
약소국의 국민으로 그 억울함의 원인을 더 공부하고 싶었고 나라와 조국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드랬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너무 어렸고, 너무 철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먹고살기에 너무 급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숨을 걸고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갔던 이유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였다.
글쓴이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당시 모습. 18년 전.
치기 어린 20대 초반의 청년은, 서울에서 대학을 마쳐야 한다는 이유로 국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스스럼없이 저질렀다. 주점의 호객 행위를 하며 손님을 모으고 돈을 벌었다. 대학생에게는 거금이었다. 그 돈으로 대학등록금을 내고, 그 돈으로 고시원 월세를 냈다. 그리고 끝내 대학을 마칠수 있었다.
대학을 마친 후에는 머가 그리 바빴는지, 머가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지 직장에 모든 것을 걸었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도 눈을 감았고, '을'에 위치한 사람과 을이라고 생각되는 회사를 무시하고 짓밟았다. 반대로 '갑'에게는 한없이 비굴했다. 그렇게 14년을 아등바등 버텼다. 하지만 남은 거라곤 고집스러운 중년의 꼰대만 남았다. 18년 전 아프가스니탄에서 약소국 대한민국을 걱정했던 나는더 이상 없다.
이런 나를 꾸짖는사람이있다... 바로 김동현 작가님.
우연히 아주 우연히 그가 발행한 책을 '최인아 책방'에서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목이 흥미로워 책을 펼쳤는데,시작하는 첫 문장을 보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누군가에게는 아직 잊히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전우 고 윤장호 하사께 이 책을 바칩니다.
김동현 작가님의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김동현 작가님은 나와 그리고 고 윤장호 하사와 비슷한 시기에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다녀왔고, 윤장호 하사의 죽음을 목도했다.
그는 미국의 거대한 힘을 느꼈고 그 힘을 파헤치는 일을 계속했다. 기자로 활약하며 미국 펜타곤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저렇게 그만의 인사이트로 조국에 도움이 되는 책까지 발간한 것이다.
책의 내용이 훌륭할수록, 그의 인사이트가 뛰어날수록 나는 초라해졌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고민을 했던 또래 청년 중 한 명은 훌륭하게 성장했고, 다른 한 명은 한 없이 가벼운 존재를 직시하며 한숨만 쉬고 있기 때문이다.